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 work docent: 址辣發光 지랄발광 촬영회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이동하면, 여체를 모티브로 설계했다는 거대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여체의 몸을 닮은 듯한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건물이다. 이 건물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서울운동장이 있었다. 서울운동장은 우리 근대 사회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역사적인 스타디움이었다.
그 무렵 청계천을 따라 거대한 판자촌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꼬방들은 엉덩이를 개천 쪽으로 비죽이 내밀어, 나뭇조각으로 만든 방 안에서 배설을 하면 그대로 개천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그 시절 청계천은 매우 더럽고 악취가 심했다. 판잣집에는 몸을 파는 여인네들도 많았는데, 그들이 버린 피임 도구들이 개천에 떠내려오곤 했다. 우리들은 아주 어렸지만 그 기구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을 주워 히히덕거리며 왼 종일 줄줄 빨고 다녔다. 청계천 일대는 거대한 슬럼가였다. 우리들은 그곳을 똥치굴이라고 불렀는데 똥치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다.
서울운동장은 이후 동대문운동장으로 개명되었고, 우리네 어둡고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애환을 달래주던 장소였다. 로마는 무너져내린 콜로세움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엄청난 문화적 부를 축적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관중들은 황제도 갈아치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시민들의 소통과 집합된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 바로 콜로세움이었다. 마찬가지로 동대문운동장도 남겨두었어야 했다. 우리네의 한 시대를 풍미한 소중한 유적으로서 말이다.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대형 운동장은 소통의 심장이다. 사회의 주요 잇슈들이 모이고 답이 도출되는 시대의 가장 주요 소통의 혈관이다.
“다 틀렸다! 튀어라!” 버나드 쇼가 갑자기 무작위로 10여명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다음날 찾아간 친구들의 집은 다 비어 있었다. 일단 어디론가 튄 것이었다. 사람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나? 위정자들은 구린내가 심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모여드는 운동장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가는 ‘址辣發光 촬영회’라는 누드퍼포먼스로 이곳의 마지막을 기록했고, 그것은 사진예술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전설로 남았다. 비록 이곳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그의 사진예술은 이 장소를 서울 시민들의 애환이 담긴 기억으로 영원히 남겨 두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멀리 북쪽, 한때 거대한 제국이었던 소련은 무너졌고, 이를 대체한 러시아는 혹독한 겨울 같은 경제난 속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하루 먹을 빵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도시 곳곳에는 생존을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이 늘어났고, 현직 교사도 샌드위치 한 조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아야 했다. 그들을 사람들은 ‘인터걸’이라고 불렀다.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를 강타했다.
사람의 값마저 바닥으로 떨어져, 100달러면 미스월드 같은 미녀와도 한 달간을 보내고 스타킹 한 켤레나 껌 한통이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무렵, 우리들의 작가가 낡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러시아 비행기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이 부분은 훗날 자세히 다큐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두 여인 마샤와 일리자벳.
둘은 텔레비전 광고에 나온 아름다운 연예인들이었다. 마샤는 훗날 한국의 자동차 광고에 등장할 만큼 유명해지기도 했다. 푸쉬킨 시의 오래된 성과 모스크바 교외의 초원,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자작나무 숲. 하늘은 푸르렀고 끝없이 넓은 초원엔 샛노란 유럽 민들레가 만발하여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중세 시대의 고성과 끝없는 초원 사이에서 두 여인의 몸은 마치 조각처럼 빛났고 천상의 뮤즈로 비상하였다.
자브라스키 자작나무 숲의 오후,
낡은 카메라는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기록하고 있었다. 셔터가 눌릴 때마다 바람이 잎을 흔들었다. 그 사진들은 누드였지만, 단순한 관능은 아니었다. 무너진 시대와 살아남으려는 인간, 역사의 아이러니에 갇혀 끝 모를 시련의 늪을 헤매는 젊음의 초상 같은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이때 촬영한 작품들은 공모전에서 무려 150개 이상의 수상을 기록했다.)
‘M의 초상’ 누드사진집
이 책을 발간하자 당시 문체부의 사회과 과장이 직접 허접한 작가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첫 마디가 “너 죽을래?” 두 번째 마디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누드사진집을 내?” 이제 죽는 수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영화나 방송물 책을 민간단체에서 심의 하거나 아니면 자체 심의를 한다. ‘영등위’ ‘간행물 심의위’ 즉 표현의 자유가 상당히 누그러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군사정권 정부의 사회과에선 말도 안 되는 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징기스칸’ 이란 노래를 알 것이다. 징 징 징 징기스칸 중독되는 리듬으로 세계를 중독시킨 팝송이다. 이게 한국에선 금지곡이다. 포복절도의 막간극은 마광수와 이현세 장정일을 동시에 감방에 처넣는 황당한 막장 드라마로 막을 내린다.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천국의 신화’ 이 만화 어디가 구속감이었을까?
바짝 쫄아 오줌을 지리고 있는 나에게 세 마디 째 발언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독생자 사람을 아들을 보내 구원하려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이건 봐줄게, 우리가 경우 없이 무조건 때려잡는 것이 아닌 예술은 예술로 본다는 것을 이 책으로 증명 해야 되거든....”
누드사진집이 허가를 득한 경우는 사실 처음이었다. 가수 유연실 누드사진집이 전국을 강타했는데 결국 허가를 득하지 못해 판매하지 못했다. 10년 후 쯤 해금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상품 가치가 바닥을 쳐 거의 판매가 되지 않고 사장되고 말았다.
우리들의 작가는 운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비디오 영상물 ‘김가중의 누드촬영교실(감독 강현일)’은 누드영상물임에도 심의가 떨어져 당시에 엄청난 파워를 가진 대한민국 음반대상(주최:문체부 MBC 일간스포츠)에 출품되어 최우수상 각본상 감독상 기술상 등 4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노미 되고 큰 상을 획득해 MBC TV를 통하여 생중계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서 ‘당시 인기 상종가인 ’주병진쇼‘에 출연(모델 하영은 양) 세간을 발칵 뒤집어 놓게 된다. 여세를 몰아 한국 최초의 불록버스터 올 누드 영화 마고(감독 강현일)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일개 사진작가의 작품 사진이 대한극장의 제일 큰 간판으로 걸려 있었던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어쨌든 소설이나 만화로 구속되던 미성숙 사회였기에 사진집을 낼 때마다 청와대(청소년 윤리위)에서 경고장이 날아들곤 했지만 예술로 인정받으며 구속은 면했고 영상물도 허가가 났던 특별한 경우였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누드사진집을 안 냈을까? 아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딱지라고 부르던 포르노 사진집이나 일본 춘화도를 학우들과 돌려보며 호기심을 잠재웠던 것을 보면 사실 누드의 역사는 사진의 시작부터 이미 주요한 모티브였던 것 같다. 정운봉 작가는 우리나라 누드 계의 대부격인 1세대의 레전드 작가였다. 그의 일화는 끝없이 많지만 기록할지 말지는 훗날 생각하고 당시에 그의 사진집을 보지 못한 사진작가는 없었을 것이다. “먼 말이야? 허가가 안 난다며?” “야매라는 말 알랑가 모르겠는디....”
사실 합법적으로 책 내면 감방도 가지만 허가 안 받고 비매품으로 책을 내면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야매로 책을 내고 야매로 팔 수 있는 이상한 나라였다. 인류가 존속하는 이상 법은 영원히 눈 가리고 아웅의 허울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의 법이 정말 답답한 것은 규제의 혁파냐 아니냐를 떠나서 일방적이고 일직선이란 것이다. 파리의 피갈역 주변엔 유명한 물랭루즈와 수없이 많은 포르노 비디오 방이 있다. 기발하고 낯 뜨거운 성인용품 들이 상점을 메우고(이 거리의 사진들 인터넷에 올렸다가 또 모가지) 이런 개방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큰 서점들은 한쪽 귀퉁이에 칸을 치고 성인 코너를 개설한다. 그곳엔 한국인으로서는 상상을 불허하는 포르노들이 자유롭게 제작되고 진열되어 팔리고 있다. 성인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성인은 의무는 있다. 하지만 권리는 없다.” 오로지 그 기준을 아동이나 청소년에 둔다. 당연히 누드란 단어조차 제약을 심하게 받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미아리 텍사스 입구에 ’청소년출입불가‘ 얼마나 성스럽고 위대하고 합당한 문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