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기간 : 2024. 8. 6 (화) – 2024. 8. 22 (목)
작가와의 만남 : 8월 10일(토) 4pm / SPACE22 세미나실
오프닝 리셉션 : 8월 10일(토) 5pm
전시 기획 : 최연하(미술비평, 독립큐레이터)
⬛ 기획 의도
<아리랑 서울 Arirang Seoul>은 고정남 작가의 대표작 중에서 ‘아리랑’에 의해 촉발된 감각과 관심으로 이뤄진 상징적인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다. 고정남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서 연 첫 번째 개인전 <집, 동경이야기>(2002)를 시작으로 <진달래>(2007), <호남선>(2017), <비비소소만경>(2018), <하이쿠:인천사이다치바>(2018), <수인선 水仁線, SuinRailroad)>(2019), <월미도 로망 쓰>(2020~2022)와 최근 전시 <통일로 진달래>(2024)까지, 20년 넘게 작가를 붙들었던 화두는 100년 전 일제강점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아리랑’ 정서이다. ‘아리랑’이라는 관념과 추상은 고정남의 사진 작품에서 근대 예술인과 예술 작품 속 주인공의 초상 사진으로 부활한다. 그리고 미술작품과 문학 텍스트, 근대 건축물과 특별한 장소성으로 구체화 되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새마을 운동과 현재의 시공이 뒤섞여 작가의 내부에 깃들인 존재의 표현형식과 만난다. ‘상상력을 더해 기록적 가치를 높이기, 역사를 추체험하며 역사적인 장소를 재해석하기, 역사적 상징물을 재현하기, 사진적 상황을 스냅 촬영해 몽타주와 콜라주하기, 역사의 산물을 수집하기’ 는 고정남 특유의 스타일이다. 한국 현대 사진에서 역사 해석의 새로운 접근을 선보인 고정남 작가를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전시 <아리랑 서울 Arirang Seoul> 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 김종태의 <노란 저고리>, 이쾌대의 <봉숭아>를 재해석한 작품 세 점이 나란히 걸린다.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그림 속 모델들이 100년의 시공을 넘나들며 전시장에서 관객을 맞이하게 된다. 이 외에도 근대 소설의 주인공과 문학 작품의 초상, 통일로 진달래 시리즈를 선보인다. 8월 10일(토)에는 작가와의 만남을 전시장에서 진행한다. 고정남 작가의 <아리랑 서울> 전시와 함께 8.15의 의미를 새삼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기획 : 최연하)
⬛ 고정남 작가 노트
<아리랑 서울 Arirang Seoul>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불렀다. 흰옷을 즐겨 입어서이다. 일제가 그렇게 불렀다는 말도 있다. 여기에서 흰색은 실재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흰색은 순수를 상징하고, 흰옷은 순수한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 역사상 아픈 상처로 기억되고 있다. 유학 시절 도쿄에서 본 오래된 일본 가옥들은 놀랍게도 고향 장흥에서 보던 집의 모습과 같았다.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 곡물을 수탈해 가던 일본이 남긴 유물이다. 역사는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업은 정해진 내러티브를 구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 예술로서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호남선과 수인선 철길을 지나는 기차처럼 일상이 계속되어 기념비를 세우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긴장하는 욕망은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아도 된다. 무심하게 내버려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계산을 하여 구상했다. 사진으로 표현하는 낭만을 월미도 로망 쓰에서 절제된 형식으로 펼쳐보았다. 이번 전시의 <Arirang Seoul> 시리즈는 한국 근대 회화작품을 오마주하여 사진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했다. 1900년경부터 1960년대까지 20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근대 미술은 역사적 격동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의 시대상과 사회적 변화를 촘촘히 담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매체 특수성을 활용한 재해석을 통해 당대 작가들이 시대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 탐구하고 우리나라 근대미술 시기 특징을 살피고 다양한 오브제를 빌려 색의 감정을 담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고정남)
⬛ 평론
고정남의 <아리랑 서울> 혹은 역사적 상흔
윤범모 (동국대 명예석좌교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사진작가 고정남은 그동안 <호남선>, <아리랑>, <수인선>, <월미도 로망 쓰> 같은 연작을 발표했다. 이들 소재는 대개 일제 강점기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도 상처의 현장이기도 하다. 호남선(1914년 개통)이나 수인선(1937년 개통)은 일제가 곡물 수탈의 수단으로써 개설한 철도다. 대전에서 시작하여 호남평야를 지나는 열차, 얼마나 많은 애환을 실어 날랐겠는가. 수원역과 인천역 사이의 수인선은 1990년대 철거되기까지 협궤열차로 민족의 애환과 함께했다. 물론 철거되기 전 한때는 역설적이게도 낭만 실은 청춘남녀의 사랑열차 비슷한 시절도 없지 않았고, 현재는 일반 철로의 복선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일제의 교통망 확장은 산업과 문명의 발전이라는 미명을 내세웠지만 사실 수탈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느 학자의 표현대로 ‘개발 없는 개발’ 시대의 산물이었다. 고정남은 이와 같은 철로를 답사하면서 주변 풍경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 장소나 제작 의도를 따로 듣지 않으면, 우리 산야의 평범하고, 그렇고 그런 풍경의 하나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역사의 상흔을 바탕에 깔고 시작했기 때문에 별도의 주목을 요하고 있다. 고정남은 커다란 목소리로 자기 주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가 작업에 담으려는 주제 의식은 역사의 상처 즉 우리 민족의 일그러진 과거를 오늘의 시각에서 환기하려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은 풍경, 고정남의 작가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월미도 로망 쓰> 연작의 경우, 작가적 태도와 특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근래 고정남 작가는 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 나는 고 작가에게 무슨 목적으로 사진 작업하냐고 질문한 적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처럼 여겨졌다.
“일본 유학시절 도쿄에서 본 오래된 일본 가옥들은 놀랍게도 고향 장흥에서 보던 집의 모습과 같았다.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은 일제 강점기 곡물을 수탈해 가던 일본이 남긴 유물이다. 나는 역사는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해진 네러티브를 구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 예술로서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오늘날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는 자연이 있다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풍경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이나 사람들도 시간을 이겨 원형을 유지한다면 그것 나름대로 소소한 힘이 있을 것이다. 호남선과 수인선 위를 지나는 기차처럼 일상이 계속되어 기념비를 세우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긴장하는 욕망은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러 내버려 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계산하여 구상했다. 사진으로 표현하는 낭만을 <월미도 로망쓰>에서 절제된 형식으로 펼쳤다. 이번 작업은 이처럼 한국사의 불행한 시기에 해당하는 일제 강점기 당시의 오브제를 빌려 색의 감정을 담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위의 내용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적산가옥의 추억부터 시작한다. 적산가옥, 글자 그대로 적이 남긴 집이다. 고정남은 적산가옥 같은 역사의 잔재, 특히 일제 강점기라는 식민지 치하의 역사에 관심을 두었다. 역사적 흔적이어서 그랬을까, 그는 현장을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았다. 방치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계산하여 구성했다는 고백은 흥미롭다. 계산했다? 하기야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고 지나친 기교는 졸렬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좋은 작품은 기교를 숨기고 있기도 하다. ‘계산했음’을 표면에 들어내는 작품은 하수의 수준일 것이다. 역사를 어떻게 화장하거나 가공할 수 있겠는가. 고정남은 역사를 사진에 담되 예술로서 역사를 말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걸음 더 나가 풍경의 힘을 신뢰했다. 하기야 식민지 시절의 상흔이 뭐 그렇게 아름답겠느냐마는 그는 의도적으로 대상을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았다. 아름다움만이 사진의 모든 것이라고 신봉하는 사진작가들과 위상을 달리한다.
*<월미도 로망쓰> 연작의 의의
고정남의 <월미도 로망 쓰> 연작은 한마디로 ‘심심하다’. 뭔가 꾸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도 그렇고, 또 그렇고 그런 풍경의 하나여서 그런가, 나른한 오후의 풍경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좋게 표현한다면 절제된 형식으로 얻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시절 유원지로 개발한 월미도, 지금은 조락(凋落)한 풍경, 아무리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도 원풍경 자체부터 불가능한 현실이다.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첨삭 가공할 수 있겠는가. 진정성은 역사 의식의 출발이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은 현장의 외피는 기록할 수 있을지언정 본질을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진은 역사적 사료의 파편에 불과한 것인가.
“사진은 역사가 되지 못한다. 늘 역사적 사료나 파편일 뿐이다. 사진가가 접근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이미지들은 과거, 역사를 덮고 있는 외피이다. 그 외피를 걷어 내고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정남도 마찬가지이다. 고정남이 선택, 기록한 월미도는 그가 찍은 사진에 등장하는 것처럼 산산이 박살 난 수박이다. 파편들로 나누어져 대강 접할 수는 있지만,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고정남 작업에는 정물처럼 서 있는 인물들, 진달래를 비롯한 꽃 등 이른바 그의 일본 유학시절 스승이 언급했다는 ‘초 평범’한 사물들은 그의 작업 속에 단골 배우처럼 등장한다. 이 패턴들과 색채와 시점이 맞물려 의도한 사진 전체를 지배해 왔다. 일제시대의 레코드나 철도망 그림을 바닥에 놓아 현실과 이미지를 접합하는 방식도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충분한 효력을 발휘했다. 때문에 다소 염려도 된다. 이것들이 가진 기본적인 클리세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화되는 경우 장소와 소재만 다르고 익숙함이 되풀이되는 사진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강홍구, <고정남의 월미도- 징후 독해 혹은 징후 촬영>, [월미도 로망 쓰])
사진은 역사적 사료나 파편이라는 강홍구의 말은 참담(?)하다. 사진은 현실이나 역사의 외피를 기록한 것. 이것은 사진의 한계란 말인가. 이와 같은 지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고정남 작업을 본다면, 그의 역사에 임하는 ‘낮은 자세’는 수긍할 수 있다. 고정남은 현장을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았고, 객관적 위치에서 무심하게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물론 작가의 말처럼 계획된 구도여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지키려 하고 있다. 고정남의 <월미도 로망쓰>는 월미(月尾)라는 이름의 ‘달의 꼬리’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현재 낭만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역설적 표현처럼 ‘로망쓰’라 했다. 과연 고정남의 월미도 프로젝트에서 어떤 아름다움이나 로망스를 찾을 수 있겠는가. 무심한 듯, 하지만 그냥 무시할 수 없는 풍경. 사소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그 역사적 현장의 아픈 상흔. 고정남은 낮은 자세로 증거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바다가 그리워 월미도에 갔다. ‘사랑과 낭만이 있는 월미도,’ 복잡한 마음을 덜고자 찾은 바다에서 마주친 것은 알록달록한 칼라와 타인의 사소한 행복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풍경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요소가 기획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제멋대로 생겨나 제멋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곳을 즐기고 나름대로 만족하여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관찰자로서 이 광경이 주는 실소와 안도감을 즐기게 되었다. 이윽고 이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월미도가 처음부터 낭만의 유원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 근현대사의 서사가 이리저리 할퀴고 지나간 무대다. 역사의 상흔이 조악한 관광상품으로 뒤덮여 가면서 나타나는 특징들, 자본이 역사를 가리며 만들어진 뽕짝-풍의 친근하고 기이한 명랑함이 월미도의 지금을 만들었다. 키치는 필요에 의해 파생되어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든 흔적이다. 나의 사진적 행위 또한 월미도-키치의 일부가 되었다. ‘월미도에 가니 디스코팡팡도 있고 공연하는 사람도 있고 사진 찍는 사람도 있더라’ 정도의 대등한 존재. 나는 월미도가 내뿜는 원색적인 욕망과 거친 느낌의 장면들을 키치적 현상으로 꾸준히 연결했다. <월미도 로망 쓰> 프로젝트는 거대한 키치 그 자체인 월미도에 대한 기록이다.” ([월미도 로망 쓰] 작가의 말)
알록달록한 색채와 사소한 행복의 월미도 풍경. 하지만 제멋대로 생기고, 제멋대로 배치된 풍경. 관찰자로서의 고정남은 이와 같은 풍경을 기록했다. 역사의 상흔은 조악한 상품으로 바뀌어 키치의 현장이 되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거기에 원색적 욕망도 있다. 그래서 역설적 ‘로망스’라 했을까. 그렇고 그런 풍경을 촬영하면서.
“고정남 사진 속에는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캐릭터가 표정 없이 등장한다. 사소한 에피소드가 모호한 장면에 담기니 사진은 대체로 힘이 빠진 스냅샷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주제나 배경으로 찍힌 사진들도 있고,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 반복해서 등장하기도 한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사물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렇듯 파편적인 이미지들, 맥락이 없어 보이는 오브제와 풍경은 친절한 서사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당혹감을 안겨줄 것이다. 거기에 심심하고 단순하며 심지어 삐딱하게 치우쳐진 구도가 있어서 작가의 의도를 캐내기란 여간 심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진 보기의 불편함은 잠시, 무심히 공간을 훑는 줄 알았던 고정남의 카메라는 일순간 시대의 애환이나 소시민의 비애와 겹쳐져 이미지의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다. 이미지의 행간에 텍스트를 배치하거나, 문자가 새겨진 오브제가 작가의 사유를 펼치고,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그가 수집한 각종 오브제의 초상을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최연하, <관능의 인덱스, 사진의 횡단- 고정남, [한국 사진의 힘], 월간미술)
이미지의 새로운 도약. 고정남의 작업에서 이와 같은 이미지의 도약을 읽어 낼 수 있다면, 그의 작업은 나름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다. 사소한 에피소드와 맥락 없는 오브제, 고정남의 언어에서 만나는 일상사다. 그래서 그랬을까.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선호했고, 자신의 사진집에 인용했다.
“저속한 것에 높은 의미를 주고, 평범한 것에 신비스러운 외관을 부여하고, 기지의 것에 미지의 품위를 부여하고, 유한한 것에는 무한한 가상을 부여함으로써 자아는 낭만화된다.”(노발리스(Novalis), <로고스학 파편>)
평범한 것에 신비스러움을 준다는 것. 그것은 바로 사소한 것에 대한 사소하지 않음, 이런 자세와 연결할 수 있겠다.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 일종의 트리비얼리즘(trivialism)과 가까운 것인가. 트리비얼리즘의 사전식 해설은 평범하고 통속적일 정도로 흔한 일을 의미한다.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문제로 씨름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자연주의 문학에서 자주 사용했던 용어이고, 한국문학에서도 1960년대 후반 잠깐 사용하기도 했다. 아무튼 사소한 문제에의 과도한 천착. 이러한 자세에는 섬세한 관찰과 선택 그리고 시점에 따른 이미지 고정이라는 절차가 따르기도 한다.
고정남은 사소한 것을 사소한 자세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역사적 상처나 지난 세월의 그렇고 그런 흔적들을 증거하고 있다. 수인선이나 호남선 연작의 경우, 차창에 비친 마을 풍경 같지만, 식민지 치하 수탈의 길을 다시 복습하듯 답사하는 작가적 자세를 헤아리게 한다. 그의 <월미도 로망 쓰>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사소한 것에의 과도한 집착 혹은 사명감에 따른 현장 보고와 같다. 트리비얼리즘의 전복(顚覆)이라 할까. 사소한 풍경에의 과도한 집착 같지만, 고정남은 한물간 월미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과거를 소환하고, 시각적 볼거리보다 사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준다. 이 점이 고정남 작업의 이중 장치이기도 하다. 일견 ‘이발소 그림’ 같은 키치이지만, 그 내면에 담겨 있는 어떤 상징성이나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