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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Decoding Scape, Nabi, 생명나무’ 작가노트 프로필

제2회 수림사진문화상 수상자의 작품 엿보기
등록날짜 [ 2015년08월30일 14시55분 ]

작가노트

생명나무

생명나무는 겨울과 봄 어디쯤에서 만난 감나무에서 시작되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바짝 마른 나무 가지 끝에서 언뜻 초록이 보였다. ‘그 때 나는 정말 보았던 것일까?’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죽은 듯 말라버린 그 가지는 생명의 싹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지나한 겨울을 나는 모든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그 생명력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어디 그 뿐이랴! 일종의 각성이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각성.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은 분명 존재하며, 눈에 보이는 세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응한다. 나는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른 나무 가지가 품고 있는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다가 우연히 빛을 사용하게 되었다. 빛은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굉장히 좋은 매체였다. 게다가 빛의 숭고함은 나무의 신령함만큼이나 인류의 보편적인 원형이기도 하다.

 

작업을 위해서는 우선 자연광, 플래시, 서치라이트라는 세 종류의 빛을 다루어야 했다. 나무 이외에도 이런저런 설치물이 필요했고, 그 날 그 날의 빛과 공기에 따라 여러 종류의 필름을 사용해야 했다. 야외작업에서 만나게 되는 상황은 컨트롤되기는커녕 감당하기 버거웠었다. 급기야 호우로 인해 몇 달 동안 공들여 일군 세트장이 파손되었다.

 

그래서 생명나무 두 번째 시리즈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실내에서 3달 동안의 지루한 테스트 끝에 겨우 데이터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생명나무의 빛을 컨트롤하는데 무려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생명나무의 빛은 세상 혹은 나무의 외면을 비추기 위한 빛이 아니다. 공간의 내면, 존재의 아우라를 드러내기 위한 빛이다. 그래서 나는 그 빛이 요란하기보다는 오묘하길 바랐다. 계속되는 실험으로 인해 생명나무의 형식은 차츰 완성되어갔고, 배경이 자연에서 무대로 옮겨지자 극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생명나무의 아우라가 극대화 되었다.

 

빛의 변주가 가능해지자 생명나무가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과 만났을 때, 어떠한 화학작용이 이루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자연의 깊은 울림이 있는 곳을 찾다가 제주에 닿았다. 생명력 넘치다 못해 두려울 정도로 강렬한 제주의 독특하고 낯선 자연과의 교감을 위해 한참을 헤맸다. 마을 이장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구한 나무를 세우기까지 두어 달이 걸렸다. 주로 바다와 목장과 숲에서 작업을 했다. 제주의 독특한 풍광들은 낯설어서 어렵기도 했지만 많은 작업적 영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플래시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야외작업은 여전히 어려웠다. 한 장소에서 기본적인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최소 일주일은 품을 들여야 했다. 바람이 많고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는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데다가 현상을 위해 필름은 매번 비행기를 태워야했다.

 

나무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관문이자 일종의 균열이다. 빛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교류를 상징한다. 생명나무는 그 자체로 두 세계간의 상응을 표징하는 셈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굉장히 자극이 많다. 근원적인 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나는 작품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우리 안에 내재된 근원적인 세계가 맞닿는 지점을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자연과의 교감에 그치기보다 우리의 삶과 역사에 개입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파장을 환기하기 바란다.

 

나비 Nabi

그 동안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엇, 보이는 세계와 서로 상응하는 그곳,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실세계 너머, 그러나 이곳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낯섦 너머의 오묘한 세계를 빛으로 그려왔다. 빛으로 그리는 행위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롭게 리듬을 타는 것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기보다는 몸으로 체감한 긍정적 에너지를 전하는 행위였다.

 

사유가 사라지게 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난 모든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은 밖이지만 간혹은 내 안이기도 하다. 그곳에 닿으면 나는 단순히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모든 감각이 열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이 작업에서는 다양한 형상과 기호였던 빛이 나비로 함축되었다.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존재,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는 두 세계를 잇는 관문이자 메신저인 까닭이다. 이번 작업의 타이틀로 쓰인 Nabi는 히브리어로 선지자를 뜻한다. 또한 이따금 나타나는 원형은 우주의 근원적인 형태이자 질서에서 발원한 것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형태로써의 원형이 아닌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전달하기 위해 나비의 형상을 통해 표출했다.

 

Decoding Scape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성은 존재론 적인 것이지 인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발명해낸 도구가 아니다. 다시 말해 말과 언어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인간이 고안해내고 약속한 기호 체계가 아니라 사물이 그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존재하게 되는 존재의 집인 것이다.

 

또한 발터 벤야민은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물(존재)이 언어를 갖고 있으며, 󰡐말함󰡑으로써 사물은 창조되고 인식된다고 한다. 언어적 본질을 발견해 내어 그것을 󰡐이름󰡑했기 때문에 이름 자체가 본질을 드러내고, 사물자연과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민족의 언어인 훈민정음은 역 사상, 음양 오행 사상, 삼재론이 결합되어 만들어져 있다. 첫째 자음은 각기 5행에 해당되는 5개의 자음 곧, (: 어금니 소리), (: 혀소리), (: 입술소리), (: 잇소리), (: 목구멍소리) 에 가획을 하여 만들었다. 둘째 모음은 천지인 삼재를 상징하는 . (), (), () 3개의 기본 모음이 하도의 원리에 의해 조합되면서 이루어 진다. 셋째 한글의 낱글자가 초성() 중성() 종성()이 합쳐져 하나의 낱 글자로 완성 되는 것도 삼재론에 입각해있는 것이다. 결국 한글의 구성은 하나의 글자를 삼재론에 입각해서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 된다는 것을 전제로 초성과 종성을 이루는 자음은 음양 오행론에 입각해서 만들고 중성인 모음은 천지인 삼재론에 입각한 기본 모음을 창안한 다음에 역사상의 기본 도상인 하도의 원리에 따라 조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글의 낱글자 하나하나에는 이미 역 사상, 음양론, 오행론, 삼재론 등이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음이나 모음의 모양이 왜 그러한 모양을 지니고 있는지를 철학의 원리에 따라 설명 할 수 있는 세계유일의 문자체계라고 한다.

 

철학자 다석 유영모는 다음과 같이 자음을 풀이한다. ‘은 무엇인가를 위에서 수직적으로 내려 보내는 모습인데 하늘에서 생명의 씨가 내려오는 뜻을 머금는다. 그리하여 우리 말의 거룩, 검 등이 으로 시작된다. ‘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그 무엇을 순히 받드는 뜻을 담는다. ‘은 언어의 시초이며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입과 관계된 모든 일, 마신다, 말하다 등의 말들이 바로 에서 시작된다. ‘은 두 다리로 서있는 생명적이며 약동적인 사람의 형상이다. 유일하게 머리를 하늘에 두고 직립하여 사는 인간은 하늘을 본받고 땅을 따르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사람, , , , 씨 등이 으로 시작되는 이유이다. ‘은 그 상에서 보듯이 공이다. 은 시간성의 근원이자 공간성의 근본이 된다. 우리말의 ‘~이다란 것이 으로 시작되는 연유이다. 이러한 풀이를 바탕으로 한글 자음만으로 진리를 이야기하는데 그 하나의 예가 다음과 같다.

 

ㅁ ㅂ ㅍ ㅅ (, , , 생명)

땅에서 올라오는 물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이 합쳐져서 생명()인 풀이 된다. 곧 하늘과 땅이 만나 생명을 키워낸다는 뜻이다. 곧 천지인 삼재사상이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하여 소리 문자인 한글을 뜻 글자로 읽어내고 상형문자로 봄으로써 그 속에서 자연의 의미를 풀어내고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다. 자연(대상)을 관찰하고 더 나아가 그것과 공명하여 그 언어적 본질을 읽어내어 한글기호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리밭에서는 라는 기호를 사용하였다. 한글 가 아닌‘ l(지평선 아래에서 기운을 끌어 올림), (땅에 기운을 모음), (땅위로 생명력을 산출 함)’의 조합이다. 또한 풀이 무성한 곳에서는 ㅁㅂㅍㅅ을 탑 형태로 쌓아 올렸다. 이는 앞서 본바와 같이 땅의 물과 하늘의 불이 만나 풀을 만들고 그러한 자연의 산출력을 바탕으로 인간이 문명을 쌓아 올린다는 의미이다. 또한 갯벌에서는 을 사용하였는데 ’, 수평선 혹은 땅 밑에 ’, 생명들이 우글대는 모습으로 해석하였다.

음성, 파동, 형상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내포한 언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라는 요소를 이용하였다. 장노출 상태에서 스트로보를 사용하여 특정 형상을 빛으로 뿜어냈고, , 아우라, 파동 등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빛의 번짐 효과를 이용하였다.

 

벤야민에 따르면 살아있는 자연에서든 살아있지 않는 자연에서든 어떤 방식으로 언어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건이나 사물이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이든 본질적으로 자체의 정신적 내용을 전달하게끔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가 한갓 자의적 기호, 전달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개별적 고유성은 무시되고 사물의 정신적, 언어적 본질이 부정된다. 즉 사물자연 등은 인간의 도구,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가지지 않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언어로 그 언어적 본질에 맞는 음성을 부여할 때 자연은 더 이상 단순한 인식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상대가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하여 자연과 소통을 시도하며 그 결과를 나의 언어로 해석하여 필름에 기록하고자 한다.

 

이정록은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대 산업디자인학과와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로체스터 공대(R.I.T) 영상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근원적 세계를 신화적 감수성으로 증거하는 사진작업을 해 오고 있다. 상해의 Zendai Contemporary Art Space, 한미사진미술관, 관훈갤러리, 신세계갤러리, 빛갤러리, 공근혜갤러리 등에서 2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광주비엔날레(2012), 무등설화(북경 금일미술관, 2012), 난징비엔날레(2010), 등의 국제적인 기획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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