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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방송-원성원 개인전
1978년 일곱살
등록날짜 [ 2010년05월10일 00시15분 ]
사진작가 원성원의 개인전이 2010년 5월 13일 - 6월 6일 까지 1978년 일곱살이라는 주제로
평창동 Gana Contemporary에서 열린다.
일곱살 때의 꿈 같은 경험을 사진 콜라주 기법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일곱살-낯선 놀이터, 2010년 136*195cm, C-print

일곱살-늦잠, 2010, 86*120cm, C-print

아리아드네의 이야기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파시파에 사이에는 아리아드네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네.
크레타 섬에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이 있었고,
그 미궁 안에 황소의 머리와 사람 몸을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었다네.
어느 날,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궁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러
크레타 섬으로 들어왔네.
테세우스를 본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네.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를 구하기 위해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몸에
실을 묶어 주었네.
아리아드네가 묶어주었던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네.
그 후,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와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크레타 섬을 떠났다네.

일곱살, 여자 아이 이야기
일곱 살의 여자 아이가 있다.
자고 일어나니 아이의 방안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고, 축축하게 물이 스며들었다.
무엇인가 불길하고 불안한 느낌. 앗! 엄/마/가/없/다.
이 이상한 어느 날의 아침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는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갔다. 부엌 한 가운데 나무가 자라나 있고, 부엌 바닥은 이미 물에 젖은데다가 군데군데 뾰족뾰족 선인장 가시까지 돋아났다. 저-쪽.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 위에 엄마를 그린 아이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리고 마치 아이에게 엄마를 찾아가자고 이야기라도 하듯 빨간색 실이 길을 안내한다. 저 실을 따라가다 보면, 엄마를 만날 수 있겠지. 아이는 엄마를 찾아 길을 나서기 위해 저금통을 깨고 저금통에 간직했던 보물들을 가지고 엄마를 찾아 배를 타고 길을 나선다. 아이를 태운 배는 어느 낯선 마을에 도착했다. 인적은 없고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래된 고목이 아이를 맞았다. 마치 가야하는 길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나무의 반쪽에는 아이가 무서워하는 갈매기 떼가 앉아 있고, 또 다른 반쪽에는 화사하게 꽃이 피어 있다. 아이는 꽃이 핀 가지들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마을에는 강아지도 있고, 말도 있다. 집집마다 내놓은 화분에는 꽃도 한창이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아이는 엄마를 찾기 위해 종이비행기를 날려보기도 했다. 엄마가 여기 있다면 내가 날리는 종이비행기를 볼 수 있을꺼야. 아이는 자기가 간 길을 기억이라도 하려는 듯, 빨간 실로 표시를 해 놓았다.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이 실을 쫓아 다시 집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덧 아이는 마을 놀이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많던 동물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놀이터에는 인형들만 있다. 아이가 오면 안 된다고 경고라도 하듯 연필들도 뾰족하게 신경을 세우고 있다. 언제나 똑똑했던 여우가 아이를 놀이터로 안내한다. 실위를 위태롭게 걸어 놀이터로 향하는 아이의 마음이 영 불안하다. 왠지 엄마를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천막을 치고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아이의 마을 여행은 계속되었다. 아이의 엄마는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바다를 만난 아이는 고무통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로 한다. 작은 종이배들이 아이와 함께 했다. 어느덧 겨울.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아이는 예전에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사과와 촛불, 그리고 작은 빨간 열매로 장식된 커다란 전나무를 보았다. 엄마에게 가까워진 것이라 아이는 생각하니 신이 났다. 아이는 나무 틈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이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오줌을 많이 싸서 도망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오줌 쌌던 이불을 깨끗하게 빨아놓으면 엄마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엄마가 올 것이라고... 그리고 빨래를 시작했다.

원성원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1978년 일곱 살 때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1978년 일곱살'시리즈는 오랜만에 선보인 원성원의 신작이다. 방법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번 시리즈 역시 이전의 작업과 같은 맥락에 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 소스들을 합성하여 작가 주변에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구성해 내는 방식은 이제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다. 'Dream room' 시리즈에서는 유학하는 동안 만났던 친구들의 '방'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었고, 대안공간루프에서 소개되었던 'Tomorrow' 시리즈에서는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유기견들을 위한 마을인 '강아지 마을', 시댁이야기를 담은 '종로구 쌍백리의 이야기' 등 작가와 함께 살고 있는 주변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소원을 '사진으로' 들어주었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건성으로 갈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이라는 가벼운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무식하리만치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한 컷 한 컷 오려붙였다. 나무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제대로 된 하늘빛을 위해 몇날며칠을 기다리는 고지식함. 인터넷에서만 찾아도 수 만 가지 하늘과 나무 이미지가 있건만, 괜히 사서 고생한다고 할 만큼 손이 많이 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 당 작업시간이 꽤 길고, 신작이 나오는 간격 역시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 원성원의 작업은 디지털 사진이지만, 손맛이 남다르다. 그건 마치 서로 다른 천 조각을 모아 만든 퀼트의 손맛을 닮아 있다.
'1978년 일곱살'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개별 작품이 하나의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 안의 작은 에피소드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이가 난다. '일곱살-늦잠'에서 시작하여, '일곱살-오줌싸개의 빨래'까지 11점의 작품들이 물론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단독적인 의미를 갖기보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 기능한다. 그래서 관객은 각각의 작품과 작품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큰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에 원성 의 이야기를 읽어가게 된다. 물론 관객들의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에피소드들의 선형적인 구성은 원성원의 사진을 '이미지'보다 '이야기'에 더 가깝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1978년 일곱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 이야기가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그간의 작업이 주로 자기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어떤 계기가 있어 작업에 변화가 왔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번 작업과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이전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쓰는 사이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업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지난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Dream room'과 'Tomorrow'를 거쳐 에둘러가 다시 만나는 작가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잊고 지냈던 많은 기억들을 새삼 돌이켜 떠올리는 것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 작업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과연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1978년 일곱살'은 처음부터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1978년 일곱살'은 원성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였거나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만 했다면, 굳이 이렇게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1978년 일곱살'은 열 한 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동화책 같은 구성방식을 통해서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경험을 이끌어낸다. 일곱 살의 경험. 엄마에 대한 심리적인 고착관계를 끊고, 학교라는 새로운 사회를 알아가는 불안했던 시기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일곱 살 무렵, 누구나 한두 번쯤은 늦잠자고 일어났는데, 집안에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던 적이 있었을 테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집에 없어 겁이 났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난 엄마가 '말 안 들으면 도망간다.' 했던 협박(?)을 들으며,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은근 걱정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작가와 같은 해, 그러니까 1978년 나도 일곱 살이었다. 작가와는 달리, 나의 일곱 살에는 그다지 별다른 기억은 없다. 형제가 없던 나에게 많은 친구들이 생겨서 신이 났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진 상황을 버거워했던 것도 같다. 게다가 매일 일정시간에 엄마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에 신기해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했던 것 같다. '1978년 일곱살'은 이렇게 나의 일곱 살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만났던 첫 놀이터도 떠올려 보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어른들의 거짓말에 친엄마를 찾는다며 집을 나갔던 귀여운 가출(?)사건도 생각나게 했다. 그렇게 이런 나의 이야기가 무수히 오버랩 되면서, 사진 속 이미지를 따라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처럼 원성원의 작업은 종종 사진을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와 사진 속 이미지를 연결 짓게 하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원성원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특징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사진을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마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원성원의 작업이 퀼트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짜투래기 천을 한 땀 한 땀 이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퀼트처럼, 원성원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따온 작은 이미지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디테일이 풍성해지고, 풍성한 디테일들이 사진을 보는 사람의 마음과 눈에 따라서 달리 읽혀질 수 있는 다양한 여지를 만들어낸다. 수 백 가지의 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원성원의 사진은 그래서 분명한 시각이미지이지만, 동시에 이야기이다. 그것도 완결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버전이 가능한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가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그 이야기만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원성원의 사진 속에서 빨간 실을 보았을 때부터 머릿속에는 아리아드네가 묶어준 실 때문에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왔던 테세우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진 속 아이가 엄마를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던 중 표식으로 남겼던 빨간 색실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러(극복하려) 미궁으로 들어갔던 테세우스처럼, 원성원이라는 작가가 어쩌면 다시 직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병치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리아드네가 묶어놓았던 실 덕분에 무사히 되돌아왔던 테세우스처럼, 원성원 역시 '1978년 일곱살'이라는 작품 덕택에, 그리고 작품과 함께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8년 일곱살'은 그런 작업이다. 작가 원성원의 이야기이면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 어느 사이 자신의 어린 시절,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일곱 살의 기억을 만나게 하는 작업. 영원히 잊고 지낼 수도 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업. 신나고 기뻤던 일 만큼이나 불안하고 긴장되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불러오게 하는 작업. 설령 그 기억이 화사한 파스텔 톤이 아니라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같은 '1978년 일곱살'이 있으니, 다시 안전하게 되돌아 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일곱 살과 다시 대면한 후,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조금은 달라보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 신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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