정미수 사진전 ‘물방울 동화’
2020.1.15(수)-27(월)
토포하우스 제2관, 윈도우 전시실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 토포하우스 02 734-7555
연잎 위의 개구리 왕자
첨벙 첨벙
공작새
마를린 먼로
펑!
춤추는 여인
양탄자
랄랄라~
방울꽃
물방울 동화
신경훈(언론인/사진가)
물이 쏟아져 내려 수면에 부딪친다. 고요했던 물의 표면은 격랑에 휩싸인다. 물과 물의 충돌로 솟아 오른 물방울과 물결은 아주 짧은 순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이룬 뒤 이내 떨어진다.
정미수는 시각(視覺)이 미처 작동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그 찰나를 접사렌즈를 통해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어 그는 온갖 형태의 물방울을 컴퓨터 모니터로 불러내 디지털 페인팅으로 그림을 입힌다. ‘워터드롭 아트’의 세계를 담은 사진집 ‘물방울 동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작가의 손길을 거친 물방울은 강아지, 고양이, 달팽이, 사자, 상어 등 온갖 동물로 변신한다. 이어 장미를 담은 화병, 농구공, 하늘을 나는 양탄자 등, 현실과 환상 속의 사물들로 바뀌어 나간다. 또한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우아하게 춤추는 발레리나, 암벽을 오르는 등반가 등 사람이 되기도 한다. 정미수의 작품들을 연이어 보면, 동화에 나올법한 신기한 물방울의 나라를 여행하는 착각이 든다.
‘물방울 동화’ 속 그림들은 어른의 진지함이나 고상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툰이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단순하고 명료하고 경쾌하다. 그래서 심오한 철학이나 작가주의를 내세우는 작품들에 반(反)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의 팝아트 작품의 하나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정미수의 작품들 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정미수가 ‘물방울 세계’로 동심을 표현하고 있는 근저는 그의 유년기에 있다. 어린 시절 작가는 몸이 아파 밖에서 놀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늘 집에 머물며, 바깥 세상을 동경하곤 했다. 친구 들과 뒤섞여 노는 체험은 단순한 놀이를 뛰어 넘는 경험이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동안 아이들은 '전지 전능한' 창조자가 된다. 인형에 옷을 입혀 연극을 하고, 스스로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되고, 목에 붉은 보자기를 두르고 우주로 날아가기도 한다. 점수도, 의무도, 제한도 없는 그 유년의 시절은 마음의 자유를 무한히 누리는 때다. 그런데 작가의 삶의 여정에는 그때가 비어있다. 그 빈 공간 때문에 작가는 지난 세월 동안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정신적 공복을 메울 수 있는 길은 예술에 있다. 예술 행위에는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녹아 들어 있어서 작품을 만드는 일 자체가 일종의 ‘치유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정미수는 서늘한 물방울에 그림을 입히며 유년의 공백에 새살을 돋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방울 동화’의 배경이 되는 물방울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 감각기관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규모로 천분의 일초 동안 벌어지는 현상이다. 작품에 등장시킬만한 장면을 얻기 위해서 작가는 접사렌즈 앞에 설치해 놓은 수조에서 물을 떨어뜨리고 셔터를 누르는 동작을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때론 동그라미로, 때론 네모로 자유롭게 형태가 바뀌어 나간다. 무언가 근사한 것을 기대하지만 아무 것도 나오는 게 없고, 그만둘까 싶으면 그럴듯한 것이 슬며시 얼굴을 내민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주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동심과도 무척 닮아 있다.
정미수는 물과 물이 충동해 발생한 우연의 결과물에 맞춰 작가 내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페인팅 해 나갔다. 미술 전공자로서 학습한 감각과 유년의 기억과 본능이 어우러져 작품을 완성했다. 마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설처럼,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연결되어 정미수의 잃어 버린 동심을 재현했다.
삶과 예술의 간격이 허물어진 21세기에는 정해진 예술가의 길이 없다. 누군가는 거대 담론과 대서사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소소한 나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들려준다. 정미수는 심각해질 수도 있는 개인의 내면의 경험을 동화처럼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바꿔 드러냈다. 감상자는 그 유쾌함을, 작가는 그 과정과 결과물이 채워준 치유의 기쁨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제목
김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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