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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보름달 밝은 한가위날 운현궁에서 첫 민화 개인전
작성일 : 2025년09월01일 18시24분  조회수 :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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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휘영청 보름달 밝은 한가위날 운현궁에서 첫 민화 개인전

첫 민화 개인전을 여는 운현궁은 조선 제 26대 고종이 탄생한 곳이고, 또한 고종의 생부 흥

선대원군이 1886년 청나라 텐진으로 납치 되었던 곳이다. 조선은 끝내 1910년 일제에 강점

당했다.

이러한 굴욕의 역사 격랑 속에서 민화그날 명칭이 나왔다. 19293, 일본 교토에서 열

린 민예품 전람회에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속적 회화그날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

바로 민화民畵라는 명칭의 시작이다.

그 지긋지긋했던 일제 식민지에서 마침내 1945815일 해방 되었다.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민속적民俗的회화‘~속되다. 저속하다’,‘

된 그림이란 뉘앙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화 그 날 명칭은 여과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사

용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민화의 민자애도 문제가 있다.그 유래가 옛날 전쟁에서 상대방의 군사를

잡아오면 먼저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눈알을 침으로 찌른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기 때

문이다. 자 위 네모 모양은 눈동자이고, 이것을 향해 비스듬히 올라온 것은 이다.

이러한 자를 접두어로 민화民畵라고 한 것은 어두운 그림’, ‘반쪽 그림’ ‘보이지않은

그림 이라는 의미와 다름 없다.

그런데 고대 한국사를 돌이켜보면, 한민족을 배달의족일라고했다. 지금은 이 말이 음식 배

달 따위로 쓰는 배달민족이란 말로 회화화되었지만, 본디 어원은 밝달’, 밝은땅이었

. 고조선의 도읍 아사달과 같은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조상들은 밝은땅에 살면서 밝은사상을 추구했다. 이러한 사상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그리는 그림은 밝은 그림일 수밖에없다. 한자 풀이는 명화名畫.

지금 코로나로 인해 나라 안팍이 마치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우중충하다. 불쾌지수가 높아 가

는 이러한 시기에, 비록 짧은 전시회 기간이지만 민화民畵대신 밝은 그림(明畵) 라는 명칭

을 산기로 했다. 코로나에 지친 시민 여러분들에게 내일을 위한 밝은 꿈과 희망의 기운

불어 넣어 드리기 위해서다.

여러분 밝은 그림으로 힐링하세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운현궁 이로장 뒷 편에 있었던 고종이 소년 시절에 자주 올랐다는

노송老松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흘러간 역사를 회고하려 한다.

2021918(), 阿利英 이미형

 
 
이미형 (lmh000333@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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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녕 (2025-09-02 06:27:49)     0   0  
역사 공부와 明畵 좋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8571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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