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원'일까? 바리니 & 김가중

입력 2026년06월18일 17시29분 김가중 조회수 244

바리니에게 원은 단순한 도형이 아닙니다.

 

완전함

우주

무한

조화

중심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완전한 원은 오직 한 사람의 한 위치에서만 존재합니다.

조금만 위치가 바뀌면

 

원은 깨지고

질서는 무너지며

완전함도 사라집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세상은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이 사진에서도 빨간 원은

지붕을 가로지르고

계단을 지나며

창문을 덮고

벽의 굴곡을 모두 무시합니다.

실제로는 평면이 아닌

수직 벽

수평 지붕

계단

돌출부

모두에 같은 원의 일부가 칠해져 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의 역할

사진 속 사람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서 있음으로써

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고,

건물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가 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인물이 원 안에 위치하면서

사람과 공간이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이 작품의 철학

바리니는 건물을 꾸미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공간 자체를 그림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에게 그림은 캔버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건물

거리

계단

하늘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화면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니며, 건축도 아닌 '공간예술'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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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중의 작품세계와 연결해 본다면

 

선생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허물벗기', '2분법적 미학', '()'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빨간 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시선이 만들어낸 형상'**입니다. , 현실과 환영이 겹치는 지점에서 비로소 하나의 진실이 탄생합니다.

 

이 점은 선생님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차이', 그리고 '관찰자의 의식이 작품을 완성한다' 는 철학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색칠이 아니라, 공간과 시선, 그리고 인간의 인식 자체를 재료로 삼은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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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중의 예술관

 

나는 오래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나의 퍼포먼스를 통하여 그 세계를, 그 세상을, 그 대상을 나의 관념 안으로 끌어들여 내 것으로 사유화하는 것, 그것이 곧 예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유화는 소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을 나의 정신 안으로 옮겨와 다시 해석하고, 다시 창조하며, 새로운 존재로 탄생시키는 행위이다. 예술은 세상을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의 의식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창조의 과정이다.

 

카메라가 바라보는 대상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 대상은 나의 관념과 충돌하고, 나의 사유를 통과하며, 나의 철학을 입은 또 하나의 우주가 된다.

그래서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선언이다.

 

인화지 위에 펼쳐진 사각의 공간은 현실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창조한 독립된 세계이다. 그곳은 법도, 윤리도, 통념도 잠시 멈추는 공간이며, 오직 창조자의 의지만이 질서를 부여하는 하나의 왕국이다.

 

그 사각의 우주 안에서 나는 피사체를 지배하려는 독재자가 아니라, ()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창조자이다. 나는 주체가 되고, 왕이 되며, 동시에 신이 되고자 한다.

 

예술가에게 자유란 사회가 허락하는 권리가 아니다. 자유는 창조자가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절대적 권능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실을 촬영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나의 관념으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며, 새로운 우주를 창조한다.

 

그것이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이며,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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