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Utopia)의 환상은 삶의 언저리에서 늘 배회한다.
2012년 11월 16일(금) 오후7시 사진작가 김승혜 ‘nowhere'(아무 데도 없는) 개인전이 충무로에 자리한 갤러리 브레송(대표이사 김남진)에서 선택받은 지인(이카데미 이수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사진계 원로이신 육명심 교수님, 백지현(백두준령), 이상봉 관장(인천 사진공간 배다리)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김승혜 작가는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 대표가 강의하는 사진+인문학 아카데미 1기생으로, 작품의 테마는 주요섭의 ‘구름을 잡으려고’를 읽고 소설 속에 숨겨진 향수와 그 의미를 꿈꾸었던 그 장소를 추적해서 제물포항,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를 사진으로 담았다. 그 곳에서 작가는 마치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아무 데도 없는’(nowhere) 욕망의 실체를 구름을 잡으려고 애쓰는 촬영행위로 치환시킨다. 김승혜 작가는 두 가지를 가지고 유희 한다. 하나는 말(text)들의 숨결이고, 또 하나는 이미지(image)의 상상력이다. 이영옥 (시진비평)
이날 오프닝은 간소 하면서도 뜻 깊은 행사였다. 다과회 중에는 참석자가 질문하고 답하는 식으로 육명심 교수님의 특강(1시간10분)이 있었다. 다과회를 마치고 전원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했다. 이번전시는 오는 11월 24일 전시가 끝나면 다음 전시는 인천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 2012. 12. 14.(금) ~ 12. 26.) 전시계획하며 오프닝은 오후 7시 예정이다.
nowhere '아무데도 없는‘
1. 준식이는 구름을 잡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허탕
(空虛)을 잡은 것이다. 안 잡히는 구름을 잡아보겠다고 바라고, 바라고 언제까지나 바라는 이 바람의 노예들! 구름을 잡은 때 그것은 '허탕'.....
2...... 준식이가 고향을 떠나기는 돈을 벌어 볼 욕심이었다. 그렇거늘 그들은 벌써
여러 해째 돈을 구경도 못 했다. 돈은 둘째이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남는 것 이란 없었다.
3. 땅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사람, 공든 탑을 무너뜨려버린 사람, 그 사람의 생활 을 무엇에다 비길까? 타락? 타락이라고 할까? 장래에 대한 신념이 없어졌으니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까?
4. 뾰루대는 삼십명의 노동자를 싣고 제물포를 떠났다. 모두가 노자 한 푼 없이, 그러나 큰
돈을 모아 가지고 떵떵거리며 돌아올 날을 꿈꾸면서 떠나가는 젊은 일꾼들이었다.
이번 한번 고향을 떠난 바에야 팔백리면 어떻고 팔천리면 어떠랴? 밥만 주겠다면, 더욱
이 부자만 만들어주겠다면 이미 떠난 바에 갈 데까지 가볼 것이 아니냐?
5. 미국! 돈이 길에 디굴디굴 굴러다닌다는 미국! 사년 동안이나 꿈꾸고 애타하던 그리운 땅,
이 땅 안에를 내일이면 들어선다는 것이 어째 아주 불가능한 일만 같다.
6. 아! 시간은 '달아난다'. 그러나 얼마나 기막힌 '달음박질'이냐? 그동안 그들은 '살았다'. '살았다', 얼마나 평범한 말이냐? 또 얼마나 눈물겨운 존재냐? 무엇하려고 사는가? 무슨 재미로 사는가? 이러한 물음이나마 물어도 볼 경황이 없는 삶이었다. 자고 먹고 일하고 매맞고 이것이 그들 생활의 전부였다.
7. 과연 그것은 어떠한 운명의 장난인가? 한 생과 다른 한 생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지옥 같은 뱃간 생활에서 잠깐 만나 서로 얼굴이나 알았다가 이제 이 만리타향에 와서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마지막 이별을 하게 됨은 이 무엇의 장난이었던가?
8. 아하, 장가드네그려! 컹 컹그래출레이션 미스터 박 ! 잘 생각했네, 잘 생각했어! 그래,색시를 얻어와야 돼! 색시를 얻어와야 사람 구실을 하게 된단 말이야! 다 아는 바 이지만 보게, 어디 홀아비놈들 하나 사람 된 것 있던가? 잘 하는 일일세...... '내가 언제 장가간다구 그랬길래 이 야단이야 !" 하고 준식이는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빈정댔다.
9. 무엇이라고 할 행복인가? 이 행복은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따뜻한 햇볕과 퀴퀴한 썩은
나무 냄새가 전해주는 행복이었다. 그것은 삶, 그 자체의 행복이었다. 온갖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살아가는 것, 곧 생존의 행복이었다.
10. '만일 네가 내 사랑이었다면 네 이쁜 눈에 나는 연주칠 했을러라!' 준식이의 하루저녁 오입은 한 주일 벌이를 헛벌이가 되게 하고 말았다.--- 과거를 잊자! 현재를 한푼어치라도 향락하자 미래란 소용없는 파멸이다! 이런 생각들이 자연 준식이를 알코올과 계집과 '관동은행'으로 끌었다. (관동은행 : 중국인 소유의 도박장)
11. 달 그림자가 옮겨간 것을 보아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번 울어서
마음의 평정을 얻은 두 사람은 다시 마주 바라다보며 누워 있다. 눈물이란 이상한 물건이다. 얼마의 눈물이 이처럼 마음을 가라앉힘에 그들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2. 제물포 - 그것은 조선이 열어놓은 출입문의 오직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한 출입 문이었다. 지금은 인천(仁川)이라고 하는 큰 항구로 대도회가 들어앉았지만 그 때만 해도 제물포는 한 개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다. 주민들은 고기도 잡고 농사도 지었다. 그리고 이따금 청국(淸國)으로부터 정크(舟) 가 비단을 싣고 들어와 닿으면 온 동리가 떠들어나가 짐을 풀었다. 그러면 청국사람 뱃주인은 주연(酒宴)을 배설하고 촌민을 대접했다.
13. 그렇거늘 그 배는 그와 춘삼이를 종의 나라로 실어다주었다. 죽음의 나라로 실어다 주었다.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영원한 허무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었던가? 만일에 준식이가 끝까지 속아서 살았던들 준식이는 행복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스러우려고 하면 모르고 사는 것이 제일이다. 만일 하나 둘 알기 시작하면 거기는 비로소 실망과 환멸이 있는 것이다.
14.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 처한 사람일지라도 '목숨', '삶'이란 이것은 무엇보다도 귀중한 요구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매일 허덕 허덕, 거의 죽어가면서도 또는 차라리 죽어버림이 나을 생애를 하면서도 그래도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다른 의논이 없다. 우선 '살아놓고 보자' 하는 것이다
15. 살아가노라면 그래도 무슨 솟아날 구멍이 생기겠지! 하는 이 눈물겨운 믿음. 이것은 한 사람의 생애가 참혹하면 참혹할 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다. 하염없는 바람인 줄을 알기는 알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이 바람을 붙잡고 매달린다.
전시기간 2012. 11. 16. ~2012. 11. 24.
장소 (서울) : 갤러리 브래송
한국사진방송 김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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