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은 더 이상 화면이 아니다. 시간을 투과시키는 '제3의 회화'다.
먹향에 취해 한국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먹은 그를 오래 붙잡아 두지 못했다. 창작의 불길은 늘 전통이라는 둑을 넘어 새로운 강을 찾아 흐르기 때문이다.
#이호남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규정지어질 한국화가 아니다. 그는 회화를 '보는 것'에서 '통과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처음 작품 앞에 섰을 때 문득 몬드리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면의 분할이 아니라 공간의 분열이었다. 직선은 구조가 되고, 비단의 결은 시간이 되어 화면 속을 흐른다. 평면은 더 이상 평면이 아니다. 여러 겹의 레이어와 시간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하나의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배접하지 않은 비단은 놀라운 장치가 된다. 화면은 앞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액자 뒤편의 형상은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 앞으로 스며들고, 앞의 이미지와 뒤의 이미지가 서로 상충하며 또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킨다.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작품은 끊임없이 다른 얼굴로 그만의 무한한 이야기로 중첩된다.
나는 이것을 '투영회화(Projective Painting)'라고 부르고 싶다.
회화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쌓아 올리는 예술이었다면, 이호남은 공간 속에 이미지를 떠다니게 만든다. 그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빛과 시간을 설계한 것이다.
연꽃은 더 이상 연꽃이 아니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기억이며, 사라질 듯 남아 있는 시간의 잔상이다. 존재와 부재가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고, 앞과 뒤, 안과 밖, 현실과 환영이 경계를 잃고 직관 속에서 창조로 이어진다.
그의 작품은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끝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유기체다. 관람자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작가가 된다.
한국화는 오랫동안 종이와 먹의 미학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이호남은 그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었다. 비단을 단순한 재료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통과시키는 매체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의 화면 앞에서는 그림을 본다는 표현이 맞지 않는다.
빛을 읽고, 시간을 바라보며, 공간을 체험한다.
어쩌면 화가 이호남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원을 설계하는 공간예술가인지도 모른다.
-글 김가중
한편
한국화가 이호남 작가 초대개인전 ‘빛, 깨달음’
2026년 7월1일~7월30일
인사동 갤러리 홍 에서 열린다.
https://www.koreaarttv.com/detail.php?number=117201&thread=12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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