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담담한 관조의 자세
윤진섭 | 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김경옥은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향학열을 불태우는 동시에 화업에 정진하고 있는 작가이다.
장미를 비롯하여 목단, 해바라기 등 정물은 물론 해경에 특히 능하다.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그림에 정진하기 시작하여 칠순에 이르러 독자적인 구상화풍을 구축하였으니 그간의 노고를 짐작할 만 하다.
김경옥의 정물화 중에서 특히 장미는 가장 공을 들이는 소재다. 청색조과 붉은색조의 대비에 의한 간명한 구조는 화면에 생기를 부여하는 요체다. 물론 이러한 색조는 비단 장미뿐만 아니라 목단을 그린 그림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청색조만으로 처리한 그림들도 있다.
그 어느 것이나 배경은 대담하게 큰 붓으로 칠하고 꽃은 세부적인 묘사를 가하여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필시 현장에서 사물을 직접 접하고 그 감흥을 차분하게 화폭에 담은 데서 연유한다.
사물의 존재감을 표현하고 있으나 지나치게 사실적이지 않고 적당한 생략과 강조가 어우러진 것 또한 그의 정물화의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보면 평이한 듯싶지만 그 안에는 대상에 대해 기울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담담한 관조의 자세가 담겨있다.
선천적인 색채 감각에 후전적인 노력이 결합돼 나타난 그의 작품세계는 그래서 보는 자에게 공감을 가져다준다. 대상을 화면의 전면 혹은 하단부에 집중 배치하여 안정감 있는 구도를 취하는 태도 또한 비록 평이한 느낌을 주긴 하나 오랜 연륜에 값하는 고즈녘한 시선의 결과일 것이다. 김경옥의 정물화는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으며 현실과 미적 이상과의 경계선상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정물화는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과감한 생략과 강조, 압축의 결과이다.
사물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마음속에 투영된 이미지를 담담하게 구축하는 편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경옥의 정물화에는 대상을 향한 마음의 끌림과 대상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심의(心意)의 길항작용이 존재한다. 그런 마음의 작용이 적당한 붓의 강세와 터치, 안정된 구도를 취하게 만든 요인인 것이다.
해경 역시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한색과 난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가운데 작가의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노란색의 유채꽃이 화사하게 핀 바닷가 풍경을 비롯하여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 풍경, 노을이 붉게 물든 바다 풍경 등은 해경에 대한 김경옥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해경을 통해 자연을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자세는 숙련된 필치와 세련된 색조를 통해 드러나 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두 점의 등대 그림은 서로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데, 하나는 노을이 지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노을이 져 어둑해 질 무렵에 그린 그림이다.
이 두 작품은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을 각기 다른 색조, 즉 전자는 난색 위주로 후자는 한색 위주로 처리하여 같은 대상이라도 시점에 따라 감흥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짐작된다.
즉 전자의 붓 터치는 부드럽고 차분하여 관조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해 후자의 그것은 광포(狂暴)할 정도로 대담하게 처리돼 있어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에 충실하려고 한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김경옥의 이러한 자세는 향후 화풍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대상에 충실한 묘사의 자세에서 마음에 일렁이는 감정을 더욱 솔직하게 표현하는 표현주의적인(그러나 이 말이 반드시 서구에서 발원한 어떤 유파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태도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구상적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표현하는 문제야말로 화가에게 부여된 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다음에 전개될 김경옥의 작업이 기대되는 바이다
인사동 갤러리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