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욜 캄캄한 밤중에서야 도착하였던 길인 남한강대교를 환한 낮에 본다.
강원도와 충청도를 소통해 주는 남한강대교는 유유히 흐르는 여주강을
빛나게 해 주었다.
오늘은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편으론 설레기도 하는 도보여행!
멀리 앞에 보이는 비내섬으로 가는 길과 뒤로 자산을 둘러싼 달천강이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겨진 욕심들을 안고 흘러 가는 길이 되는 날이다.
달천강이 보인다. 가을 강은 깊은 강물처럼 하늘도 깊고 높아 보이는 날!
남한강대교부터 비내섬까지 道友와의 여행을 시작한다.
비내섬 까지는 약 13km이지만 비내섬을 돌고 나면 18킬로미터나 된다.
태양과 맞짱 떠야 되는 시골길 이지만 비내 섬으로 가는 여주강의 길은
오밀조밀 소설 속으로 들어 가게 하는 길인 것 같았다.
남한강대교 아래 갈대가 풀어 놓은 머릿결이 반짝이면서
한반도의 신화를 그리고 있었다.
봄 날에 벗꽃이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는가? 가을에 갈대가 노래하는
그 빛의 꽃이 벗꽃의 가색을 비웃고 있었다. 그가 속삭여 부르는 소리에
끌려 강가로 내려가니 부드러워 아기같고, 폭신한 솜털같은 바람이
가을내음으로 온 몸을 휘감아 버린다.
고을마다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다. 그 나무는 100여년은 넘었을 것같은 위엄으로
하늘을 두루 아우르고 햇살을 적당히 가려주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을
지켜주듯, 거스르지 못하게 하듯,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가벼이 안아 줄까 기다렸으나 바람에 노란 잎만 날리고 있다.
초록의 빛을 자랑하듯 여름을 견뎌온 잔디풀도 가을을 입고 싶은 것인지
노랗게 가을 색으로 덮여 가고 있다.
다가 올 겨울을 준비 하는 농부의 손길이 가을 빛에 머물고 덩달아 가을도
그를 환하게 비쳐준다.
그 곁에 자전거 집을 매달고 달리는 여행가의 뒷모습에 여주강이 함께 따라간다.
신이 날 정도로 걸을 즈음 오밀조밀하게 다정한 길이 나온다. 비내섬 가는
길 중에 이 길이 가장 다정했던 길이다.
보름달이 뜨면 흰머리 휘날리며 천년을 기다렸노라며
달려가는 그녀가 가을 햇살에 자신을 마음껏 풀어헤친다.
한동안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녀를 가만히 갈대 위에 앉히고 간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곤."갈대와의 사랑을 이루거라"
조금씩 차오르는 맑은 기운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흐믓한 내 모습에 취해 보며 걸어 본 가을 비내섬 가는 길!
흐느적거리며 바람을 몰고 온 갈대의 숲에 끌림을 당한 것이다.
한참을 가노라니 길이 없어 졌다. 우거진 숲이 기다리고
칼날세운 풀잎이 바지가랑이에 착달라붙어 따갑게 하는 숲은
더이상 가지말라고 경고한다. 이제부터 다정한 길은 끝이다.
비내섬에 이르러 앙성생막걸리 한사발에 목을 축인다.
따끈한 떡라면 한 그릇 시켜 둘이서 개눈감추듯 먹어버리곤
어스름저녁이 물드는 비내섬을 바라본다.
비내섬은 온통 갈대의 숲으로 돌아 나온다.
한 낮 따가운 햇살에 온 마음 다바쳐 햇살에 부서졌을
갈대의 춤이 노을에 지고 있었다.
엊그제 내린 가을비에 길은 진흙탕에 일그러져 기다리고
막걸리 한사발에 취한 것인지 갈대의 노래에 취한 것인지
바람에 흔들리듯 갈짓자로 춤을 추듯 진흙탕을 걷고
첨벙 빠져서 흙투성이가 되고 픈 개구쟁이 마음
꾸욱누르고 갈대 숲으로 몸을 숨겨 술래잡기를 해 본다.
그렇게 취해서 나온 비내섬에 갈대가 천년을 기다려서 건너간 다리가 있다.
갈대의 연심을 이어주듯 강물에 닿아서 떠내려 갈 것같은 다리가 길게
늘어져 흔들거리고 있다.
바람이 훅 지나가고 어느새 내 옆엔 혼을 들이 마시듯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님이 다가와 팔짱을 끼고 걷는다. 흔들흔들~~~~
오늘은 앙성온천까지 가서 버스를 타려고 쉬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불편하였기에 버스를 타려고 하였지만
버스는 우리와 인연이 안되는지 탈 수가 없었다. 물론 기다리지 않아서이기도하다.
허지만 시간을 맞출수가 없으니 택시를 불러서 탄다.요금은 22천원이다.
비내섬을 빠져나와 걷는 길은 어두워지고 발걸음엔
물이 가득찬 것인지 속도가 나지를 않았다. 오늘은 총 18킬로 걸은 것 같았다.
햇살이 龍이 되어 강물에서 헤엄칠 때 그 등에 앉아 보고
폭신폭신 잔디밭을 걸어가는 가을빛에 내 혼을 얹어 보았다.
저녁이 짙어가는 앙성시골길에서 친절한 기사님의 수고로움을 들어 보면서
이제 두어번 남은 충주로의 길을 정리 해본다.
서울에서 멀어질 수록 길은 예상 했던 길이 아니고 때론 자동차와 함께
숨을 마셔야 한다. 그 길에 자전거를 함께 다니는 자전거도로라고 표기 해놓은
얄팍한 마음을 갈대로 때려보기도 한다.
누군가 또 다시 이 길을 걷는다면 자연과 도시와
함께 사는 길을 배우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도시와 좀 다르다고 비난하기보다는 멀어질 수록 마음이 따라 가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배워보라고 말하고 싶다.
멀리있는 사람을 연모하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유혹에도 이겨낼 수 있는 중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보는 비내섬 길! 갈대의 마음이라고 말했는가? 여자의 마음을...
그 갈대는 여전히 가을 하늘 햇살에 하얗에 빛나고 있다.
2112년 10월 30일
한국사진방송]http://koreaarttv.com
이세은기자 hidamul@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