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스필버그 브레송 김가중’

입력 2026년04월21일 10시56분 김가중 조회수 190

김가중 도슨트 皇山之藝術Nude







스필버그의 영화는 언제봐도 재미있다. 시퀀스가 짜릿하게 연이어 터지며 관객을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세계 제일의 흥행 보증수표다. 당대 최고의 인기 감독인 그가 당연히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의 선두그룹일 것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쉰들러의 리스트를 발표하고 나서 비로소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대서특필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가 거장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는 말인가? 거장이 도대체 뭐길래?

 

스티븐 스필버그가 왜 오랫동안 흥행 감독으로 분류되다가 쉰들러의 리스트 이후 거장으의 반열에 올랐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작품의 본질적 변화라기보다 비평계의 기준이 드러난 사건이다. 기존의 영화계는 오락성과 상업성을 어느 정도 낮은 층위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역사·비극·윤리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뤄야 비로소 진지한 예술로 인정받는 분위기기가 기저에 깔려있다.

 

쉰들러의 리스트가 너무 길어 끝까지 집중하지 못했지만 주마간등식으로 본 그 영화에서 손수레에 가득 담긴 시체들 위 빨간 소녀의 시체가 실려있는 장면에 큰 충경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름다웠다는 말에 무수하 돌멩이가 날아오겠지만 강렬한 감동을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그 장면이 충격적인 이유는 단순한 잔혹함이 아니라, 흑백 세계 속에서 색채 하나를 통해 개별 생명의 절대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쾌락이 아니라, 감각과 의미가 한순간에 결합되며 발생하는 미적 전율을 말한 것이다. 이는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숭고’(sublime)에 더 가까운 경험과 공포와 매혹이 동시에 밀려오는 상태를 말함이다.

우리는 왜 어떤 감동은 재미, 어떤 감동은 예술로 나누어 보는가?”

거장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과 의미를 동시에 폭발시키는 사람

거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목적에 따른 임의적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스필버그는 그 경계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다. 결국 필자에게 미적 감정은 그 소재가 무엇이든 내용이 어떻든 강렬하게 밀려오는 관념적인 요소가 결론이 된다.

 

유복한 가정에서 어릴때부터 영화를 만든 그는 쉰들러 리스트이후 작품의 세계관이 상당히 바뀌게 된다. 그동안 재미 위주의 감각적인 모험적 요소가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의 묵직한 톤의 연출로.... 젠장 예술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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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은 프랑스의 재벌(?) 카르티에가와 브레송가가 합쳐진 집안에서 태어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름을 얻었다. 화가, 보도사진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예술 활동에 심취하였는데 프랑스에선 국보로 예우받을 정도다. 60대 후반부터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고 그림과 디자인에 몰두하다 96세까지 장수했다.

 

브레송 평설을 여러 번 썼고 강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는데 대체로 지금까지 다른 이들이 쓴 글과는 상반되는 주장이었다. 요즈음은 대체로 필자의 주장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는 추세다.

 

브레송은 연출하지 않는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그는 장면을 만들지 않았을 뿐, 장면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았다. 세계가 가장 의미 있는 형태로 응축되는 순간에 그 질서가 드러날 때 셔터를 눌렀다.

 

연출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대상을 움직이고 상황을 조작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브레송은 연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면이 의미를 갖도록 기다리는 행위로 본다면, 그는 누구보다 치밀한 연출가였다.

그의 사진에서 인물과 배경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결합 된다. 그 순간, 사진은 설명을 거부하고 즉각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이것이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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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가 있다. 영화감독인데 장면 장면의 사진작품이 연결되어 내러티브가 입혀져 영화가 되는 형식이다.

 

배우 하나하나의 개성이 강렬한 톤으로 대비되고 움직임 하나 하나가 신묘하게 사진적 구성에 입각하여 연출되었다. 배경의 패턴은 아름다움을 넘어 입신의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질감과 입체감이 대비를 더 하고 색감은 더욱 압권이다. 짙은 재빛은 현대인 특히 당시 중국의 암울한 환경을 상징하는 현대적인 독특한 미감으로 배경에 덧칠되었다.

 

-그의 예술은 순간적인 반전의 묘를 던진다. 재빛과 빨간색의 대비

 

그는 피를 팔아 카메라를 샀다. 그리고 처박혀 사진예술을 연구했다. 마오가 준 혜택(?)이었다. 브르조아 출신 특히 마오의 반대편에 선 군부의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

 

예술이든 학문이든 하다못해 칼 같은 쇠붙이까지 담금질이 필요하고 오랜 연마가 필요하다.

작금의 사진들이 얼마나 경박하단 말인가?

바로 이 연마의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걸음마 대신에 뛰기 때문이다.

장이머우의 예술이 위대한 이유가 의도했던 아니했던 긴 시간의 숙성기간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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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를 위에 나열한 분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이글의 의도가 비교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진이란 어떤 맥을 짚어야 비로소 예술이 될 것인가를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주요 모티브임으로 같은 반열에서 다루었다.

 

여기 4인의 작품들은 다 배경과 대상(주제)이란 두 개의 축을 한 프레임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유하고 본인들만의 독창적인 상상까지 가미하여 기다림 혹은 연출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예술이란 거대한 블랙홀 안으로 끌어 드리고 있다.

 

그 작가외 3인은 역사성과 스케일이 웅장하고 관람객이 충분히 확보되고 자금력과 조건이 성숙된 상태에서 작가들의 주관과 직관이 강렬하게 응축되었기에 위대함이란 서사를 붙여도 된다.

 

하지만 그 작가의 작품은 그러한 서사에서 매우 약하지만 화면의 예술적인 기본요소에 입각 하여 예술의 틀을 잘 이해하고 촬영했음을 보여 주고 있음에 여기 합류시켰음이다. 특히 4인의 작품형식이 같은 궤도 위에 일치되어 사진의 교범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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