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嘉中 fictiot ‘전문작가 카메라 25만원’

입력 2026년02월26일 16시51분 김가중 조회수 342

Fantasy work docent: 나의 사진예술은 내러티브와 메타포가 동일 궤도에서 일치되는 순간의 미학이다,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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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예술에의 탐닉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예술이 그 가치를 상승시킬 여행을 추천했습니다. 나의 인생에 藝術이라니? 언감생심 터무니없고 생뚱맞은 단어였습니다. 그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도 웬지 송구스럽고 온몸에 까실한 소름이 돋아오릅니다.

 

김가중 작가를 소환합니다.

그는 남대문의 어느 가게로 데려가 25만원 싸구려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주었습니다. 렌즈를 포함한 가격임으로 싸도 너무 싼 카메라입니다. 이 거리에서 최고로 비싼 카메라를 사서 온몸에 돋아오른 소름을 상쇄하고 싶었는데... 요즈음 사진작가들 중 더러는 가방에 든 것만도 1억이 넘는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였고 최소 1천만원은 넘어야 그런대로 사진을 찍어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쪽 팔리게 이게 뭐야?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속으로만 그를 비난했을 뿐 겉으론 내색할 수 없었습니다.

 

니콘 D700인가? 24~120mm 렌즈가 포함된 가격입니다. 렌즈도 금딱지가 붙은 걸로 보아 제법 고급품인 것 같더군요. 크고 무거웠습니다. 전문작가용으로 제작된 DSLR(1안리플렉스)고급 카메라였기에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었지만 사실입니다. 훗날 신비주의 힐링가요 송학사를 빅히트시킨 국민가수 김태곤 박사(그는 지식에 대한 탐구열이 매우 높아 음악의 조예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 예술가다.)에게도 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추천했는데 김태곤 박사가 그 카메라를 추천받은 이유는 그 작가와 똑같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즈음 사진작가들에게 미러리스 카메라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휴대용 카메라의 역사를 보면 미러리스 카메라가 먼저였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똑딱이 카메라혹은 뷰파인더 카메라라는 명칭을 사용했다죠. 이 방식은 렌즈 위나 옆에 사각의 뷰파인더가 붙여 구도를 잡아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 방식의 치명적 결함은 렌즈를 통해서 보지 못하기에 시차가 심해 구도가 정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렌즈 교환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훗날 렌즈의 뒤편 필름의 초점부에 거울을 부착하여 렌즈를 통하여 대상을 볼 수 있는 카메라들이 개발되고 거울을 5각형(펜타프리즘)으로 거꾸로 보이던 화상을 바로 잡아 주는 SLR(1안 리플렉스)카메라가 발명되며 사진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답니다.

오랫동안 사진예술의 대세를 이루던 이 방식은 몇 가지 단점이 있었죠. 크고 무겁다는 것과 얼개가 복잡해 고장에 취약하고 가격이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렌즈의 초점면엔 필름(디카에선 메모리)을 넣었는데 거울이 막고 있으니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재빠르게 거울이 비켜주어야만 촬영이 됩니다. 거울은 유리임으로 제법 무겁고 촬영 후 다시 거울을 부착하는 장치는 대단히 정교해야 됩니다. 찰나의 순간에 촬영이 되는 것이 사진의 속성임으로 이 기술은 자동차나 시계 제작 기술과 동격으로 고난도 기술이었습니다. 이제 렌즈를 통해서 대상을 볼 수 있으니 비약적인 광학 기술이 발전하게 됩니다. 인간의 눈보다 엄청나게 넓게 볼 수 있는 광각렌즈, 인간의 눈보다 훨씬 멀리 있는 물체를 압축하는 망원렌즈, 줌 렌즈들이 수차를 극복하여 사진예술의 전성기를 이룹니다.

 

SLR 카메라는 거울이 비켜주고 다시 부착되고 하는 과정에서 카메라가 진동하게 되고 소리가 요란하다는 결함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와 함께 눈부시게 발달한 디지털 비디오카메라의 기술이 스틸카메라로 옮겨와 디지털 미러리스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거울이 없어도 되니 작은 몸체가 가능하고 거울의 작동과 기계식 셔터의 작동으로 초당 촬영 시간에 한계를 극복하고 초당 20컷 이상 촬영이 가능하니 동체 촬영에 탁월합니다. 특히 블랙아웃 현상(거울 때문에 촬영 순간을 볼 수 없다.)이 없어졌고 스트로보의 고속 동조도 개선되었습니다. 시야율도 100%가 되었고 조리개와 렌즈의 길이 초점거리에 의하여 변화되는 배경 흐림(피사계심도)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노출에 따른 화상의 명암농도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계식 셔터로는 불가능한 셔터속도의 디테일한 제어와 특히 소음에서 자유로워 골프경기나 클래식 공연, 예민한 동물촬영이 압권입니다.

 

이제 미러리스 카메라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중고 DSLR 카메라의 가격이 턱없이 싸진 이유입니다.











 

우리들의 작가가 유기에게 싼 카메라를 사 준데는 그의 예술 지론이 작용했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 어느 평자는 내러티브와 메타포가 동일 궤도에서 일치되는 순간의 미학이다,” 라고 표현했죠. 작품 몇 점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과 파는 여인

80년대 거리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양장점 앞에 세워 둔 마네킨입니다. 옷 가게임을 선전하는 광고판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퍼포먼스는 옷 가게가 배경이 아닌 양장점 옆의 과일 점을 배경으로 촬영합니다. 카메라의 포지션을 30cm가량 옆으로 돌린 겁니다. 작가는 그 행위로 무생물인 마네킨에 생명을 부여했습니다. 양장점 배경이면 그냥 광고판일뿐입니다. 하지만 과일점이 배경이 되니 이 마네킨이 사과를 팔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처음 제목은 우리 마누라였는데 사과 파는 여인으로 모 신문사 공모전에 출품했습니다.

 

절규또는 함성

역시 80년대 작품으로 골목의 벽채에 세워진 시멘트 굴뚝입니다. 작가의 퍼포먼스는 그 굴뚝의 갈라진 시멘트 사이에 자신의 장갑을 끼워 코를 상징했습니다. 무너진 굴뚝이 절규하며 함성을 지릅니다. ’형상류의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절의 작품입니다.

 

“58일 어버이의 날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가족을 위하야 자신의 한 몸은 언제든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도 내색조차 하지 않습니다. 왼 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계단입니다. 어머니는 묵묵히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에 거대한 하트가 새빨간 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뉴욕 경매에서 소닷을 친 이명호 교수의 작품을 우리의 작가는 나무 뒤에 천을 치는 퍼포먼스를 통하여 자연을 세상을 나의 관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나의 세계, 나만의 왕국을 세우는 것 이다.” 라고 평하여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김아타 작가가 강원도의 어느 산에 이젤을 세우고 빈 캔버스를 올려 둡니다. 3년인가? 긴 시간 동안 그 캔버스가 눈비를 맞고 새똥을 맞고 들풀의 씨앗들과 곰팡이와 이끼가 끼어 새하얀 순결한 백지가 더럽혀졌습니다. 세월의 흔적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인 작품이다라고 감동을 평했습니다.

 

미장센 사진으로 유명해진 베르나르 포콩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1회용 카메라를 한 대씩 돌립니다. “너희들 마음대로 찍어와” 1주일 쯤 후 그 카메라에 든 필름들을 인화하여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대박이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었는데 그의 예술은 이랬습니다. 달력을 만들거나 벽걸이용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그의 예술은 아닙니다. 그에겐 자신만의 심연을 두들기며 느닷없이 폭발하는 순간의 인상이 중요합니다. 찰나의 순간에 번쩍하는 번갯불 같은 재치와 임기웅변을 중시했습니다.

 

사진은 인식이다.

자신의 개성과 경험과 감정과 지식과 기술이 번쩍하는 재치와 동일한 궤도상에서 일치되는 순간이 곧 사진이다. 고로 사진가는 자신과 대상에 대해서 최대한의 존경을 기울려야 된다. 라고 주장했으며 뭇 사물들을 매우 유심히 관찰하여 남들이 미쳐보지 못한 세계를 날카롭게 캐치 하는데 능한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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