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촬영용 디카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첨부된 사진은 집 아이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로 올린 것입니다. 사진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경주(慶州)에서의 U턴
수요일 조퇴, 목요일 연가, 금요일 석탄공휴일 - 25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처음으로 주중 출사가 가능한 틈새를 마련하였다. 소소한 직장인에겐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어서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요령꾼들을 극히 싫어하는 만큼 다른 동료들에겐 피해를 주지 않았고 맡은 소임은 120% 단도리를 해두었다.
5월 19일(수) 개여 가는 날씨 따라 희망을 가진 날
예정된 시간을 2시간이나 지나 약속 장소에 나타나자 유일한 출사 파트너인 김 형(兄)의 수인사가 저음이었다. “상황이 그리되었슴다, 죄송하네요.” 짧은 변명에 김 형 눈의 불길도 순간처럼 지나갔다. “이제 막 황 형 욕을 시작하려던 참인데, 갑시다.” 이것저것 짐을 싣고 차에 오르자마자 기상 얘기를 시작으로 바로 곧 습관적인 분위기로 돌아갔다. 김 형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글거리는 눈매, 걸걸하면서도 탁 트인 음성, 180cm에 근접하는 시원한 키, 통뼈에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 막힘없는 언변, 상대를 내리누르는 강한 기(氣), 생각대로 밀고 가는 과단성, 폭발에 이르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는 직진성 …‥ 분출 직전의 부글거리는 활화산임이 몸으로 느껴지는, 한 마디로 오늘날 희귀한 원판 사나이다. 그러면서도 영화계로 진출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선이 굵은 미남이다. 그를 접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즉시 호감을 갖고, 일부의 사람들은 강한 경계심을 갖는다.
원래 첫 목표지는 통영의 다랑논이었다. 출발 시각이 12시 15분이라 통영에 도착하면 일몰 시각에 임박할듯하여 미륵산 등반에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덕유산 일대를 지나며 계획을 급히 바꾸었다.
날씨는 분명 맑아지고 있는데 산 지역으로 들어서자 헤이즈가 확연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바다와 맞닿은 남해안 일대에서는 시정거리가 더 나쁠 것으로 판단되어 회남재로 방향을 틀었다. 일몰 때에 악양벌과 주위 다랑논을 적셔놓을 황금빛과 자두빛의 스팩트럼을 상상하였고, 자운영과 어울린 부부송도 제철이라 짐작하였다. 그러나 회남재에서 악양벌로 천천히 내려가며 열심으로 살펴봐도 역시 헤이즈가 심했다. 바로 접고 부부송과 악양벌을 조망하는 촬영지로 이동했으나, 헤이즈로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자운영꽃밭을 찾았으나 도무지 눈에 띠지 않았다. 없애버린 것으로 판단하고 자운영 대신 노란색의 보리밭을 넣고 부부송을 촬영하고자 평지로 내려섰다. 회남재에서 시간을 허비하여 햇살이 약 20분 정도 남았을 뿐이었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30kg이 넘는 카메라 배낭을 울러 매고 서둘러 움직였다. 사광을 버리고 과감히 역광을 택하여 얼추 자리를 잡았다. 평일이라 작업하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어서 짧게나마 호젓하게 몰두할 수 있었다. 먼저 작업을 끝낸 김 형도 표정이 나름 밝았다.
점심을 김밥으로 때웠기에 저녁만큼은 단단하게 챙기기로 하였다. 이 방면은 김 형의 고유 영역이다. 전국 8도의 맛집과 특산물을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낯선 지역에서도 그 곳의 대표 식당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감각을 가졌다. 시간도 늦었고 다음 목표지인 보성으로 향하던 중이라 이미 우리가 검증한 곳을 향하였다.
[광양 3대 불고기] 집. 이미 밤 8시를 넘기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많았다. 이 식당은 기업화 되어 관광버스가 찾아오고 분주하고 규모가 큰 곳이라 입구에서부터 실망감을 받을 수 있다. 분위기는 일단 접어야 한다. 그러나 먼저 나오는 검은 죽을 드시고 석쇠에서 살짝 데친 불고기를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바로 감동과 찾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불고기 3인분, 된장 하나, 공깃밥 두 그릇, 술 대신 콜라 1병을 주문하였다. 역시 맛은 변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확인한 바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느 지역에도 분점을 내준 적이 없다고 한다. 혹 서울에서 동일한 상호를 보시더라도 오해하지마시길 …‥
식당 맞은 편의 강변 체육 공원 벤치에서 식후 포만감을 즐겼다. 약간의 휴식 후 보성으로 향하였다. 평일 밤이라 보성으로 진입했을 때에는 차마저 왕래가 뜸하였다. 출사 하면서 팬션에 묵을 이유와 여유가 없어 대한 제1다원과 인접한 [다향 모텔]로 숙소를 잡았다. 일전 나홀로 출사 때 묵은 적이 있는 곳이었다. 현금 3만원으로 합의를 보아 방을 얻었다. 다만 둥근 침대가 있어 좀 당황스러웠으나 김 형이 선뜻 양보하여 순식간에 자리배치가 끝났다. 간만의 출사라 이런저런 대화와 긴장으로 새벽 두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5월 20일(목) 맑았으나 2% 부족한 날
그럼에도 05시가 조금 못되어 깨었고 서둘러 대한 제1다원으로 움직였다. 그 시각에도 입장권(자동판매기에 2000원을 넣으면 나옴)을 받는 나이 지긋한 노인분이 계셨다. 헐떡이며 중앙 전망대로 올라 차밭 좌상단의 일출 포인트로 등반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차밭의 줄마다 진사 한 사람씩 포진하고 있었다. 빈 곳 두 곳으로 갈라서 각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불길하였다. 구름층이 확인되었고 안개 조짐도 빛내림 조짐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사가 모두 떠나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내려왔다. 기대했던 광경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으로 전망대까지 내려와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둘 다 동시에 우측 차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침 햇살의 향연을 목격하게 되었다. 분명 순록의 생명빛이 분출되고 있었다. 우리 둘은 호젓해진 차밭을 다시 독점하였다. 그런대로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도 작업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 가까워지는 말소리로 보아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그들은 손을 들어 환대하는 나의 반가움을 완벽하게 무시하며 떠들썩하게 전망대로 올라갔다. 내려와 간편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허기가 느껴져 밀양 위양지로 가면서 식당을 찾기로 하였다.
순천에서 아침을 해결하였다. 여기서 다시 김 형의 위력을 확인하였다. 식당가를 몇 번 돌다가 식당 한 곳을 맘에 두고 차를 세웠다. 음식이 나오고 먼저 입맛을 본 김 형이 깍두기를 자르고 있던 내게 “일단 한 입만 드시고…‥”하고 권해왔다. 괜찮구나 하는 직감을 가지고 국물을 한 숟갈 떴다. 넘기자마자 [명장 진국 설렁탕]이란 식당 이름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먼저 냄새가 없어 좋았고, 맛에서는 격조마저 느껴졌다. 현재까지 먹어본 설렁탕 중 으뜸이다. 현지 고객 한분이 들어와 꼬리곰탕을 주문하였다. 아들이 좋아한다나. 이 말에 궁금함이 들어 혹 택배가 되느냐고 물으니 4~5인분 이상이면 전국 모두가 가능하단다. 혼자만 호위호식 하는 것이 찔렸고 식구와 부모님 생각이 났다. 택배로써 ‘모두들 어느 날 갑자기 놀래 주리라.’ 홀로 결심을 하였다. 손을 맞는 모습도 좋았다. 그리고 식당 주인의 발랄한 딸네미를 고등학생으로 착각하지 마시라, 스무 세살의 어엿한 성인 처자다. 식후 뿌듯한 마음으로 밀양으로 향했다.
위양지에 도착하여 일단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전면과 후면이 모두 좋았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작업하기로 하였다. 예순이 넘어 보이는 진사 세 분이 철수하기 시작하여 우리 둘과 교대하였다. 호젓함에서 다시 뿌듯해지며 허락된 독점의 시간을 만끽하였다.
작업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여러 사람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일군의 찍사들이었다. 약 6명 정도가 우리를 물체 정도로 간주하고 수인사도 없이 들이닥쳤다. 그리곤 김 형과 나의 앞, 밑, 옆을 쑤셔대며 사진을 찍겠다고 설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서로 간에 시끄럽게 대화를 섞어가며 기관총 난사하듯 디지털 카메라로 드르륵드르륵 긁어대었다. 한 사람을 빼고는 40을 넘나드는 여인네 무리였다. 어쩌면 김 형이 한 수 지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짢음을 눌렀다. 10분이 안되어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정말 싸가지란게 없네요.” 말을 건네자 김 형도 “여인네들이라 대거리하기 싫어 그냥 뒀슴다.” 위양지 앞면으로 가기 위해 배낭을 꾸리는 동안 내내 그 무리를 성토하였다. 흩날리는 민들레씨를 헤치며 자리를 잡았다. 대낮의 쨍한 햇살임에도 한동안 몰두하였다. 하늘에 구름이 드문드문 떠주기를 기대했지만 새털조각 하나도 없었다. 얕은 바람이 불어 완벽한 반영은 연출되지 않았다. 2% 부족한 사진이 될듯해 보였다. 경산의 관곡지 출사는 타이밍 문제로 포기하였다. 무리하지 말고 경주로 일찍 들어가 쉬기로 하였다.
경주엔 기대가 컸다. 가는 길에 울산 쪽에서 냉면을 먹었으나 큰 감동은 없었다. 경주역 앞에서 약간 연식이 되어 보이는 [세검정 모텔]이란 곳에 들었다. 목욕탕과 붙어 있어 모텔 손님들에게는 혹시 목욕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무료는 아니고 반액으로 감해주는 정도였다. 온돌방을 3만 5천원에 들었다. 일체 에누리가 없었다. 들고 보니 방도 협소하고 환기가 잘되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부족하나마 씻고 우리의 내일 출사 계획을 매듭지었다. 밤 9시 30분쯤 이었다.
출출하여 뭔가라도 먹거리를 찾기로 하였다. 숙소 일대를 한 바퀴 돌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닭칼국수 집을 발견하였으나 이미 영업이 끝나 있었다. 김 형에게 칼국수를 고집하였다. 20분을 넘게 헤매다 숙소 근처에서 허름한 손칼국수 집을 발견하였다. [길손 식당]으로 이름을 기억한다. 할머니뻘 두 분이 운영하는데, 손이 주문을 하면 그 때부터 면발을 뽑아 국수를 삶았다. 꽤 시간이 지나서 칼국수가 나왔다. 정말 손으로 뽑은 칼국수였다. 멸치 육수를 제대로 사용하였다. 먹을수록 맘에 들어 결국 밥을 한 그릇시켜 나눠 말았다. 식후 뿌듯함으로 내일을 맞을 자신감이 충실해졌다. 이런저런 얘기로 1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어렸던 날 어머님이 해준 손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있는 분은 꼭 찾아보시라. 세검정 모텔에서 큰 도로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있다.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고 했다.
5월 21일(금) 맑은 날 경주를 네 번이나 교행하며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여서 좀 더 누웠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날이 훤하였다. 잠깐인 듯했는데 그새 한 시간 반이 더 지났다. 직감으로 삼름의 빛내림과 안개속의 소나무 광경은 물 건너갔음을 느꼈다. 김 형을 깨워 삼릉을 가볍게 훑어보려 출발하였다. 내년에 방영될 ‘전우’라는 연속극 촬영팀이 어쩐 영문인지 삼릉에 찰영버스를 주차하며 캠프를 차리고 있었다. 이들은 원래 곧 골프장으로 바뀔 도투락 목장에서 촬영하고 있어야 하는데 …‥바로 철수하였다.
다음 목적지인 갈곡리 호밀밭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2년 전쯤 직장 동료와 왔다가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산만한 사진만 몇 커트 담아 왔던 곳이어서 나름 전투 의욕이 다시금 솟았다. 보문단지를 빠져나가 10분도 되지 않아 목적지에 이르렀다. 전면의 배밭 중앙 통로를 통해 비포장 길을 올랐으나 막다른 길이이어서 돌아나왔다. 다른 진입로를 찾기 위해 축사 쪽으로 진입하는 중에 갑자기 고함 소리가 들렸다. 차에서 내려 보니 목장 주인이었다. 빨리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곳으로 오기까지 이미 네 번 정도의 구제역 예방 소독 세례를 받은 바가 있었다. 노한 목소리였다. 구제역 문제로 신경이 극도로 민감해져 있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무조건 죄송함을 표하고 농장을 빠져 나왔다. “내 오늘 저 호밀들 싹 다 베어 뿌릴꺼니까.....” 목장 주인의 커다란 목소리가 돌아 나오는 우리들 등 뒤에서 생생하게 울렸다. 복잡한 마음으로 조용히 철수하였다.
일이 꼬여간다는 예감이 왔다. 그래도 생업의 사활이 걸린 주인의 짜증을 이해하며 다음 목적지인 비지리로 향하였다. 비지리 촬영 포인트는 자료가 충실하지 않았으나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 두 번을 헛돌고서야 비지리로 들 수 있었는데 도무지 산을 오르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동차 바퀴 흔적이 있는 비포장길을 택하여 위태위태하게 올랐다. 두어 번 미끄러진 후 4륜으로 바꿨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 바퀴 흔적이 트랙터가 남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올라보았으나 길이 끝나고 잡목과 수풀이 앞을 막는 마지막 지점까지 왔다. 차를 돌리는 데 뱃속이 따끈따끈해왔다. 어렵게 회차해서 나오며 4륜의 힘을 절감하였다. 길도 좁아 바퀴가 도랑에 빠지는 게 아닌가 신경을 바짝 썼다. 시멘트 길이 나오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확 밀려왔다. 짧은 운행이었으나 꽤나 집중한 까닭이다. 존심이 몹시 상해오지만, 세 번째로 철수하기로 하였다. 좀 더 자료를 보강하여 가을날 벼가 익을 때 재도전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나의 피로를 느꼈는지 김 형이 핸들을 잡고 다시 경주 시내로 갔다. 아침을 먹고 남은 일정이나마 새롭게 출발해보려는 마음이었다. 계속되는 실패를 김 형과 곱씹으며 차를 스치는 아침 공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보문단지가 웬만큼 가까워졌을 때 우리의 갤로퍼가 순간 옆으로 꺾이며 길가의 바위벽을 받을 뻔하였다. 김 형의 순발력으로 휘청한 후 차는 다시 중심을 잡았다. 순간 벤츠 한 대가 갤로퍼를 들이받듯 밀고 들어오며 중앙선을 넘어 우리를 추월하였다. 보문단지로 연결되는 편도 1차선의 길이었다. “저 자식이…‥” 김 형 목소리의 단호함으로 보아 이미 사건은 발생하였다. 운전석에서 몸을 세운 김 형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김 형은 내가 경험한 최고수의 드라이버이다. 90년대 중반, 김 형과 처음 출사 가던 날의 야간 주행에서 나의 그의 핸들링 실력을 이미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당시 김 형은 광폭 타이어가 차체를 삐져나와 보기에도 둔중한 스포티지를 몰았다. 그러나 김 형은 이 스포티지로 영동고속도로의 오르막길에서 그랜다이저(그랜저)를 웃으며 재꼈다. 후에 신형 코란도를 몰 때에는 7번 국도의 언덕길에서 건방진 스포츠카, 티뷰론을 따돌리며 창문을 내리고 왼손 가운데 손가락으로 세워 운전자를 경멸하기도 하였다. 고속도로를 누비는 그의 운전은 호탕하고도 장쾌하여 거칠 것이 없다. 물론 20년을 향해가는 우리의 출사 여행에서 자동차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고(아, 오대산 진고개를 내려오다 깜빡 졸아 가드팬스를 살짝 스친 적이 한번 있음), 딱지를 떼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벤츠였다. 따라오는 것을 눈치 챈 벤츠는 바로 속력을 붙였다. 코너링마다 타이어 마찰음이 울리는 레이싱이 시작되었다. 입구 직전의 굴다리에서는 벽을 때려 박는 듯 차가 스쳐 통과하였다. 잠시 도로가 넓어지며 벤츠가 거리를 벌였다. 역시 이건 무리겠다 싶어 조용히 관망하였다. 다시 편도 1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어쩐 일인지 벤츠가 점차 가까워지며 나의 예상과는 차간 거리가 좁아 들었다. 마침내 보문단지 입구의 4차선 도로에서 김 형은 그 벤츠를 제끼며 앞에서부터 막아 세웠다. 불과 약 3분 동안의 질주였다. 김 형이 귀신처럼 몸을 틀며 뛰어 나갔고 나도 내렸다. 내려 보니 벤츠와 갤로퍼 간에는 약 20cm 정도의 간격이었다. 벤츠의 두 앞자리에는 예순을 넘겨 보이는 두 노년층이 앉아 있었다. 순간 가속된 김 형의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 만약 그들이 우리보다 연하였다면 아마 육체적으로도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살인미수’라는 김 형의 고성이 도로를 울렸다. 사과를 받고 도로 교육의 매듭을 지었으나, 그 두 사람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굴욕과 공포를 경험하였을 것이다.
짧은 오전 시간에 경주에서의 3연패를 기록하고 돌출에피소드마저 겪은 우리는 일단 식사를 하며 호흡을 늦추기로 하였다. 그러나 식사마저도 그만그만하였다. 김 형의 제안으로 각자 가족에게 전할 황남빵과 찰보리빵을 샀다.
약간의 의지를 회복한 우리들은 마지막으로 OK목장을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이곳에서도 비지리 조망이 가능하였다. 역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OK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 썰매장으로 사용된 흔적이 여실하였다. 그러나 주차 후 정황을 살피려고 언덕을 보자 대형 천막과 행락을 즐기는 일군의 무리들을 발견하였다. 그 곳으로 올라야 포인트 바위로 진출할 수가 있어 갈등이 생겼다. 오늘은 일진이 아니다라는 감이 왔다. “김 형, 철수합시다.” 우리는 OK목장을 포기하며 경주 출사의 전면 패배를 받아 들였다. 연속 4패인 셈이다. 순간 ‘U턴’이란 영화가 생각났다. 탈출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그 때마다 어떤 우연성에 의해그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원점으로 되돌아가 파국을 맞는다는 영화였다. 경주 시내를 네 번씩이나 오가며 셔터 한 번을 눌러보지 못했다. 성과라곤 단지 차에 실어논 황남빵과 찰보리빵 뿐이었다. 가장 기대가 컸던 경주에서, 새벽부터 오전나절 내내 죽을 쑤고 말았다. 둘은 일단 경주를 벗어나는 것에 흔쾌히 합의하였다.
상주의 경천대를 향하려다 서울로 돌아갈 때의 경로를 고려하여 어제 생략했던 관곡지로 방향을 잡았다. 대구에 인접하여 상행에도 무리가 없었다. 쉬엄쉬엄 도착해보니, 새벽 해뜰 때 외에는 작업이 곤란하였다. 이미 차를 댈만한 공간에는 차들이 빼곡하였고, 홀로 또는 동아리로 모여든 진사들이 작업 중이었다. 짧게 보아도 작업의 의미가 없었다. 나오다가 인근의 대추 농원에 관심을 가졌으나 나무마다 막걸리 병을 차고 철근으로 부목을 해 싱싱한 신록빛을 담는 작업은 단념하고 말았다. 오후 세시에 가까웠다. 일진의 사나움을 만회하고자 김 형이 대구의 히든카드, 따로 국밥집을 제시했다. 약 10년 전까지 김 형이 애용하던 식당으로 전국구로서의 자격을 가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 바퀴를 돌아도 그 집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역과 인근의 대형 백화점 건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뭔가 변화가 생긴듯하였다. 20분 정도 헤매이다 결국 포기하고 해장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후 차로 돌아온 나는 문이 잠겨 있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순간 뱃속이 뜨끈하였다. 빠르게 훑어보니 다행스레 잃어버린 물건은 없었다. 바퀴에 흙이 묻고 낡아빠진 차여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두 배낭에는 중형자동차 값 상당의 카메라들이 들어있었는데 …‥ 둘의 여행에서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건에 손타지 않았음으로 위로를 삼았다. 이것을 분기점으로 기세가 회복될 것으로 해석하였다. 바로 뜨기로 하였다.
대구에서 오산까지 그야말로 날라 왔다, 모든 것을 날려 버리듯! 이렇게 기대 많았던 2박 3일의 출사 여정이 끝나 버렸다. 손꼽을 만한 성과는 없었으나 두고두고 곱씹을만한 이야기꺼리는 건졌다.
별 의미 없는, 산만한, 그러면서도 길기만한 출사 보고를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독자님들의 출사는 우리와 어떻게 다르신지 말씀도 듣고 싶네요.
혹 도움이 되실까 후회하지 않을 음식점과 가게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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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불고기 : Tel)061-762/763-9250, H/P)011-773-3858
주소)광양시 광양읍 칠성리 959-11
◦ 명장 진국 설렁탕 : Tel)061-727-0775, H/P)010-4454-7284
주소)전남 순천시 조례동 1593-9
◦ 황남빵 : Tel)054-749-7000, 주소)경주시 황오동 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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