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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제2훈련소(논산훈련현소) -
1964년 12월 24일 오전 10시 순천 중앙국민학교,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운동장에는 입영장병들과 그 가족들로 꽉 차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군(郡) 단위로 집합하여 병사계 직원들이 출석을 체크하고 병무청 직원에게 신병을 인계하는 절차는 비교적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전남병무청 호송관을 따라 순천역에 도착한 입영장정들은 군 전용차량에 오른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증기기관차는 그렇게 순천역을 미끄러져 나갔다.
“너희들은 이 시간부터 군인이다“ 호송병이 겁을 팍 준다.
“주목, 주목 바로. 이것들 봐라” “동작 그것밖에 안 나오지?” 머릿속에 든 사회기분을 쭉쭉 뽑아내고 있었다.
연무대역에 도착한 장정들은 한 발작만 이동해도 오와 열을 맞춰야하는 조직사회, “앙거! 인나, 앙거! 인나” 호송관은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토해내고 있었다. 귀신도 알아듣지 못할 그 말은 ‘앉아! 일어서! 란 지시 또는 명령어다.
운동장에서는 가족들을 의식해서 그랬을까 비교적 부드러운 말투로 대열을 정리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수용연대에 도착한 장정들은 입영 전 신체검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군 생활의 적합여부를 가리는 체력검사로 합격하면 왼 쪽 팔에 완자를 찍어준다. 동작을 빨리하여 완자는 빨리 받을 수 있었고 육군 제2훈련소 00연대에 배속되었다. 소속이 정해지고 중대로 들어가 훈련 중에 필요한 장비와 소품을 지급받게 되고 제1을종의 체격으로는 너무 무겁고 길게 느껴진 M1 소총이 신기하기도 했다.
“총기는 제2의 생명이다” 내무반장으로부터 총기의 관리와 취급요령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자기의 생명과 같이 소중하게 다뤄야 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군인이라는 현실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밤 아홉 시 까지 이어지는 하루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되었는데 참말로 오줌 싸고 뭣 볼 수 없이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공급되는 칼로리에 비하여 소모되는 열량이 많아 항시 배가 고팠고 육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는데 갑자기 바뀐 환경이 더욱 힘들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세면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들어가면 출입문 손잡이에 손가락이 얼어붙어 ‘찌지직’ 소리를 내 떨어지고 숨을 들이쉬면 콧수염이 얼어붙어 녹았다가 떨어지는 지독한 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눈이 많이 내려 학과출장을 못하고 세 중대가 한 막사에서 실내교육을 받을 때다.
필자의 중대가 다른 중대의 막사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작대기 하나의 이등병이 들어오는 훈련병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빨리빨리 올라가 침상으로” “삼 열로 앉는다” 세 중대의 훈련병은 이등병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대기 한 개의 위력이 그렇게 크게 작용하는 걸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침상에 자리를 잡고 내려다보니 뻬치카(분탄을 뭉쳐 연료로 쓴 난로)의 방화사 위에 먹다 버려진 날고구마 한 토막이 눈에 들러 온다. 교육이 끝나면 저걸 들고 튈 생각을 하고 끝나기를 기다렸다. 교관의 강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시선은 먹고 버린 그 고구마 토막에 머물고 있었는데 강의 시간은 그렇게 길고 지루할 수 없었다. 교육이 끝나자마자 먹다 버린 한 토막의 날 고무마를 들고튀는 놈이 있었으니 그놈은 같은 중대원으로 눈독 드리는 훈련병은 비단 필자뿐만 아니었다는 사실은 배고팠던 당시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지금도 그때의 생각이 떠오를 때면 하늘을 보고 웃기도 한다.
훈련병들에게 공급되는 식단은 매우 단조로워 반찬 한 가지에 된장국이 전부였다.
고구마를 넣어 끓인 ‘고구마 된장국’이 자주 나왔는데 취사병들이 손질을 잘못하여 썩은 것이 씹혔을 때의 고통은 표현할 방법이 없고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배추김치 한 가닥과 김치와 같이 담군 무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맛있는 배추김치는 아직도 맛보지 못했으니 ‘시장이 반찬’이었을까.
훈련소에서 제공된 훈련병의 식단은 비록 한 가닥의 김치와 된장국이 전부였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고 뛰고 밤잠 잊고 나라를 지켰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시대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고 세계경제 9위국에 오를 수 있었지 않았을까.
며칠 후 길쭉한 스텐조각에는 군번과 이름이 박혀 있었고 목에 걸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는 군번줄을 받았을 때 이제 군인이 되었다는 걸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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