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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老) 시인의 삶의 향기
이생진 시인 34번째 시집 <골뱅이@ 이야기> 펴내
이생진 시인이 그의 34번째 시집 <골뱅이@ 이야기>를 펴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기 이야기들을 시집으로 엮었다. 1955년 시집 <산토끼>를 낸 이래 34번째 시집이다. 매년 한두 권의 시집을 펴낸 셈이다. 지난 해엔 <실미도, 꿩우는 소리>를 펴냈고, 올해 들어서는육필시선집 <기다림>, 시화집 <詩가 가고 그림이 오다>에 이어 시집 <골뱅이@ 이야기>를 펴냈다.
이생진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섬 시인이다. 우리나라 섬 1,000여 개를 찾아다녔고 올해 만 해도 벌써 몇 번 째 섬을 돌아다니고 있다. 제주도, 가파도, 우도, 증도. 그리고 지난 10월초 우이도를 다녀오더니 연이어 어청도, 11월에는 다시 제주도로 갔다. 이들 섬은 처음 가는 섬이 아니다.
우이도, 제주도는 지난 몇십 년 간 수십 번을 다녀왔다. 횟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아니, 굳이 헤아릴 필요가 없다. 34권의 시집 대부분도 섬에 관한 시집들이다. 그런 연유로 제주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최근에는 신안군 명예군민으로도 추대되었다. 섬 사람들보다 섬을 더 사랑한다면 과장일까?
낯선 다리 위에서 달을 본다
달은 돌아가신 어머니 같고
돌아오지 않는 누이 같다
비금도 시금치 밭에서 술을 마시고
흔들흔들 다리를 건널 때
도초도까지 따라온 달
달을 본 어머니가 ‘물 조심하라’하신다
물속에 가라앉은 달이 어머니의 말이다
철없는 누이는 지금도
쟁반 같다고 말한다
시<다리 위에서 달이-비금도와 도초도> 전문
지난 해 필자는 이생진 시인과 함께 11개의 섬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실미도, 무의도,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추포도, 자은도, 우이도, 도초도, 비금도, 강화도 등. 이 시인은 섬에 갈 때 마다 즉석에서 시를 쓰고 시를 따라 나오는 그림을 그린다. 이 시인은 시가 물고 나오는 그림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섬에 가면 섬이 된다. 섬보다 더 섬이 된다. 그리고 섬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가 한다. 비금도에 갔을 때 필자는 그림산 선왕산을 오르고 이 시인은 걸어서 다리 위를 지나며 달과 이야기했다. 그 달과의 이야기는 어머니 아니면 누이 아니면 옛 시인과의 이야기다.
이른 봄 갯바람에 끌려
강화도 이규보 선생 무덤 앞에 와서
술 한잔 붓고 그의 시를 생각하네
‘시 짓는 버릇이 또한 큰 병이라
아무리 약을 써도 고쳐지지 않으니
.......
아마 이 병으로 죽게 되리라‘는
시에 이어
‘이제 살점마저 남아있지 않아
뼈만 앙상하여 그래도 시 읊는다
이 모양 정말 우습구나
.......
그러나 웃고 나서 또 시를 쓰네‘라는 시
강화도 막걸리 나도 한잔 따라 마시고
이번엔 나를 생각하네
그때 그의 나이 73세
그는 이미 팔천 수를 썼는데
나는 겨우 삼천 수
내 나이는 선생보다 다섯이 넘었는데
나는 언제 오천에 이를 것인가
서둘러 돌아와 시를 쓰네
시<이규보 선생 묘 앞에서> 일부
지난 해 실미도에 갔을 때 이 시인은 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왔다. 실미도 바닷가. 이곳에서 훈련받고 죽어간 병사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바위에 술을 붓고 시를 읽었다. 그리고 그들의 혼령과 술을 나눴다. 영화 <실미도>의 장면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시집 <실미도, 꿩우는 소리>를 내기 바로 전이다. 이 시인은 이처럼 실미도에도 수없이 다니면서 시를 썼다. 잊혀져 가는 실미도의 아픔을 시에 담아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해마다 꿩우는 계절이면 그곳에 가서 시를 읽는다. 그게 몸에 배어있다.
강화도 이규보 선생 묘소에서도 그랬고 매년 제주도 다랑쉬오름에서도 그랬다. 그는 옛 선배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술을 나눈다. 강원도 마대산 기슭에 있는 김삿갓 무덤, 부안에 있는 매창의 무덤, 강화도에 있는 이규보의 무덤 앞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육필로 써서
문학관 입구에 세워놨더니
비석 앞에 노란 민들레꽃 심어놓고 갔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노랗게 심어놓고 갔네
진이
내 속을 꺼내보듯
자기 속도 꺼내보라고
활짝 열어놓고 갔네
봄바람에 나부끼는 꽃과 시의 웃음소리
춘풍 이불은 언제 펴놓을 것인가
해마다 민들레꽃 기다려지네
시<민들레꽃> 전문
강화도에 가면 ‘육필문학관’이 있다. 노희정 시인이 유명시인들의 육필을 모아 운영하는 문학관이다. 문학관 입구에는 여러 여류시인들의 시비가 있는 데 <민들레꽃>은 이생진 시인의 육필로 된 황진이에 관한 시비다. 이생진 시인은 시의 멋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시를 쓰기만 하는 시인이 아니라 시의 맛을 아는 사람 같다. 막말로 한량이다. 아니 섬을 떠도는 방랑객이다. 혼자 섬을 돌아다니면서 맨발로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고 섬과 뜨겁게 입을 맞추는 시인이다. 화가 반 고흐와도 놀고, 김삿갓, 황진이와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논다. 이생진 시인은 섬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 누군가의 삶에 흠뻑 젖고 싶다고도 말한다. 반 고흐처럼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너도 미쳐라’ 이 말이 듣고 싶어 고흐에게로 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인은 반 고흐, 김삿갓, 황진이에 관한 시집도 각각 단행본으로 펴냈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얼굴을 파묻고 신문을 보다가
잠깐 눈을 맞은 편으로 돌렸더니
여섯 사람은 들여다보고 한 사람은 졸고 있다
여섯 사람은 20대 30대
모두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놓는 스마트폰
줌인 zoom in
줌아웃zoom out
그 틈에 졸고 있는 사람은
50대 후반
실업자처럼 시들하다
(중략)
지하철에서 나온 즉시 핸드폰가게로 갔다
S펜 & S메모
새로 나온 갤럭시 노트를 만져본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졸라
크레온을 사던 기분
이젠 나도 갤럭시다
시<나도 갤럭시다> 일부
이번에 이생진 시인이 낸 시집 제목이 ‘골뱅이@ 이야기’라고 해서 처음에는 의아해 했다. 왠 골뱅이? 인사동 맥주집에서 늘 술안주로 시키던 골뱅이가 생각났나? 그런데 막상 시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다. 골뱅이는 이메일 주소의 @를 쉽게 부르는 이름이다. 이 시인은 1929년 생. 연세가 83인데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늘 젊은이들과 대화하고 젊은이들과 의식수준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젊은이를 모르면 시가 늙는다고 말한다. 섬에 가서도 갤럭시노트로 메모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요즘 신세대 장난감인 카카오톡도 S메모에 그림을 그려서 보낸다. 문자는 싱겁다며 웃는다. 그는 “때때로 그런 것들이 졸음을 깨워주는 수가 있어 내 기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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