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6 비염 치료記, 김가중 건강秘書
유명한 야생화 사진작가 송기엽 선생님은 꼬작대기(갱상도 방언)처럼 말랐다. 당신의 말씀으론 암실작업을 오래해서 그렇단다. 몸만 마른 것이 아니라 지금도 폐가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단다.
나 역시 오랫동안 암실작업을 했던 사람이다. 사진작업이 디지털로 바뀌기전엔 암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마츄어 작가로서 이례적으로 흑백 작업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직접 주문한 메트로지겐 컬러 네가티브 인화기와 슬라이드 인화기까지 마련해 놓고 직접 작업을 했다. 사진약품들은 40여도의 고온에서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 히터를 이용하여 열을 가하므로 암실에선 항상 매캐한 화공약품냄새가 진동했다.
흑백 현상인화에 사용되는 약품들은 컬러 현상약품보다는 비교적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었지만 그 약품들 역시 강력한 독성화공약품들이다. 특히 필름의 현상이나 인화에 사용되는 약품의 주성분은 메톨과 하이드로퀴논이었는데 퀴논은 법정60대 극약중의 하나다. 이 약품들은 은을 검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옛날 궁중에서 여인들이 은비녀를 꼽고 있다가 임금님의 수라상이 수상하면 비녀를 뽑아 담궈 보고 극약이 들었는지를 판정했다고 한다. 극약은 은을 검게 만드는 성질이 있어 은비녀가 검게 변하면 음식에 독성이 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암살용으로 사용되던 비소가 바로 이약들과 동격이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박정희 시대 북한을 방문한 이후락 전 중정부장(훗날 박정희 시해범)은 북한에서 고문에 의하여 국가의 일급비밀이 발설될 위기에 처할 경우 자살을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그 자살에 사용할 극약으로 바로 하이드로 퀴논을 캡슐에 담아 주머니에 보관하고 평양으로 갔다고 한다. 물론 이 뉴스는 카더라 뉴스다.
또한 정착약으로 사용하는 하이포의 경우 분말에서 물에 녹일 때부터 미세먼지가 매캐하게 일어나 코를 강력하게 자극한다. 피부에도 강한 작용을 하여 그 즈음 무좀이 심하던 나는 이 약품에 발을 담그곤 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알레르기 비염이 심하게 발병했다. 이 병의 고통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음으로 길게 증상을 이야기 하지 않겠다. 다만 이 염병은 단순히 코와 목을 간지럽혀 심한 재채기로 숨이 깔딱이게 만들고 코로 숨을 쉬지 못하고 항상 입을 헤벌쭉 벌리게 하고 숨을 거칠게 만드는 것 외에 눈(안구 건조증), 머리(엄청난 비듬), 항문, 정강이까지 미치도록 가렵게 만든다. 때로는 얼굴에도 염증이 도져 벌겋게 두드러기가 일어날 때도 있다. 사람을 지랄하게 만드는 이 염병들은 한통속이라 함께 붙어 다닌다.
서울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비인후과 교수인데 독립하여 우리 동네에 의원을 차린 이가 있어 이분을 찾아갔다. 병원 대기실은 항상 인산인해라 오전 8시부터 가서 9시 반 간호사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다 선착순으로 교수를 만나 뵈어야만 되었다. 그 분과 면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수초였다.(필자가 느끼기에) 콧속을 들여다보고 기계로 콧물을 칙칙 뽑아내고 가느다란 꼬챙이에 달린 털 뭉치를 코 속에 넣고 한번 휙 돌린다. 분말로 된 약을 살포하는 것 같았다. 증상이 심해 콧속이 다 헐어 장기치료가 필요하고 장기치료 역시 속단할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간호사가 코에 대 주는 원적외선으로 1분정도 코를 지지거나 주사를 놓는 간단한 치료가 다였다. 그리고 약봉지를 들고 나오는데 이 약이야말로 천하의 가장 악독한 약이다. 이약을 먹고 나면 비몽사몽, 졸리고 나른해져 모든 일과를 멈춰야만 되었다.
몽환!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말이다. 예술적인 풍미가 느껴지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치료제는 이 몽환이란 말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해 주는 약이다. 그러나 이 몹쓸 약은 기분 좋은 몽환이 아니고 기분 나쁜 몽환 속에서 왼 종일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매일 8시에 병원 앞에서 기다리다 간호사를 따라 들어가 3초가량 의사를 만나고 약을 타다 먹고 하루 종일 나른하게 취해 있는 일과가 한 달이 지났는데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다.
“직업이 사진작가라서 암실작업을 하는데 혹시 사진약품 때문에 비염이 심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 의사는 원서를 사다가 이 부분을 집중 연구했다. 1달쯤 맹렬히 공부한 결과는 사진약품과 비염은 관계가 없다였다. 전 세계 모든 임상실험을 다 뒤졌는데 그런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무척 고마웠다.
생활과 일이 엉망이 되었는데 이 치료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치료를 포기했다.
‘왜 이제야 생각이 났지?’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산.산.산. 그렇지 산이 있었지.
산으로 올라갔다. 높이높이 올라갔다. 최루가스를 들이켰을 때처럼 콧물이 무지막지하게 확 쏟아지더니 코가 뻥 뚫렸다. 첫날의 효과였다.
얼마동안 더 산을 오르내렸다. 비염은 어느새 나하곤 전혀 관계없는 빛바랜 전설이 되고 말았다.
비염?
산으로 가라! 내가 보장하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진리로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니” 자유! 진정한 이치(진리)로 찾은 자유가 그곳에 있을지어다.
*동영상은 작년(2017.2)에 촬영한 것 같다. 이때 나의 건강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의 5년 동안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2017.12월경) 컨디션이 전만 못함이 느껴졌다. 몸이 다소 무거운 느낌도 있었다. 검진을 받으니 역시 서 너 가지 이상이 감지되었다.
* http://www.koreaarttv.com/section.php?thread=11&flashMenu=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