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嘉中 fictiot 浪漫遊戲 ‘名山秀水之旅 黃山之人體藝術’

입력 2026년04월02일 13시20분 김가중 조회수 206

황산의 藝術 Nude

황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한 장의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듯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이름하여 명산수수지려(名山秀水之旅)인체예술 황산’. 그럴듯한 이름은 이미 절반의 성공처럼 보였고, 나머지 절반은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채워주고 있었다.

 

전설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산, 구름 위에 떠 있는 봉우리와 바위 사이로 신선이 오간다는 이야기를 품은 황산. 나는 그곳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매혹적이었다. 알지 못하는 세계는 언제나 상상력을 부풀리고, 그 상상은 현실보다 더 강렬한 유혹이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 특히 동양에선 산 + 구름 + 예술

 

藝術!

이 한 문장의 주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명성 위에 누드 예술 세계를 겹쳐 놓는다면,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빛으로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구름과 바위, 바람과 신이 만든 예술 인간의 몸이 한 장면 안에서 호흡하는 장관.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비추는 의식 같은 것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상상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산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으며, 계획은 종종 길을 잃었다. 장비는 무거웠고, 날씨는 변덕스러웠으며, 일정은 번번이 어긋났다. 그 모든 고생은 마치 이 산이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이어졌다. 또 하필이면 태풍이 뱀의 혓바닥같이 날름거리다 대가리를 서쪽으로 틀었는데 하필이면 상상 초월의 거대한 세력으로 이 지역을 말아 먹기 시작했다. 공항 인근의 페인트(김가중식 페인팅 퍼포먼스 재료)가게 앞의 도로는 이미 발목까지 차오르고 퍼붓는 빗줄기는 우산이 무용지물이었다. 이 여행은 도입부가 이미 공포로 시작되었다.

어쩌면 이 무모한 시작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하드라마였는지도 모른다. 어디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皇山이란 산이 중국 제1경이란 유명세와 그냥 산이 아니라 藝術이란 미혹에 떠밀려 무작정 떠난 길 위에서, 더 또렷하게 왜 이곳에 오고 있는지 점점 더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藝術本色!

황산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40년 동안 쌓아온 세계와, 아직 닿지 못한 세계 사이에 놓인 하나의 迷夢이었다. 그리고 망설일 수도 멈출 수도 없이 열고 들어가야 하는 前代未-이었다.

 

황산은 수묵화의 원조라 할 만큼 산세가 미니멀리즘 그 자체다. 년중 200일이나 운해가 산자락에 깔려 이 운해와 장엄한 기암괴석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소나무들은 한그루 한그루가 절경을 이루어 중국인들의 상상력을 관통하여 장대한 이야기들을 끝없이 토해 낸다. 이 아름다운 산의 정상에 여인의 나신을 보태었으니 이는 신의 뜻이 아니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으로 전 세계 누구도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신묘한 一場春夢이었다.(사실은 夏夢)

 

영화 와호장룡

을 떠올리며 시작한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한 편의 무협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황산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곳이 얼마나 쉽지 않은 산인지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이안 감독의 발길이 닿았던 공간이라는 사실과 주윤발과 장쯔이가 만들어낸 그 신비로운 분위기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라는 점에서 이번 여행은 자연스럽게 와호장룡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이런 여행 죽었다 깨 나도 못한다.

폭우 속에서 4시간을 기다리는 중국의 끈기

 

태풍이 몰려와 엄청난 폭우를 쉴 새 없이 퍼부었다. 곤돌라의 탑승구엔 각처에서 몰려온 중국인들이 넓은 공터를 빼곡히 채웠다. 똑같은 색깔과 똑같은 모양의 우의를 입은 단체관광객들, 굵은 빗줄기에 일제히 온몸을 웅크리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앉음새도 어쩜 저리 똑같을까? 군대도 아니고? 새벽부터 기다린 줄이 거의 점심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짜증이나 불만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이 정도쯤은 감수해야 진짜 여행이라는 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빗물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고, 옷은 이미 몸에 달라붙어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누구 하나 줄을 이탈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만약 이 상황이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줄은 이미 몇 번이고 무너졌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이걸 왜 기다려?”라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바람까지 더해져 우의가 무색할 정도였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황산 정상에 오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4시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곤돌라 탑승 차례가 다가왔다. 줄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피로에 젖어 있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곤돌라에 올라탄 순간, 그 모든 기다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황산을 보면 오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악을 보면 다른 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황산을 보면 오악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황산은 중국 제일의 절경으로 꼽힌다.

 

중화라는 말은 본래 화산 주변에 살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화산의 기암괴석과 험준한 산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비롭고 웅장하다. 그러나 그처럼 기기묘묘한 화산의 아름다움을 다섯 개 합친 것보다 황산을 더욱 높이 우러른다. 화산이 민족의 뿌리라면 황산은 중국인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그들은 황산을 가장 사랑하는 산이자, 평생에 꼭 한 번은 반드시 올라야 할 산으로 꼽는다.

 

수묵화를 닮은 황산의 색

황산의 아름다움은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에 있지 않다. 잔잔하면서도 깊게 가라앉은 무채색의 일관됨, 그것이 바로 황산의 색이다. 황산은 어쩌면 관운장 같은 느낌이다. 정든 아저씨 같은 온화하고 중후한, 영원히 변하지 않을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아름다움, 황산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장비 같은 느낌이다.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황산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이었다. 하지만 숨이 차오를 즈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모든 고단함을 잊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산이다.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봉우리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안개는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서해대협곡을 따라 걷는 길에서는 마치 선인들이 바위 사이를 가볍게 뛰어다닐 것 같은 착각에 주윤발의 하얀 도포자락과 장쯔이의 창백하고 가녀린 섹시미가 중첩되어 헝클어진 마음(김가중 판타지 누드 작품 제목 경상일보 금상 수상)’을 연출한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대나무 숲의 사각거림 대신, 거대한 자연이 숨 쉬는 소리가 환청을 불러온다.

 

안개가 몰려와 사방이 하얗게 지워졌다간 나타나고 나타났다간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하늘과 검게 실루엣처럼 서 있는 봉우리들은 감동을 넘어 차라리 울고 싶은 아름다움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여행자가 아니라, 무협 세계 속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황산이 황당했던 점은,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모자를 쓴 마치 복사해놓은 휴머노이드같이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수천 명씩 몰려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듯 와글와글했다. 그 인파에 떠밀려 일행을 놓치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찾아다니느라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짐이요 짐 짐!”

엄청나게 무거운 바구니가 달린 장대를 한쪽 어깨에 걸머멘 인부들이 쉴 새 없이 바구니를 출렁이며 달려간다. 짐이란 말이 중국말인지 알 수 없으나 틀림없이 우리나라 시장에서 나는 소리와 같았다. 산의 정상에 있는 호텔에서 사용한 수건들과 침대보 외에도 관광객이 본 용변까지 산 아래로 지고 내려간단다. 오늘날 같이 발달한 시대에 산정의 호텔에서 배출되는 오물들을 모아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산 아래로 가져가고 사용할 용품들을 다시 지고 오르다니.....

 

이것이 중국의 현실이었고 중화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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