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의 가을

단풍보다 더 애절한 낙선재의 그늘
뉴스일자: 2019년11월30일 06시54분


창덕궁 후원의 가을
단풍보다 더 애절한 낙선재의 그늘


오랫만에 창덕궁 후원을 걸어봤다. 통칭 '비원'이라고도 부르는 창덕궁 후원은 하루에 100명 만 입장이 가능하고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창덕궁 후원 역시 올해는 단풍이 그리 잘 익은 편은 아니었다. 선명하지가 않고 익기 전에 시들시들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역시 후원의 단풍은 궁궐의 정자 및 연못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여기에 마침 사진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가 어린이 모델(?) 두명을 동반해서 금상첨화였다. 깜찍하고 귀여운 소녀 두명이 엄마와 함께 와서 예쁜 한복을 여러번 갈아 입으면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촬영도 허락해줬다. 초상권 문제가 있어 어린이들 엄마의 허락을 받아 몇장 만 살짝 올려본다. 


 

후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낙선재도 돌아봤다. 낙선재는 단청에 되어 있지않아 오히려 단아한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조선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과 그의 비 이방자 여사께서 말년에 살으셨던 곳. 이방자 여사는 비록 일본 황족이었고 정략적 결혼이었지만 조선의 며느리답게 영친왕을 정성껏 받들면서 조선황실의 마지막 황태자비로서 이곳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 내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일본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대한민국이다. 내 남편이 묻혀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고 말씀하셨던 황태자비. 영화 '덕혜옹주'가 생각난다. 눈물 머금고 봤던 그 영화. 1963년에 환국한 영친왕 이은(李垠)은 낙선재에서 1970년에 생을 마쳤다. 덕혜옹주는 정신병자의 몸으로 귀국 후 수강재에서 머물렀다. 덕혜옹주가 돌아온 이듬해에  황태자비 이방자(李方子, 1901~1989)도 귀국해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냈다.

조선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가 낙선재와 수강재에 함께 머문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며 만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는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낙선재에서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9일 뒤인 4월 30일 이방자 여사도 생을 마감했다. 비운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니 마음이 착찹했다.

 

낙선재의 그늘은 단풍보다 헐씬 더 애절했다.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궁궐담벽 위 감나무 가지만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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