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중 도슨트 皇山之藝術Nude ‘조조의 머리를 쪼개라!’

입력 2026년04월16일 17시50분 김가중 조회수 243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폐가촌 정릉골

 

그 폐허 속을 발랄한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나타났다. 소녀들은 휴대폰을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폐가촌 체험, 흉가 체험.’요즈음 MZ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기묘한 유희였다.

낡은 담벼락에는 검게 그을린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 지붕은 반쯤 내려앉아 밤하늘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완전 대박인데?”“, 여기서 찍으면 조회수 터진다.” 사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불량기 넘치는 사내들이었다. 입꼬리가 비틀린 채 웃는 얼굴, 눈빛은 기묘하게 사람을 훑어보는 짐승. 처음엔 단순한 불쾌감이었다. 그러나 그 감각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야.”

낮게 떨어진 목소리와 함께, 길이 막혔다.

비명이 터졌다.

한 번, 두 번이 아니었다. 찢어지는 소리는 골목을 타고 번져나갔고, 달동네의 어둠을 넘어 산자락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산자락 계곡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봄을 잊지 않은 살구나무들이 한꺼번에 꽃잎을 토해냈다.

핏빛으로 젖어가는 밤 공기

연분홍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비명과 꽃잎이 뒤섞였다.

그렇게, 정릉골의 밤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놈이 나타났다. 바로 그놈, 遺棄의 자유여행 동기유발.

慈旨의 몸을 토막 쳐 고철로 만들어 버린...

말은 없었다.

그저 한 걸음, 핏자국 위로 발을 디뎠다.

시커멓게 드러난 하체의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사내들이 비웃었다.

뭐야, 또 한 명 추가냐?”

다음 순간, 웃음이 끊겼다.

놈의 움직임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비틀리고, 꺾이고, 그러나 정확했다.

뼈 부딪히는 소리. 숨이 끊어지는 소리. 살이 찢기는 소리.

하지만 수가 많았다. 우주의 법칙에선 기능의 한 수 위가 쪽수였다.

놈은 짓밟히고, 걷어차이고,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났다.

눈빛이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 자식, 뭐야.”

사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었다.

놈이 차가운 웃음을 토했다.

입가에 피를 흘린 채, 아주 희미하게.

그 순간

바람이 멎었다.

흩날리던 살구꽃이 허공에서 멈춘 듯 보였다.

그리고,

놈의 그림자가 천천히 갈라졌다.

에잇, 재수 옴 붙었어.”

사내 하나가 침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놈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근데다음에 또 걸리면....”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땐 진짜로, 세상 로그아웃이다.”

사내들이 어둠 속으로 삭제되었다.

고요.

그제야 남은 것은 피 냄새와 꽃잎, 그리고 숨소리.

풀썩 놈은 구린 쓰레기 더미 위로 무너져 내렸다. 손을 뻗었다.

허공을 빙빙 돌던 살구꽃 하나가 그의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경찰에 신고할까요?”

하지마! 꺼져 꺼지라구... ” 목구멍에서 치솟는 피와 섞여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멀뚱한 전봇대 위에 썩은 가로등이 엎어져 있는 몸뚱이를 어루만지며 껌뻑이다 마지막 생명줄을 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은 불가사의한 존재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예술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누드 촬영이 아니라, ‘존재가 형태를 얻는 순간을 기록하는 의식이었다.

 

유사 이래 인간들은 역사란 퍼즐을 빈칸 없이 맞추려는 부질없는 노력에 최대한 존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념이란 개념과 인체란 물질적 존재의 가장 큰 차이가 위에 세워져 모든 것을 가두려 하는 공간이란 형태를 인하는 방식과 시간이란 차원의 레이어들을 순서에 관계 없이 공유할 수 있다는 개념의 차이였다.

퍼즐 없는 역사

념에게 황산시니 정릉골이니 하는 이동의 공간적 레이어와 역사란 시간적인 퍼즐은 필요 없었다.

 

그때였다.

술을 앞에 두고 노래하듯, 어디선가 낮고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조조 단가행 (曹操 短歌行)

 

對酒當歌, 人生幾何譬如朝露, 去日苦多慨當以慷, 憂思難忘何以解憂, 唯有杜康靑靑子衿, 悠悠我心但爲君故, 沈吟至今

술을 대할 땐 마땅히 노래가 있어야 하리. 인생이 길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비유하면 아침이슬 같으니, 지나간 날이 너무나도 많구나.

슬퍼하며 탄식해도, 근심 잊기 어렵구나.

무엇으로 근심 풀까? 오직 술이 있을 뿐

푸르른 그대의 옷깃, 내 마음에 펄럭인다.

다만 그대로 인하여, 이제껏 조용히 노래를 읊조렸네.

 

누군가 읊조리고 있었다. 아니, 시간 자체가 읊조리는 듯했다.

이곳은 분명 현대의 황산이었지만, 발밑의 돌바닥과 공기 사이에는 다른 시대가 겹쳐 있었다.

조조의 화급을 다투는 전차가, 분명히 그 길을 지나갔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오직 생각 없는 카메라만이 이상하게도 그 흔적을 쫓고 있었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마다 프레임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긋남이 생겼다.

전기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그 뒤를 따라 먼지처럼 겹치는 거칠고 숨 가쁜 말발굽 소리.

한 장의 사진 속에 전차의 그림자와 모터의 궤적이 동시에 새겨졌다.

작가 은 그것을 보았다. 아니, 느꼈다.

이 도시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겹칠 뿐이다.

 

조조는 영웅이었다. 동시에, 인간이었다. 아니 위대한 예술가였다.

그의 시 단가행은 천하를 탐한 자의 포부가 아니라 짧은 생을 붙잡으려는 한 인간의 절규에 가까웠다.

 

神醫 화타는 그의 머리를 쪼개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의 근원을 긁어내야 한다고.

조조는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이 옳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선택했다.

자신의 두통보다, 백성의 고통이 먼저라고.

그날, 그는 화타를 죽였다. 네로가 로마를 불태우고 예술은 위대하다고 외치듯....

그리고 다시 말 잔등에 올랐다.

 

셔터 소리가 다시 울렸다.

사진가들은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찍고 있는지.

다만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거대한 것도, 폭력적인 것도 아니었다.

여린 실바람처럼, 그러나 분명하게

시간의 결을 스치는 힘이었다.

 

조조는 안휘성 출신의 영웅호걸이다. 동시에 그는 흠모받아 마땅한 위대한 예술가였다. 역사의 퍼즐은 실제와 동떨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나관중의 fictiot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애민 애족의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전 재산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나누어 주었던 인물이다.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이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행위였다. 그를 본받아 그의 동료들도 다투어 재산을 나누고 근검절약에 앞장섰다. 난세에 태어나 사람도 많이 죽였지만 그를 언제나 괴로워하였고 돌아서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의 행위는 필요악이었을 뿐이다. 난세를 끝내기 위한 대의명분에 선택지는 항상 그를 괴롭혔을 뿐이다.

 

황산시의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은 대로.

그 작가와 대원들은 카메라를 든 채, 가벼운 스케치를 남기듯 그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안개는 낮게 깔려 있었고, 거리의 소음은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희미하게 번졌다. 조조의 전차가 화급하게 역사의 뒤안길을 스쳐 지나갔지만 보지 못한 카메라는 지나치는 모터사이클을 겨누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의 도심을 오가는 것은 대부분 전기 오토바이였다. 소음 없이 미끄러지듯 흐르는 그 움직임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도시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이번 여행 내내 느꼈던 점이지만, 중국은 생각 이상으로 환경보전에 대해 엄격하고 절제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 일상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좁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는 대형 휘발유 오토바이들. 익숙한 풍경이지만, 황산에서 보았던 조용한 흐름과는 분명한 대비를 이뤘다. 넓은 황산의 도심을 여유롭게 이어지던 전기 오토바이들의 행렬 속에서 한 사회가 환경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일상의 풍경으로 드러나는지를 실감하며. 그것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각인된 습관의 차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념이

정릉골 페가촌을 한 바퀴 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신 오래 걸린 것은, 이 나라가 얼마나 뻔뻔하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골목에 버려진 냉장고만 얼추 200대는 넘어 보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모터는 이미 누군가 떼갔고, 껍데기만 남았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던 냉매는 어디로 갔을까? 친절하게 회수되었을 리 없다. 아마도 그대로 공기 중으로 날아가, 우리가 겨우 지켜내고 있다는 오존층에 구멍 하나쯤 더 보탰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사 간 집마다 에어컨은 거의 그대로 버려져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떼어 가는 비용이나 새로 사는 비용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무상 수거를 그렇게도 열심히 홍보한다. 듣기에는 참 좋다. 문제는, 무상이라는 말이 어디까지 무료냐는 것이다.

환경부 마크가 큼지막하게 붙은 수거 트럭이 도착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말한다. “에어컨은 떼어 주셔야 가져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제도가 누구를 위한 건지 궁금해진다.

일반 사람이 에어컨을 어떻게 떼나? 실외기는 대개 손도 닿기 힘든 곳에 매달려 있고, 필요한 공구도, 사다리차도 없다. 냉매를 회수할 장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답은 하나다. 돈 주고 전문 기사를 부르라는 것. 그럴 바엔 그냥 새로 산다.

이쯤 되면 무상 수거는 정책이 아니라 농담에 가깝다. 슬픈 웃음이 가득 담긴 농담. 극한적 포퓰리즘의 농담! 표한장과 오존층 구멍 한 개는 동격인데...

구청 환경과에 전화를 걸어봤다. 예상대로 명확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모를 리 없다.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현장에 있던 젊은 수거 기사만이 가장 솔직했다. “왜 저한테 그러세요? 떼어 주시면 가져간다는데그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말이 이 제도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을 뿐이다.

兒雄民國이라 이름을 바꿔주세요. 정식 명칭은 눈 가리고 아웅 大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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