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보름달 밝은 한가위날 운현궁에서 첫 민화 개인전
첫 민화 개인전을 여는 운현궁은 조선 제 26대 고종이 탄생한 곳이고, 또한 고종의 생부 흥
선대원군이 1886년 청나라 텐진으로 납치 되었던 곳이다. 조선은 끝내 1910년 일제에 강점
당했다.
이러한 굴욕의 역사 격랑 속에서 ‘민화’ 그날 명칭이 나왔다. 1929년 3월, 일본 교토에서 열
린 민예품 전람회에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속적 회화’ 그날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
바로 ‘민화民畵’ 라는 명칭의 시작이다.
그 지긋지긋했던 일제 식민지에서 마침내 1945년 8월15일 해방 되었다.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민속적民俗的회화’ 의 ‘~속俗’에 ‘속되다. 저속하다’,‘속
된 그림’이란 뉘앙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화 그 날 명칭은 여과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사
용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민화의 민民자애도 문제가 있다.그 유래가 옛날 전쟁에서 상대방의 군사를
잡아오면 먼저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눈알을 침으로 찌른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기 때
문이다. 민民자 위 네모 모양은 ‘눈동자’ 이고, 이것을 향해 비스듬히 올라온 것은 ‘침’ 이다.
이러한 ‘民’자를 접두어로 ‘민화民畵’ 라고 한 것은 ‘어두운 그림’, ‘반쪽 그림’ ‘보이지않은
그림 이라는 의미와 다름 없다.
그런데 고대 한국사를 돌이켜보면, 한민족을 ‘배달의족’ 일라고했다. 지금은 이 말이 음식 배
달 따위로 쓰는 ‘배달민족’ 이란 말로 회화화되었지만, 본디 어원은 ‘밝달’, 즉 ‘밝은땅’ 이었
다. 고조선의 도읍 ‘아사달’ 과 같은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조상들은 ‘밝은땅’에 살면서 ‘밝은사상’을 추구했다. 이러한 사상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그리는 그림은 ‘밝은 그림’ 일 수밖에없다. 한자 풀이는 ‘명화名畫’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나라 안팍이 마치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우중충하다. 불쾌지수가 높아 가
는 이러한 시기에, 비록 짧은 전시회 기간이지만 ‘민화民畵’ 대신 ‘밝은 그림(明畵) 라는 명칭
을 산기로 했다. 코로나에 지친 시민 여러분들에게 내일을 위한 ’밝은 꿈‘ 과 희망의 기운’을
불어 넣어 드리기 위해서다.
“여러분 밝은 그림으로 힐링하세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운현궁 이로장 뒷 편에 있었던 고종이 소년 시절에 자주 올랐다는
노송老松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흘러간 역사를 회고하려 한다.
2021년 9월 18일(토), 阿利英 이미형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