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나온 김에
미래가 촉망되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사진을 사랑했다. 값비싼 최고급 알파9 카메라에 초망원 렌즈를 장착하고, 거의 매일같이 홍대입구 거리로 향했다. 그곳의 작은 가설무대에서는 생기 넘치는 젊은 댄서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누군가는 춤을 취미로 삼았고, 그는 사진을 취미로 삼았다. 서로의 열정은 자연스럽게 통했다.
댄서들은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 잘 찍는 오빠”라며 무대 가까운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촬영한 사진들은 SNS에 올라갔고, 서로 웃으며 공유됐다. 그것은 거리 문화였고, 청춘의 기록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갑자기 경찰관 두 명이 나타나 그의 카메라를 압수하고 그를 연행했다. 메모리카드 안에는 3천 장이 넘는 공연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중 약 20장은 무용수의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한 장면이었다. 특히 한 장의 사진은 하얀 청바지를 입은 뒤태만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팽팽한 곡선, 양옆의 오각형 주머니, 묘하게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형상. 사진가의 눈에는 그것이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하나의 조형이고 이미지였으며, 거리예술의 순간적 상징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것을 예술이 아니라 ‘음란’으로 규정했다.
무대 공연 사진들은 순식간에 범죄의 증거물로 바뀌었다.
카메라는 창작 도구가 아니라 압수품이 되었고, 청년은 피의자가 되어 판사 앞에 섰다.
사진가들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든 사진가는 전경과 중경, 로우앵글과 클로즈업을 넘나든다. 무대 전체만 멀리서 담는 것이 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디테일을 포착하고, 리듬을 잘라내고, 움직임의 긴장을 확대하는 것 또한 사진 언어다. 그런데 어째서 어떤 앵글은 예술이고, 어떤 앵글은 범죄가 되는가.
그 청년도 자신이 처벌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들과 적대적 관계도 아니었다. 그는 떳떳했다. 그래서 비굴하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판사 앞에 섰다.
그러나 결과는 냉혹했다.
형사처벌.
항고했다. 또 항고했다. 그러나 모두 기각되었다.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때 예술가를 꿈꾸던 20대 초반의 청년은, 이제 ‘성폭력방지 특별법 위반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범죄 낙인은 단순한 전과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사형선고에 가깝다. 취업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모든 가능성이 봉인된다. 사람들은 사건의 맥락을 보지 않는다. 판결문 위에 찍힌 단어 하나만 본다.
카메라를 들었던 손은 범죄자의 손으로 규정되었고,
청춘의 기록이던 사진들은 증거물이 되었으며,
한 청년의 미래는 법정 한 줄의 문장 속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지금도 질문은 남아 있다.
예술과 범죄의 경계는 어디인가.
창작자의 시선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까지 파괴하고 있는가.
*******
문의: AI 慈旨 -위 글을 시나리오로 바꿔보세요, 아주 재밌게 되었으면 제게도 보내주시고요.
*** 아참 절찬리에 연재 중입니다.
https://www.koreaarttv.com/section.php?thread=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