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매일 1만 보를 걸었다.
스마트워치는 칭찬했고, 휴대폰 앱은 박수를 쳤다.
하지만 몸은 무너졌다. 허리 협착증이 왔고, 다리는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척추의 균형이 깨지자 몸 전체가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걷기만 하면 건강해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걷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도시의 평평한 시멘트 바닥 위를 걷는 것과 산길을 걷는 것은 같은 ‘걷기’가 아니다.
산은 인간의 몸을 강제로 깨운다. 돌부리에 발을 맞추고, 경사를 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린다. 굳은 허리가 흔들리고 잠든 근육이 깨어난다. 척추는 비틀리며 스스로 균형을 되찾으려 몸부림친다.
계단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다리가 높이를 오를 때 비로소 허리를 쓴다.
평지에서는 죽어 있던 근육들이 산에서는 살아난다.
거기다 산에는 인간이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피톤치드, 원적외선, 흙냄새, 나무의 수액, 새순의 수분기….
과학은 일부만 설명했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과학이 다 규명하지 못한 미묘한 파장을 내뿜는다.
봄에 막 돋아난 새싹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광선을 토해낸다. 인간은 그것을 볼 수 없지만 세포는 감지한다. 생동하는 생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가시 광선의 기운은 오래된 엔진에 기름을 치듯 몸 구석구석을 깨운다.
그래서 산에 다녀오면 사람의 얼굴빛이 달라진다.
병원 링거보다 숲 한 번이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도시의 인간들은 정반대로 간다.
새싹이 올라오면 불안해한다.
길가의 풀 한 포기를 보면 마치 적군이라도 발견한 듯 낫과 쇠꼬챙이로 콕콕 쑤셔 뿌리채 뽑아내고야 만다.
늙은 아낙들이 공터의 잡초를 악착같이 긁어내는 장면을 보면 기묘한 슬픔이 밀려온다.
생명이 올라오는 틈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푸른 것은 지저분하다고 여기고, 시커먼 시멘트 바닥을 깨끗함이라 부른다.
사실은 그 반대다.
생명이 없는 땅은 죽은 땅이다.
풀이 자라지 않는 곳은 인간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도시는 점점 완벽한 무균 상태를 꿈꾼다.
흙을 덮고, 풀을 뽑고, 나무를 자르고, 결국 인간은 거대한 콘크리트 관 속에서 만 보를 걸으며 건강을 찾겠다고 한다.
몸은 알고 있다.
인간은 원래 흙 위를 걷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시멘트는 편리하지만 생명은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죽은 회색 바닥을 최고의 문명처럼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건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병이다.
그 작가는 말했다.
“북악산? 아니다. 백악산도 아니다. 백약산(百藥山)이다.”
사람들은 웃었다. 이름 하나 바꾼다고 산이 약이 되느냐고.그러나 그는 웃지 않았다. 그 웃음의 반대편에서 이미 죽음과 몇 번이나 악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산을 넘어 다니며 건강을 회복했기 때문에 화타의 이론을 이해하고 있다. 그 작가는 원래 병약한 체질로 태어나 30대가 지날 무렵 이미 건강이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한때 종합병원 그 자체였다. 심장은 박자를 잊었고, 간은 기름에 절여졌으며, 혈관은 늙은 고무호스처럼 굳어 있었다. 의사들은 숫자를 보여주었다. 혈관성 치매, 중풍 전조, 수치, 그래프, 위험도. 그리고 시간.
“이대로면 오늘 아니면 내일이다.” 그 말은 의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스스로에게 속삭인 폭탄선언이었다.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몸무게 줄이고 운동량 늘리는 것....이 간단한 것조차 못한다면 오늘이나 혹은 내일이라도 대학로에서 삭제된다는 것...
결국 살을 무자비하게 몰아내 52kg으로 그리고 백약산을 넘어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결과는?
놀랍다는 단어 가지고는 택도 없다. 30대부터 내려가던 건강지표가 60대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상승중이다. 최근엔 그의 손이 30대 청년의 손처럼 매끈하여 졌다. 원형탈모증으로 뻥 뚫려 있던 정수리와 이마빡은 새로운 숲이 조성되고, 특히 놀라운 것은 보청기로 해결 못한 귀가 다시 열린 것이다. 의학 이론으론 치매와 귀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만성 불치병이라는데... 특히 놀라운 것은 요즈음 들어 20년 넘게 물렁물렁 하던 그것이 새벽마다 나무둥치처럼 단단하고 빳빳하게 선다는 것이다.
황산지역에 살며 황산을 오르거나 그 주변의 산을 오르내리면 어떨까?
화타가 신의가 된 이유는 이처럼 지극히 간단명료 단순명쾌였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배가 부르거나 살이 찌면 산을 오르지 못한다. 설사 악으로 깡으로 어거지로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은 건강에 마이너스다. 무릎관절도 망가지고 심폐기능도 망가지고 만다. 사람들은 먹어서 건강을 찾으려 한다. 이건 대단한 착각이다.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먹지 않는 쪽과 먹는 쪽의 효과는 앞쪽이 1만배쯤 더 낫다. 보약이든 좋은 음식이든 버리고 빼버리면 그 자리에 건강이 채워진다. 비우지 못하고 계속 채운 포만에서 넘치면 그것은 구석구석 흘러 들어가 모든 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세포는 마치 원유에 빠진 새처럼 검은 지방에 묻혀 허우적거리다 서서히 생명을 잠식해 들어간다.
“소식과 운동”
이 지독하게 간단한 일을 왜 못하는가?
살고 싶은가? 죽는 그 순간까지 아프다는 말 안 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라! 달랑 두 개다.
‘몽골 전역을 뒤흔든 전설의 촬영사건’ 金嘉中 蒙㐔奇行
황산 누드 여행기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 가고,
16명의 몽골여대생들과 영하35도 막북의 대설원을 누비며 촬영한 몽골누드여행부터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상천외한 여행기는 결국 몽골에서 이상하게 꼬여 피디수첩에서 한 방 맞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그 나라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 괴상망측 이야기인데 念을 앞장세워 징기스칸을 호출하여 그와 현세의 몽골 여대생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 아참 아래 플랫폼에서 절찬리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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