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닫이문 뒤의 빛〉
기억 저장 속을 더듬다
낡은 상자 하나를 꺼내면
먼지 사이로 아직 식지 않은 숨결이 피어난다
그날은 유난히도
꿈이 야무져서 손에 쥐면 금방이라도
새가 되어 날아오를 듯했지
가려 했던 그 길은
지도에도 없었지만
가슴에는 또렷해 밤마다 별빛으로 그려지곤 했다
벽장 속
미닫이문 뒤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작은 용기 들킬까 숨죽이면서도 끝내는 나를 불러내던 빛
곱게 꽂아 두었던
빗바랜 두루마리 그림들 시간이 색을 앗아갔어도
마음은 한 번도 그 빛을 지운 적이 없었다
그땐 그랬지
세상은 멀고 나는 작았으나
꿈은 늘 나보다 컸다
그리고 이제 와 돌아보니
흩어진 줄 알았던 조각들이
은밀히 이어져 오늘의 나를 완성하고 있다
그리움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루어져 가는 중이라는 걸
미닫이문을 다시 열어보면
어둠은 없고 조용히 자라난 빛 하나
나를 향해 여전히 빼꼼히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