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차에 목숨을 걸고’ 김가중 도슨트 皇山之藝術Nude

입력 2026년04월23일 12시23분 김가중 조회수 249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만큼 목숨에 연연하는 종족도 드물 것이다. 세계를 여행해 보면 많은 민족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집착을 하지 않고 산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인은 11초라도 더 살려고 아등바등이다.(특히 나) 사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아주 오래 살고 싶고 오래 살기 위하여 장수의 비결(신선이 되는 길)을 몸소 실천하고 있고 이론으로 정립하고 있는 중 이다. 물론 수시로 그 결과물을 연재도 하고 있다. 중국에 누드촬영 와서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목숨을 걸 일이 생기고 말았다.

사실 낯선 나라에서 누드촬영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걸 일이다. 하지만 이번 황산누드촬영여행은 제도적으로 완충장치를 하고 왔기에 안전한 누드촬영여행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문제가 발생했다.

황산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하늘은 우리를 시험이라도 하듯 쉼 없이 울어댔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는 비, 때로는 태풍처럼 몰아치고 때로는 숨죽인 듯 잔잔하게 스며드는 빗방울들. 마치 이 여행의 동행은 사람이 아니라 태풍 자체인 듯했다. 누가 예매했는지도 모를 비행기 티켓에 폭우까지 끼워 넣은 기분이랄까.

현지 스태프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라면 촬영은 어렵습니다.”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젖은 바위, 흐릿한 시야, 예측 불가한 날씨. 그 모든 조건은 포기를 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장면은 더 또렷해져만 갔다. 안개와 비 속에 잠긴 황산, 그 위에 펼쳐질 퍼포먼스그건 단순한 촬영이 아니라, 자연과 맞서는 하나의 의식 같았다.

우리가 준비한 누드 페인팅 퍼포먼스는 이 여행의 핵심이었다. 빗속에서 물감은 번지고, 피부 위의 색은 흐르겠지만, 오히려 그 흐름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우연의 미일지도 몰랐다. 완벽하게 통제된 예술이 아니라, 자연과 충돌하며 탄생하는 살아 있는 장면. 포기하기엔, 너무나 강렬하고도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 안으로 쳐들어 들어가기로 했다.

 

남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우리들의 버스가 신나게 달렸다. 항주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이고 불과 1시간만 더 달리면 항주란다. 몽골누드여행기를 통하여 징기스칸을 친구로 삼았는데 내 친구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었던 것이 송나라의 정복이었다. 쿠빌라이가 정복한 송나라는 유라시아를 통 털어 가장 번성하고 문화예술이 가장 발달한 동양 예술의 시발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중국 문화예술의 기원은 송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기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철학이 하나로 어우러져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미감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특히 북송 시대에는 웅장한 자연을 숭배하는 산수화가 가가호호의 벽을 장식하며, 인간이 자연 속에 스며드는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그러나 전란과 변화 속에서 남쪽으로 문화의 중심이 이동한 이후, 예술은 점차 외형의 장대함보다 내면의 울림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깊어졌다. 기술의 과시보다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마음의 표현이 예술의 핵심이 되었고, 그 정수는 수묵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먹의 농담만으로도 산과 물, 구름과 바람의 흐름을 그려내는 수묵화는 황산의 운해처럼 신비롭고, 항주와 같은 수향 도시의 정서처럼 고요하고 유장한 세계를 품었다. 색채의 현란함을 덜어낸 대신,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사유와 호흡이 머무는 깊은 공간으로 승화되었다.

이와 같은 미학은 도자기에서도 동일하게 구현되었다. 화려한 채색보다 은은한 비취 빛을 머금은 청자, 그리고 단정하고 절제된 백자는 그 자체로 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빛을 절제하고 형태를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중국 미학의 핵심이었다.

우리가 이 깊은 심산유곡의 고대 중국 마을을 찾아와 페인팅 퍼포먼스를 통해 붙잡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냄으로써 드러나는 미, 그리고 그 여백 속에 머무는 고요한 사유의 세계. 그것이야말로 중국 전통 미학이 지닌 가장 단아하고도 본질적인 얼굴이었다.

 

깡촌?

항주의 물빛 도시가 보여주던 정제된 풍경과는 전혀 다른 결의 세계였다. 버스는 마치 길을 잃은 짐승처럼 산과 산 사이를 더듬으며 심산유곡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황산과 휘주 일대의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거리에서 머물던 감각은, 어느새 거칠고 생생한 현실에 의해 벗겨지고 있었다. 문명이 다듬어 놓은 표면이 아니라, 자연이 아직 손대지 않은 원형의 중국이었다.

 

버스가 멈췄을 때, 공기는 낯설게 뜨거웠고 동시에 날카로웠다. 손등 위로 무언가 스치듯 내려앉았다. 무심코 털어냈지만, 순간 찌릿한 통증이 번졌다. 작은 땅삐, 그러나 존재감만큼은 결코 작지 않은 가공할 무기를 든 전사였다. 곁에 있던 누군가의 손길이 빠르게 다가와 연고를 발라주었다. 통증은 금세 잦아들었지만, 그 짧은 순간은 이 땅이 보내는 첫 인사처럼 선명했다.

 

우리는 다시 이동을 위해 낡은 차량으로 갈아탔다. 이름도 요상한 뻥차잠시 후 그 차의 황당함에 얼이 가출하고 만다. 금속과 엔진이 뒤엉킨 낡은 웨건은 문이 닫히기도 전에 몸을 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바퀴는 강물을 스치듯 달렸고, 도로는 물결처럼 흔들렸다. 한순간이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그대로 흐름 속으로 삼켜질 것 같은 불안이 주변을 감쌌다.

그러나 차량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높은 곳을 향해 속도를 더했다. 산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길은 바늘처럼 좁아졌다. 한쪽은 가물거리는 아찔한 벼랑, 다른 한쪽은 허공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깊이가 감각으로 측정되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차 안의 공기는 점점 팽팽해졌다. 누군가의 외침이 튀어나왔지만, 엔진의 굉음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이곳에서는 속도마저 하나의 규칙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생존의 직감이 본능처럼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천천히 몰아!”

이봐 속도를 줄이라고...”

이 미친 놈아 천천히 가자고...”

길의 끝이 아니고 인내의 끝이었다. 거칠어지고 말았다. 정말 무섭다. 얼마 전에 중국 여행길에 관광객들이 절벽에서의 버스 사고로 몰살한 뉴스가 났는데 바로 이런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다 난 사고였다. 거의 수직인 천길 낭떠러지 위에 꼬불꼬불 조성된 급 커버길이라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오늘 이후로 마누라에게 큰 소리 칠 일은 없을 것 같다. 불알이 쪼그라들어 아예 없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가이드 선생 속도 좀...”

안돼요! 이게 여기 문화에요.”

참 빌어먹을 문화다. 문화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단 말인가?

 

마침내 가파른 절벽의 마지막, 널따란 분지의 세계는 갑자기 열렸다. 닫혀 있던 풍경이 한꺼번에 펼쳐지듯, 사방이 확 트이며 장관이 드러났다. 능선들은 서로 기대어 이어졌고, 그 사이로 운무가 바다처럼 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빛이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 사라지는 땅이라고 했다. 계절마다 색을 갈아입는 계단식 밭들은 산의 윤곽을 따라 흐르듯 이어졌고, 그 위에 놓일 유채와 해바라기의 시간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약속처럼 반짝였다.

 

겹겹이 쌓인 산맥들, 그 사이를 유영하는 구름의 바다.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잠시, 선계의 가장자리 위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공유했다.

 

초록색 병풍 같은 절벽들 사이에 보석처럼 하얗게 박혀 있는 고대의 유물들, 저 멀리 하얀 산촌들이 현실이라기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은 그림처럼 조용히 박혀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갑시다! 차에 오르세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굉음과 풍진을 일으켰다. 우리들의 목적지는 중국사진작가들의 풍경 사진 명소, 그곳이 아니었다. 그 절벽들 사이 어딘가에 감춰진 곰삭은 고대마을에서 중국다운 중국의 화룡정점을 찍어야 오늘의 미션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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