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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의 청년시인 ‘이생진’

지금도 왕성한 시작활동, 매일 어김없이 15,000보 산책
등록날짜 [ 2021년02월11일 11시57분 ]
 

93세의 청년시인 이생진

지금도 왕성한 시작활동, 매일 어김없이 15,000보 산책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이생진 선생님을 뵈러 우이동 선생님 댁을 찾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건강해 보이셨고 시작활동 및 책읽기에도 열심이셨다. 선생님 뵐 때마다 제가 가장 놀라는 것은 기억력과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몸가짐이다. 선생님은 그의 대표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한 자도 틀리지않고 줄줄 외워 낭송하신다. 이 시는 모두 낭송하는데 몇 분이 걸릴 정도로 꽤 긴 시다. 말씀하시는 것도 또박또박 예전과 다름없으시고 농담도 여전하시다. 선생님의 연세는 올해 보통나이로 93. 1929년 생이다.


 응접실도 아기자기하게 정리해놨다. 창문을 제외한 3면 모두 책장인데 책이 가득하다. 중앙에는 탁자를 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서재에도 책상, 컴퓨터 2, 프린터와 함께 책 가득한 책장이 또 있다.



 책상 위에는 모딜리아니에 관한 책이 놓여 있다. <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 앙드레 살몽이 짓고 강경이라는 분이 번역한 책이다. 이생진 선생님은 원래 화가이셨다. 중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셨고, 후반에는 영어선생님도 하셨다.

필자는 선생님과 함께 수십개의 섬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내가 섬여행을 좋아하고 즐기게 된 것도 이생진 선생님 때문이다. 선생님과 섬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섬의 매력에 푹 빠지게됐다. 섬에 갈 때 마다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섬 풍경을 스케치하신다.


 화가이다 보니 유명화가들에 대한 글도 많다. 2008년도엔 <반 고흐, 너도 미쳐라>라는 이름으로 반고흐에 대한 단행본 시집도 냈다. 시인은 “‘너도 미쳐라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소리다. 그 누군가의 삶에 흠뻑 젖고 싶다. 아주 진한 삶 말이다. 그래서 택한 사람이 반 고흐다라고 말한다. 이생진 시인은 1955<산토끼> 시집을 낸 이래 이제까지 시집 38, 시선집 3, 시화집 4, 산문집 2편 등을 펴내셨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하늘에 있는 섬>, <우이도로 가야지>, <맹골도> 등 섬 시집이 대부분이지만, <그 사람 내게로 오네>(황진이에 관한 시집),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반고흐, 너도 미쳐라> 등 특정 인물에 관한 시집들도 여러권이다.

 

선생님, 요즘은 모딜리아니를 읽고 계시네요. 모딜리아니에 관한 시도 많이 쓰시는지요?”. “모딜리아니의 삶과 그림세계, 열정이 참 멋있어요. 그에 관한 책도 보고 시도 써가고 있지요”. 선생님은 피카소에 관한 시도 그동안 적지않게 써놓으셨단다. 머지않아 <피카소 시집>도 펴낼 예정이다.

 선생님 서재 바닥에는 담뱃갑이 큰 쇼핑백에 가득하다. 책상 위에도 여러개의 담뱃갑이 널려 있다. “선생님은 담배를 안피우시잖아요. 그런데 왠 담뱃갑이 이렇게 많아요?”. “동네 길가 쓰레기통에서 빈 담뱃갑들을 주워 왔어요. 요즘 담뱃갑에 관한 시도 좀 쓰고 있지요. 담뱃갑 디자인들이 참 재미있어요. 담뱃갑 하나하나도 시적 오브제예요. 담뱃갑이 제게 시적 영감을 줍니다”.

 

 

내가 왜 담뱃갑을 주울까

담배 피우지도 않으면서

헌데 어린애처럼

담뱃갑을 보면 줍고 싶다

골초들이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어내는

그 맛으로

시 한 줄 쓰고 싶다

비록 그것이

사라지는

연기일지라도

 

이생진 시 <빈 담뱃갑> 전문

 선생님은 커피를 마신 후 버리는 1회용 종이컵에도 시, 글 및 그림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신다. 서재 책장 제일 위 종이컵에는 만 99세로 2017년에 돌아가신 황금찬 시인과 종종 만났던 Into Coffee라는 집 근처 커피숍에 관한 글도 보인다. 2015년에 쓰신 글이다. 놀랍다. 노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끝이 없고 오브제도 참으로 다양하다.



서재 책상 위에는 데스크탑 컴퓨터와 노트북이 놓여 있다. 섬여행 할 때도 선생님은 노트북을 꼭 가지고 다니신다. 섬에서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시를 쓰고, 이를 노트북에 저장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데스크탑과 노트북이 연결되어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각종 회의나 강의용으로 인기있는 줌(Zoom)에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위 듀얼모니터이다. 듀얼모니터란 컴퓨터 2대 이상을 서로 연결하여 모니터를 확장하거나 복제사용하는 방식이다. 93세의 원로시인께서 듀얼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니 신세대 수준의 IT능력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선생님은 8년전인 2012년도에도 <골뱅이 이야기>라는 단행본 시집을 펴낸 적이 있다. 시집 제목이 왜 골뱅이인가? 의아스러웠는데 내용을 보니 이메일의 @가 골뱅이 모양이라 그런 이름을 붙였단다. 이메일이나 SNS, 스마트폰 등에 관한 시를 모은 시집이었다. 이토록 신세대들과 동시대를 즐기고 노는 93세 시인, 그는 아직 30-50대에 뒤지지않는 청년시인이다. 그는 스마트폰도 가장 최신 것으로 사서 그곳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린 그림을 카톡으로 후배 시인·화가들에게 보내주기도 하는 등 늘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교류한다.


 가수 장사익과 함께 찍은 사진도 눈에 띈다. 언제 찍으신건지 여쭤보니 아주 최근인 2021.1.8.에 찍었단다. 장사익 가수가 직접 선생님 댁을 인사차 방문하셨다면서 긴 두루마리 글을 보여주신다. 두루마리에는 선생님의 장사익 가수에 대한 시 한 수 시와 소리-장사익’, 그리고 장사익 가수가 선생님에 대하여 쓴 글이 보인다



장사익 가수는 작은 저희들 말에도 정성 다하셔서 경청하시고 저를 위해 지으신 시를 아주 열정적으로 낭송해주심에 가슴깊이 감동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위대한 시인께서 작은 저에게, 평생 한번쯤 되는 큰 기쁨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후략)”라고 썼다. 장사익 가수는 노래도 잘 부르지만 필체도 멋지다.


 서재 한 쪽에는 낮익은 사진 액자 하나가 세워져 있다. 2007년도 선생님과 함께 다녀왔던 울릉도 풍경이다. 선생님이 산책하는 도중 스케치하는 장면을 필자가 직접 찍어드린 사진이다. 액자에 넣어 아직도 보관하고 계신다. 액자 뒷면에는 '울릉도 스케치(2007), 사진 임윤식'이라는 메모도 보인다. 선생님과 독도까지 함께 다녀왔던 그때의 추억도 그립다.



 그의 건강비결은 많이 걷는 것. 요즘도 어김없이 하루에 15,000보를 걷는다고 한다. 아침 5천보, 점심 때 5천보, 저녁 때 5천보를 나눠 걷는 식이다. 식사는 소식으로 하신다고 한다. 지금처럼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빈다. 120세가 되시면 다시 모여 큰 파티를 열자고 하니 웃으신다. 선생님은 그때까지 살아계실 가능성이 크지만 내가 앞으로 27년 후인 선생님 120살 때 과연 이 세상에 남아있을까? 그게 문제다.(·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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