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 그 정적 속에 실루엣

입력 2026년02월28일 20시40분 Kanjo Aryna 조회수 181

설맞이, 영월 여행

어떤 장소를 방문할 때, 그곳은 우리 기억 속에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로 남곤 한다. 때로는 눈길을 사로잡은 작은 사물로, 때로는 함께 걷던 이의 웃음소리로,

그리고 가끔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낯선 이의 뒷모습으로.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도, 삶의 궤적도 알지 못 한다.

그저 찰나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를 잠시 교차시키고 지나쳤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짧은 만남이 남긴 잔상은 너무나 강렬해서,  훗날 그곳을 다시 떠올릴 때면 장소보다 그 낯선 이의 실루엣이 먼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리는 바로 다음 여행 목적지인 청령포에서 그런 낯선 이를 만났다.

 

어린 왕, 단종의 애달픈 유배지가 되었던 청령포. “육지 속의 섬”으로 알려진 그 곳 중심에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고고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얼핏 보면 두 그루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밑동에서 두 갈래로 뻗어 나온 600년의 시간을 품은 관음송(觀音松)이다.

단종이 유배 생활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갈라진 가지 사이에 몸을 뉘어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슬픔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나무다.

 

 

우리는 그 나무 곁을 지나다 한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마치 무언가 깊은 대화를 나누듯 나무를 응시하고 있었다.

- 그녀는 구부러진 나뭇가지 사이에서 어린 왕의 흔적이라도 발견했던 걸까요?

- 아니면 촘촘한 솔잎 사이로 내리는 눈부신 햇살에 마음을 빼앗겼던 걸까요?

-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구친 거대한 줄기에서 생의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내가 다시 청령포를 찾게 된다면 600년 된 고목보다도,

그 짙은 정적 속에 박제된 듯 서 있던 그 여인의 실루엣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위치: 영월 청령포

       2026년 2월 15일

결제하실 금액은 원 입니다.
무통장 입금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