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절은 어김없이 돌아 다시 차가운 겨울이 왔다. 만물이 죽은 듯 잠자는 침묵의 계절이지만 그래도 난 이 계절이 무척 좋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엔 초록이 무성해서 좋듯 겨울에는 대자연을 하얗게 덮는 설경이 참 좋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세상살이에 지쳐있을 때도 누구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늘 아름다운 동심이 흐르기 마련이다. 난 겨울이 되면 설경산행과 스키타기를 자주 즐긴다. 눈이 오면 어린 아이들이 제 세상 만난 것 처럼 나 역시 푹푹 빠지는 눈밭 산을 오르고, 스키장에서 설원을 활주하면서 젊음을 되살린다. 온통 눈으로 덮힌 산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마음 한 구석에서 새살이 다시 돋아나오는 느낌이다.
2013년 1월 19일(토), 산악회 산우들과 새해 첫번째 정기산행으로 겨울산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강원도 홍천군 소재 계방산(桂芳山)에 올랐다. 계방산은 정확하게는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필자의 경우 계방산 산행은 이번이 두 번째. 6년 전인 2006년 12월에 처음 계방산을 찾았었다.
계방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남한에서는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정상높이 해발 1,577m. 계방산은 산세가 유순하고 능선이 부드러워 겨울철 산행코스로는 그만이다. 겨울이 되면 적설량이 풍부해 설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바닷바람과 대륙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부딪치기 때문에 많은 눈이 내리곤 한다. 또 내린 눈은 매서운 바람과 낮은 기온으로 쉽게 녹지 않는다.
계방산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로 동쪽으로 오대산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으며, 서쪽에는 남한에서 자동차가 넘는 고개로서는 정선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운두령(1,089m)이 있다. 북쪽에는 반달곰이 서식한다는 깊은 골짜기 을수골이 있고, 남쪽에는 방아다리약수와 신약수 등 유명한 약수터가 두곳이나 있다. 계방산은 각종 약초와 야생화가 자생하는 곳으로 특히 산삼이 유명하여 사철 심마니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산에는 주목,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고 산세가 설악산 대청봉과 비슷하며, 이 일대가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잘 보호되어 있는 곳이다.
계방산에는 옛날 용맹스럽고 무서운 권대감 산신령이 살고 있었는 데 하루는 용마를 타고 달리던 중 칡덩굴ㅇ에 걸려 넘어지자 화가 나서 부적을 써 이 산에 던진 이후 모든 칡이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산에는 칡이 자생하지못한다고 한다.
계방산 산행기점은 운두령이다. 운두령은 어지간한 산 높이에 해당되는 해발 1,089m이기 때문에 계방산 정상까지의 표고차가 497m에 불과,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계방산 등산코스로는 통상 1코스인 운두령-1,492봉(전망대)-정상-1,210봉-계방산주차장 코스(약 4시간 소요)와, 2코스인 운두령-1,492봉(전망대)-정상-주목군락지 갈림길-옹달샘-제2야영장 코스(약 5시간 소요)의 두가지가 있다. 이번 산행은 이중 제2코스를 택했다. 산행시간 약 5시간(점심시간 포함) 소요.
산행시발점인 운두령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간이쉼터들이 있고 북쪽에는 계방산 산행안내판과 그 옆으로 철도침목으로 만든 계단길이 있다. 몇일 전 폭설이 내려서인지 운두령 주변은 이미 만설이다. 아이젠과 스팻츠를 차고 눈꽃산행을 시작한다.
20여m 길이의 계단길을 거쳐 북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1km, 40분쯤 오르면 물푸레나무 군락지에 이르고 다시 1.2km, 40분 정도 오르면 쉼터에 이른다.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 한컷 찍으려니 이곳 눈깊이가 이미 무릎까지 차 오른다. 쉼터를 지나면 ‘계방산 깔딱고개’로 불리는 급사면으로 올라붙는다. 약 30분 거리로 제법 급경사구간을 올라서면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드디어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능선 등산로 양쪽은 온통 눈꽃으로 덮혀 있는 상고대와 설화(雪花)터널로 마치 동화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능선 전체가 눈꽃밭이다. 무릉도원에 온 듯한 환상에 빠진다. 설화숲 능선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1시간 후 해발 1,492m 높이에 위치한 전망대에 이르고 이어 10여분 가면 넓은 공터를 만난다.공터에서 배낭을 풀고 접심식사 시간을 갖는다. 날씨가 풀려 기대했던 멋진 상고대는 많지 않지만 산행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날씨이다. 안개가 끼어 오늘은 시야가 좋지않은데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남쪽 멀리 용평스키장 슬로프를 볼 수 있다.
식사 후 공터에서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300m, 6분쯤 더 가면 계방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1,577미터의 표지석과 뒤에 정성스럽게 쌓아놓은 돌탑이 거센 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있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북으로 광원리와 명개리 방면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고, 멀리 구룡덕봉, 가칠봉, 갈전곡봉, 구룡령 고갯길이 광활하게 펼쳐질 뿐 아니라 설악산 대청봉까지도 바라보인다. 동으로는 오대산 비로봉에서 시계 방향으로 동대산, 거문산, 대미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운두령, 보래봉, 회령봉, 태기산 등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비탈을 따라 직진 하여 600m 내려가면 큰 주목군락지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날머리인 오토캠핑장까지는 4.8km. 약 1시간 급경사길을 내려가면 상수원 시설을 만나고 낙엽송 숲길을 지나 30분쯤 내려가면 제2야영장, 5분 더 가면 이승복 생가터에 이른다.
이승복생가터는 1968년 12월 9일 무장공비 5명이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이승복을 비롯, 가족 4명을 무참히 살해한 현장이다. 가족 7명 중 할머니와 아버지는 이웃에 가서 살았고 집에 있던 5명중 큰 아들은 공비의 칼에 36곳을 찔리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당시상황을 역사에 전해주었다 한다.
이승복 생가를 지나면 오토캠핑장, 샬롬, 로뎀나무 등 펜션들이 있고 계방1교 다리를 건너 삼거리주차장에 이른다. 운두령에서 이곳까지 점심시간 포함 약 5시간이 소요되었다.
용골송어회집에서 싱싱한 송어회로 뒷풀이하고 멋진 계방산 설경산행을 마무리했다.(글/사진 임윤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