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 서경덕과 황진이,
상념
제3회 익산시 향토문화촬영회 때 촬영한 누드와 선비를 조합하여 스토리를 만들어 보았다. 물론 처음부터 의도된 연출은 아니었지만 촬영한 이미지를 검토하며 선비와 누드란 상반된 이미지는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이는 필자의 사진논리중의 하나인 “대비”란 논조에 잘 맞아 이 영상들을 보는 순간 뇌리 속에 전개 되었던 것이다. “보이는 것만 찍는다면 사진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필자의 주장이다. 사진도 얼마든지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복사(寫眞)만 하는 단계에서그 다음단계인 작가의 생각이나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유혹
며칠 전에 대천 해수욕장의 보령머드축제 현장에서 촬영한 연상들을 참조해 보면 분명한 의도와 복안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영상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크게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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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서경덕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늦은 나이인 14세에야 글을 배웠다. 16세에는『대학』을 읽은 뒤 그 뜻을 깨닫고는 기쁨에 겨워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 34세가 되던 해 남쪽의 여러 곳을 유람하기 위해 길을 떠나 토정 이지함과 함께 지리산을 찾아갔다가 남명(南冥) 조식을 만나게 된다.
서경덕은 성균관에서 개성으로 돌아와 송악산 자락에 초막과 연못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서경덕의 호인 화담, 즉 ‘꽃 피는 연못’은 바로 이곳 지명에서 연유하였다. 그는 조선의 수많은 성리학자들 중에 스승이 없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서당에서 겨우 한문을 깨우치는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한 서경덕의 진정한 스승은 자연과 책이었다. “스스로 깨달아 얻는 즐거움은 결코 다른 사람이 짐작할 바가 아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서경덕은 그런 연유로 아주 독특하고 진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지하철 환풍구에 한 여성이 올라섰다. 갑자기 강풍이 쏟아져 나오고 여성의 짧은 치마가 부풀어 올랐다. 경악한 이 여성 치마를 내린다는 것이 빤스를 확 내렸다. 80년대의 썰렁한 개그다. 조선시대의 황진이가 그랬다. 치맛단은 걷어 올리고 고쟁이는 내리고 달려갔다.
황진이는 대제학을 지냈던 소세양과 10년 면벽의 지족선사를 정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한 뒤 화담 서경덕을 마지막 목표로 삼고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서경덕을 치마폭에 가두지 못했다. 하지만 경덕에게서 인간의 참된 삶과 사랑을 배웠다. 황진이는 서경덕과 영원한 스승과 제자 사이로 서경덕에 뒤지지 않을 여류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경덕과 황진이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