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영을 기다리며 -
1964년 호남지방에는 봄부터 비가 내리지 않은 극심한 가뭄으로 풀들이 말라죽고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의 잎 까지도 시드는 현상이 하지(夏至)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용수로 쓸 저수지나 수리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당시 농민들은 그저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이 대부분이었다.
모내기철로 접어들었으나 거북등처럼 갈라진 못자리를 살리기 위해 농민들은 장군과 물동이를 동원하여 이고지고 물을 퍼날려 못자리에 뿌려 보았지만 무심한 하늘은 비를 내려주지 않았고 모들은 빨갛게 타 죽고 말았다.
보리가 익기 전에 쌀이 떨어지고 풋보리라도 뜯어서 목숨을 이어갔던 보릿고개 시대의 농민들은 벼농사를 짓지 못함에 따라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지 3년이 채 안되어 일어난 호남지방의 가뭄은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시기에 가뭄까지 들어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있었다.
요즘은 상호간의 인사를 ‘안녕하세요, 또는 ’안녕하십니까?‘로 안부를 묻지만 그 당시는 어르신들에게는 ‘진지 잡수셨습니까? 또 ’아랫사람들에게는 밥 먹었는가?‘로 당시의 가난하고 배고팠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가뭄이 계속되자 이웃 간에도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고 멀뚱멀뚱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인심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내기철이 지나게 되자 정부에서는 대파작물로 가을감자와 메밀 씨앗을 면사무소를 통하여 농가에 나눠주게 된다.
대파작물로 뿌린 메밀이 꽃이 피기 시작하자 벌들이 바빠지고 꿀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5~7일에 한 번씩 꿀을 뜰 수 있었다. 메밀 개화기 때만 세 번 채밀한 것으로 기억되는 채밀량은 그해 벌 열 통에서 무려 열두 말이란 많은 꿀을 생산할 수 있었고 비록 모는 한 포기도 내지 못했지만 꿀을 팔아 논농사 이상으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벌을 기르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살펴봐도 되므로 농가소득에 크게 기여할 것에 착안하여 농협중앙회에서 발행한 <새농민> 10월호에 벌꿀 열두 말 생산에 관한 글답지 않은 글이 게재되었는데 농민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전국 곳곳에서 벌 치는 방법을 묻는 편지들이 들어와 답을 보내는 데 한 겨울을 보내야했고 휴가 때는 편지를 모아 귀대하여 답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해 현역병 입영신체검사의 결과는 갑종 다음으로 을종에도 못 미친 제1을종 판정을 받고 선친의 벌 치는 일을 도와드리며 입영 영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해의 마지막 달, 그러니까
그해 12월 24일 순천중앙국민학교로 집결하라는 전남병무청장의 입영통지서는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또 다른 사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을 앞까지 배웅하셨던 어머니는 차마 발걸음을 돌리시지 못하고 그렇게 우두커니 서 계셨다.
“형 잘 갔다 와”
“그래 어머님 말씀 잘 듣고...”
멀리서 들려오는 동생의 가느다란 목소리를 뒤로하고 초조한 발걸음은 그렇게 어머니 곁을 떠나고 있었다.
한해를 극복케 할 수 있었던 벌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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