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민구제와 구휼활동 -
鳳崗 丁海龍은 7대 조부 道三이 아들을 생산치 못해 대를 잇기가 어렵게 되자 13대 조부 八溪公 丁景英의 둘 째 형인 盤谷 丁景達의 6대손 道仁의 셋 째 아들 八興을 양자로 들이고 이름을 允弼로 바꿔 혈맥을 잇게 된다.
八溪公 丁景英에서 정각수(丁珏壽)에 이르기까지 300년 동안 거느린 노비는 해마다 20여명에 이르고 이들 가솔들의 살림살이는 대문 밖에 따로 집을 지어 살 수 있도록 하였다. 300년 동안 거느린 노비의 수자를 통해 보더라도 전답이 수천 마지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노비들은 새로운 터를 잡고 살 수 있도록 내보냈으나 일부는 주인의 정을 잊지 못하고 근처에 집을 짓고 1950년대 까지 여섯 가솔들이 살고 있었으며 보성에서 후덕한 지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鳳崗 丁海龍의 조부 정각수( 丁珏壽)는 양자로 들어왔지만 가계를 잘 이어가고 가세가 번창하게 된다. ‘영광정씨 족보’에서 정각수(1864~1936)는 <매일 의관을 정제하고 빈객을 접대하였다. 항상 집에 객이 가득하였으나 싫은 기색이 없었고 家內百口였지만 항상 화락하였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家內百口의 표현은 집안의 가솔과 빈객 그리고 노비를 합쳐 100여 명에 달했다는 것으로 가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929년 己巳年에 큰 흉년이 들어 굶어죽은 사람이 생기자 수백 석의 곡식을 조부 丁珏壽의 명의로 면민들에게 나눠 먹이게 하는 빈민구제와 구휼활동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고 있는데, <‘조선일보’의 1938년 1월 15일자 기사나 ‘매일신보’ 1940년 5월 20일자의 기사의 내용이 그 근거다. 1940년의 춘궁기에 회천면 사람들이 큰 식량난을 겪게 되자 정해룡은 자신의 곡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활동은 정해룡이 보성이라는 지역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지위를 짐작하게 해주는데, 이와 관련하여 1936년 6월 17일자로 발행된 ‘매일신보‘는 보성군 내에서 정해룡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게 해준다.>고 오승용 교수(전남대 정치학)는 신문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또 ’보성 인물사‘에 1943년 대흉년이 들자 백미 수백 석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줬다고 기록하였다.
‘똥 구녁이 찢어지는 가난’이란 말이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작지는 한정되어 있었고 단보 당 생산되는 곡식은 한 가구에 8~10명이란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봄에 산에 가면 가난한 친정에 가는 것 보다 낫다’는 말은 그 시대에 나온 말이다. 들과 산에서 자라고 있는 구황식물(救荒植物)로 쑥이나 칡뿌리 등을 캐서 먹고 살았다. ‘송쿠밥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을 논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송쿠’는 전라도 사투리로 소나무의 목질과 껍질 사이에 물이 올라가는 부드러운 조직을 말한다. 봄에 물이 오를 때 벗겨서 곡식을 섞어 밥을 지어먹었는데 질긴 섬유질로 그것이 빠져나올 때는 똥구멍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아야 했다. ‘똥구녁이 찢어지는 가난’이란 말도 그 시기에 나온 말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막는 다’는 말처럼 흉년이 들고 생산된 곡식들은 일본으로 건너가던 일제 강점기, 백성들이 굶어죽는 현상을 총독부까지도 외면하고 있을 때 곳간을 열어 수백 석의 쌀을 면사무소를 통하여 나물죽이라도 끓일 수 있도록 한 鳳崗 丁海龍의 사상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인본주의에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봉강, 학교 다니기 전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부터 100m 정도 떨어진 곳의 밭에 갔다. 어머님께서 김을 매시다가 “아야 오산(봉강의 택호) 형님 올라오신다. 인사해라.” 길로 뛰어나가 인사를 했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음으로 인사를 받았다. 어머님은 호미를 놓고 두 분은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봉강은 선친의 조카뻘로 같은 해에 출생하여 질곡(桎梏)된 삶을 살아야 했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거북정(龜亭)으로 올라가는 봉강의 뒷모습이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같은 시기 거북정(龜亭)에서 잔치가 있다는 소문이 일가친척들에 알려졌다.
안채 마당에는 차일이 처져 있었고 안채와 사랑채에는 집안 어르신들과 빈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유성기(留聲機)에서 흘러나온 노래 소리는 잔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고수의 북 소리에 맞춰 창을 한 사람들은 지금 생각해보니 松溪 鄭應珉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었던 것이다. 효성이 지극하기로 널리 알려진 봉강은 어머니의 회갑을 맞이하여 그렇게 위로의 술잔을 올리고 있었다. 여섯 살 때 父를 잃게 되자 조부로부터 한학을 익히게 되고 사람답게 사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 호남 지역사와 문화연구
- 김경숙 교수(조선대학교 사학과) - 丁景英 후손가의 會寧 移居
- 오승용 교수(전남대 정치학) - 봉강 정해룡과 민족교육
- 영광정씨 족보
- 寶城人物史
- 사진설명 : 2010.10.27일 매봉산(鷹峰山 해발 667m) 정상에서촬영. 보성만과 고흥반도가 펼처져 있고 왼쪽 산 끝에 거북정(龜亭)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