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과 주관, 김가중 예술론 연재4.

한국사진방송 화요강좌 후기
뉴스일자: 2018년10월30일 15시11분

객관과 주관, 김가중 예술론 연재4. 한국사진방송 화요강좌 후기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 세계적인 산악인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한 말이다. 그는 이어서 한발짝 한발짝 걸어서 올라갔다.” 라고 기자회견 중 말해 많은 기자들을 감동 시켰다.

필자의 강좌에 어느 사진가가 딴지를 걸었다.

대상이 거기 있으니 찍는다. 이게 사진이 아닌가? 그런데 너는 실제 하지도 않는 장면을 찍고 현실과 맞지도 않는 이미지를 조작해 놓고 사진이라니 이건 사진이 아니지 않은가?”

 

寫眞이란 말은 진실을 복사한다. 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진은 진실해야 되며 진실 그 자체여야 된다. 라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다. 특히 필자가 사진을 시작할 즈음인 80년대 초반엔 이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존재조차 할 수 없었다. 필자가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사진의 가장 큰 덕목은 기록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남겼는가? 이 가치보다 더 큰 가치는 있을 수 없었다. 이 원칙에 의거해 사진가는 오로지 이 시대를 미래에 남겨 두어야 된다는 사명감에 젖어 그러한 대상들을 찾아 기록해두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진을 하기 위해서는 필자가 개발한 테크니컬한 사진 기법이나 현란한 암실 테크닉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사진을 테크닉으로 조작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윤리적으로 강력한 지탄을 받아야만 되었기 때문이다.

 

다큐, 보도용, 도감용, 인증샷, 이러한 사진류를 필자는 객관적인 사진이라고 정의 했다. 소위 말하는 리얼리즘이다.

 

사진이면 어떻고 사진이 아니면 어떻단 말인가?’ 이건 필자의 생각이다.

대상이 무엇이냔 필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대상을 그 대상답게 찍어내는 소질도 없으려니와 그럴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 재떨이를 찍었는데 우주선 같아 보일수도 있었고, 컵을 찍었는데 달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체가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었고 또 중요하지도 않았다.

 

눈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사진이 쨍하게 잘 나왔느냐도 중요지 않았고 내 가슴으로 무언가 치고 들어오는 그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했다.

 

즉 대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 사진은 성북구청, 삼선교, 인사동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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