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 work docent: 촬영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야릇한 냄새, 후끈한 열기, 깊디깊은 겨울 산속에 들어온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적막.
찰찰찰칵칵칵! 카메라 셔터 소리!
“손바닥 펴봐 그 손바닥으로 유방을 받쳐 올려. 팔뚝 더 모으고 좋아 볼륨 엎 좋아 쥐긴다.”
“다리 더 벌려 봐! 좋아, 에라 모르겠다 완전 쩍 벌려봐! 더! 더! 더! 좋아 양손으로 바닥에 짚어 가운데 가리고....두 손바닥 임팩트 힘주고...”
똑똑똑! 정적을 깨트렸습니다. “뭐야? 이 시간에 누구야?” 눈동자들이 일제히 커지며 긴장모드, 빼꼼히 내다보니 긴 가죽 장화! 허리벨트엔 번들거리는 시커먼 권총이 매달려 있습니다. “헉!”
“빨리 옷 던져, 모델 빨리 입어 아니 그냥 우선 가려”
똑똑똑! 더 거칠고 더 큰 소리. 안으로 성큼 들어선 것은 경찰관이었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은 절묘한 속담입니다.
혼비백산하여 캣우먼에게 옷을 던져주고, 이미지 저장기는 소파 밑으로 던져넣고 카메라를 소파 위로 던져놓고 깔고 앉았습니다. 10억광년 쯤 시간이 흐른 것 같았고, 얼마나 어눌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당시엔 깨닫지 못했습니다. 파리의 닳고 닳은 민완형사인데 그의 코앞에서 시츄에이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의 운도 다하였구나,’ 비굴한 썩소를 날리며 풀린 눈동자가 올려다봅니다. 녀석은 빙긋 웃었습니다. 의외로 외로운 듯 슬픈 듯 종잡을 수 없는 표정입니다.
"아이 엠 굳 폴리스!“
빨래를 베란다에 내다 걸면 처벌
알몸으로 베란다에 나오면 처벌(그런 경우가 많은 모양, 사실 나도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에서 알몸으로 이불을 터는 아낙네를 거의 아침마다 목격)
신발을 복도에 허락 없이 방치하면 처벌
나무를 허락 없이 자르면 처벌
10시 이후 파티 허락 득하지 않으면 처벌
화장실 변기 소리 너무 크면 처벌
생선 비린내, 김치찌개 냄새 심하면 처벌
단 시인하면 처벌하지 않고, 사과하면 금방 깨끗이 풀어져 친해진다. 파리의 경찰관들은 우리네처럼 할당량 성과 올리는 방식은 아니고 재량권.
녀석은 촬영을 계속하라고 종용,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깔고 앉은 자존심도 그랬지만 사실 다리가 풀려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촬영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몇 시간 동안 카메라의 파인더를 노려보고 나면 기나긴 여행을 마쳤거나 환상적이고 격렬한 섹스를 나눈 것과 흡사하게 기진하고 맥이 빠집니다. 뼈마디가 하나하나 분해 된 듯하고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듯 한 무기력, 우주에 한가운데 버려진 것 같은 허탈로 이어지곤 합니다. 거대한 블랙홀에 빠진 행성처럼 모든 것이 검은색뿐입니다.
단방에 저자를 때려눕히고 이미지 저장기를 들고 밖으로 튀려고 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내 눈빛을 보았다면 그가 무슨 일인가 벌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나의 행동이나 심리상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죠. 녀석은 한 손으로 권총을 하늘로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론 총의 손잡이와 혁대와 연결되어있는 고리를 분리하였습니다. 더욱 자유로워진 저 총구가 나의 심장을 겨누겠지? 천장을 향해 있던 총구가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누구도 겨냥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권총의 탄창을 이탈시키고 탄창 안의 가지런히 가지런한 황금 빛 총알들을 분리해 나의 옆에 투두둑 던졌습니다. 빈 탄창을 제자리에 끼웠습니다. 녀석은 손잡이가 내게 향하게 하고는 권총을 내밀었습니다.
"헤이, 이걸 소품으로 사용하면 멋질 것 같지 않아? 이 놈은 사납지 않아 아주 얌전해졌으니까 안심해도 좋아“
녀석이 오늘 쉬는 날이어서 누드 촬영을 구경하려고 온 것이지 우리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님을 이해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완전히 의구심이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이 녀석이 나를 안심하게 해 놓고 모델이 옷을 벗고 촬영하는 현장을 증거로 잡으려고 하는 거 아닐까? 여전히 마음은 불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그래 일단 촬영은 하자! 촬영을 포기한다고 그가 잡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묵직하고, 듬직한 권총을 받아든 나는 묘한 흥분을 느끼며 총구에서 화약 냄새를 맡아 보았습니다. 잠시 후 그는 두툼한 패스포드( 파리 경시청의 마크가 찍혀 있는 경찰 신분증)를 꺼내 리의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리와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신명 나게 촬영하였습니다. 갑자기 휑하고 바람이 불어옵니다. 머리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기분 좋은 바랍입니다. 비릿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스튜디오를 엄습했었는데 갑자기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경쾌하게 춤을 추며 알프스의 초원 위를 나르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권총을 소품으로 준 것은 녀석이 미리부터 생각해 둔 것인지 우발적인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자루의 권총이 만들어 준 작품은 희대의 걸작들입니다. 고백하자면 이 날 권총과 함께 한 작품은 수위가 매우 높고 찐했습니다. 사타구니를 통과하여 항문으로 비집고 나오는 총구, 새빨간 입술을 후비고 있는 총구, 턱밑을 치켜올리며 쿡쿡 쑤시고 있는 총구,
훗날 누군가 그 작품들을 보고 ”포르노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인이 한국만의 한국적인 한국을 위한 시각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