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王山? 皇山? 참 비슷한 이름이고 비슷한 산이다.
원래 이름은 仁王山이었으나 일제가 仁旺山으로 바꾸었다.
선바위는 서울에선 보기 드문 사진 명소였지만 목멱산에 있던 국사당이 이사 온 이후 기도터로 개발하며 시멘트와 돌을 깔아 자연미도 사라졌고 사진 화각도 나오지 않아 사진 명소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하지만 옆의 너럭바위에 오르면 도심이 발아래 내려 보여 안개에 젖은 도심이 지구가 아닌 우주의 어느 행성으로 착각될 만큼 신비로운 광경을 자아낸다.
황산이 신선들이 도를 닦는 산이었다고 하는데 인왕산 역시 그렇다. 신령스럽고 영험한 바위들의 형상이 기기묘묘하여 한반도 무속인들의 본당이 인왕산이다. 덧붙여 시인 묵객들의 예술 산실로도 으뜸이다.
새하얀 소복의 여인의 단아한 자태가 신비하고 요염하다. 신령스러운 바위 아래 엎드려 정성을 들이니 선녀가 따로 없다. 소설 ‘태백산맥’의 소화란 무속인에 반해 눈물짓던 소년들을 많이 보았다. 문득 그 소화가 책장을 들추고 환생한 듯 단아한 아름다움에 절로 숨이 가쁘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걸치고,
모든 것을 버린 채....
- 터키의 민요중에서 -
북소리는 사람을 흡입하는 신비의 소리다. 장단이 있고 없고 그냥 소리가 들리면 이끌려 빨려드는 미궁의 소리다.
여인이 가부죄를 틀고 북을 울리기 시작했다. 둥-둥-둥
기암절벽에 부딪혀 메아리 된 북소리는 고조가 적당하여 영혼을 가출하게 하였다.
카메라 후드가 딸그락 소리를 내며 바위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히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렌즈 앞을 시커먼 형체가 가로막았다.
“아… 암굴이 있었네…”
바위 틈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짐승처럼 눈을 치켜떴다.
“촬영하면 안 됩니다. 카메라 내려요.”
순간 당황했지만,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왜요? 천상의 아름다움이고 세계적인 걸작인데요.”
사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인왕산에는 예부터 이름난 기도터가 많다.
전국에서 무속인들이 올라와 촛불을 밝히고, 공양을 올린다.
하지만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 역시 많다.
자연훼손이라며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고발당하는 일도 잦았다.
사내의 시선에는 노골적인 경계와, 오래된 피로가 묻어 있었다.
뇌리에 신비로운 미로 각인될 만큼 소복 여인의 뒤태가 사람인지 아니면 환영인지 구분조차 아스라하다.
황산의 산신령? 인왕산의 여신령?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여전히 神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신이란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논리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느 종교가는 교만한 자의 눈엔 신이 보이지 않는다며 몰아붙였다.
교만한 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이성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신이라니, 그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허상일 뿐이라고 믿어왔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패배와도 같았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다. 매일같이 오르던 북한산의 능선 위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처음엔 단순한 운이라고 생각했다. 미끄러질 뻔한 순간마다 기묘하게 균형을 되찾고, 길을 잘못 들어도 결국은 더 좋은 풍경으로 이어졌다. 날씨마저도 꼭 내가 오르는 날이면 기막히게 개었다. 그 모든 것이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절묘한 우연이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널 돕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그래도 수염 허연 산신령은 아니겠지.”
이상한 이미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그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 노인도 아니고 거칠고 무거운 존재도 아니었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어떤 존재.
은은한 빛을 두른 채 능선을 따라 걷고, 발을 내딛기 전에 이미 그 자리를 살피는 존재. 길을 헤매면 바람의 방향으로 길을 알려주고, 위험한 순간에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등을 밀어주는 존재.
무신론자가 무슨 여신 타령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상상은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갔다.
어느 날, 해 질 무렵이었다. 능선 위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바람이 멈췄다. 정말로,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분명히 느껴졌다. 시선이, 숨결이, 존재가.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 가지뿐이었다.
여전히 신을 믿지 않는다.
알 수 없는 迷夢, 어떤 존재가 있는 게 아닐까?
황산의 산신령? 인왕산의 여신령?
황산의 산신령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만나보지 못하고 하산했으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여행 전체에서 특히 황산에서의 일순 일순이 기묘하게도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안내를 맡은 중국 측 인사와 여행 내내 시종일관 우리들의 뒤를 살뜰히 보살펴준 그분(?)은 우리가 무척 운치가 좋은 작가들이라고 했다. 운치란 운을 잘못 발음한 것인데 그들은 “저자가 도대체 누구관데 황산의 신령들이 저토록 뒤를 봐주는 거지?”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황산의 꼭대기에 머문 때만이 아니라 이번 여행 전체에서 시종일관 줄기차게 폭우가 쏟아지는 태풍의 한 가운데 카메라만 펼치면 신묘하게도 빗줄기가 멎어 주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기암괴석 그리고 운해가 ‘황산3절’이라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겠다.
‘자연과 합체된 누드 예술’ ‘보이는 황산’이 아니라 ’깨어난 황산‘
바위 위에 인체가 꽃처럼 피어났다. 돌에서 꽃이, 꽃에서 빛이, 빛에서 다시 안개가 피어오르며 순환하듯 아름다운 사진으로 피어나고 있다.
황산의 아름다움에 더한 누드는 무위자연의 한 조각 편린이었다. 기기묘묘한 선경 속에 새겨진 자연의 풍경과 인체의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신묘한 사진은 영구불멸의 예술의 결정체라고 감히 소리치고 싶다. 황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연화봉에서 사람의 소리가 아닌 그 어떤 迷夢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人生은 짧고 藝術은 영원하다.”
早發白帝城/下江陵 -李白(이백)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아침 백제성의 아롱진 구름 사이를 떠나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양 기슭에선 잔나비 울음 그치지 않는데
가벼운 배는 벌써 만 겹의 산을 지났구나
飮中八仙歌 -두보
李白一斗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 편인데
취하면 장안 시장바닥 술집에서 잠을 잔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술 취한 신선이라 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