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같은 사진,사진 같은 회화
“사진은 붓이 되고, 팔레트가 되고, 물감이 되고, 숙련이 되고, 경험이 되고,
인내가 되고, 민첩함이 되고, 채색이 되고, 광택이 되고,모범이 되고,회화의
정수가 될 것이다.”
1855년,앙드완느 비에르츠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반성완 편역,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2002)에서
재인용.
회화의 오래된 목표는 모방이었다. 그런데 사진의 등장은 회화의 주된 목표인
모방이 회화만의 고유한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회화와
회화와 모방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려고 하였다. 아니, 사진은 회화보다 자신이
더 모방을 잘 함을 과시하려 하였다.
그러자,회화는 자신의 목표는 모방이 아니라며 사진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인간 내부 감정의 표현이나 추상적 아름다움의 구현 등 회화가 설정한 목표들은
사진이 따라오기에 버거웠다.사진은 사진기가 행하는 기계적 모방 작업이라는
회화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현상이나 인화 과정을 통해 새롭게창안된 회화적
기법을 따라하였지만,억지스러움을 더 할 뿐이었다. 그리고 기껏 잘 따라한다고
해도,제논과 거북이의 경기 형색이었다.사진은 회화를 넘어서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독창적인 베짱을 낳는 법이다.사진은 회회와 다르다는 선언이
나왔다.사진에 회화적인
수법을 사용한다든가 변형을 가하는 것은 사진 자체의
고유성을 스스로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하였다.
사진기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사진 속에 담으려 하였다.
사진기를 통한 세상이 펼쳐졌다.눈이 멈추지 못했던, 인간이 의식하지 못했던,
그간 짐작치 못했던 세상이 드러났다.사진기라는 자신의 고유한 매체를 통해,
사진은 자신의 독립성과 고유성을 확보하였고,그 독립성과 고유성으로 인해
확고히 예술이 되었다.사진기로 보는세상은 찰나였고,낯설었고,숭고했다.사진은
사진으로서 예술이 되었고,그 예술성으로 사람들을 도약시키고,꿈꾸게 하고,
감동시켰다.
그런데, 세상은 묘했다.사진이 예술로서 자리를 잡자,이번에는 사진을 따라하는
회화가 등장하였다.그 회화에 포토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포토리얼리즘
회화는 그리고 싶은 대상을 사진으로 찍고,그 사진에 맞추어 그림을 그렸다.
사진 같은 회화가 등장한 것이다.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사진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 시켰다.디지털 사진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편집이라는 자유로운 날개를
달면서 회화적 기법도 쉽게 사용하게 되었다.이제 사진은 회화의 영역까지 넘나
드는 듯이 보인다.사진 같은 회화뿐만 아니라 회화 같은 사진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느 세계가 그러하듯이,예술의 세계에도 항시 새로운 예술의 후보가 등장한다.
시가 그랬고,영화가 그랬고,사진이 그랬다. 새로운 예술의 후보는 예술이 되기
위해 기존의 예술에 기대려 한다.시는 예술이 되기 위해 회화에 기대었고,
영화는 오페라에 기대었고,사진은 회화에 기대었다.그런데,일단 기존의 예술
세계로 편입되고 나면,또다른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자신만의 고유성을 통해
독자적 예술로 거듭나서,예술을,삶을, 세상을 넓히고 풍요롭게 해야 한다.
예술의 역사에서 시는 시로서,영화는 영화로서,사진은 사진으로서 결국 예술이
되었다.
사진은 디지털 기술이 더해진 시대,사진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고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어떨까?기계가 인간을 능가
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이 논의되는 시대,회화는 인간의 눈과 손으로 세상에
휴머니즘을 거듭거듭 펼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어떨까?이제 앞서 인용한
앙뜨완느 비에르츠의 말을 수정하자.“사진은 사진기가 되고,필름이되고,셔터가
되고,모범이 되고,완성이 되고,회화의 정수가 될 것이다.회화는 인간의 눈이되고,
붓이 되고,물감이 되고,모범이 되고,완성이 되고,회화의 정수가 될 것이다.”각자의
영역에서 모범이 되고,완성이 되고, 그리하여 정수가 될 때,사진과 회화는
위대한 예술로서 진정 같아질 것이다.
김진엽(미학,서울대 교수)
비주얼아트센타보다 시각예술인문화강좌(기간6월7일-7월26일 총8회)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의심” 김미현 수강중
Chapter3에서 ‘한국 현대사진의 미적 의구심’ 강사 이정훈
강의용 프린트에서 인용
제목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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