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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치른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라나 후발 개도국을 여행할 때는, 여성들이 정말로 고생을 하는 것을 느낀다. 베트남의 경우 남자들은 전쟁만 하고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행태가 아직 남아 있고, 후진국의 경우도 남자들은 빈둥거리거나 밖에서 하는 일만 하고 가사나 육아는 거의 전부를 여성이 전담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몇 해전 중국 장(좡)족이 거주하는 용승이라는 산악지역에 촬영을 간 적이 있다. 한족에 쫓겨 산간지대에 은거하면서 산을 개간하여 다락 논을 경작하는 지역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지나 산 기슭을 개간하고 화전민의 경우에도 3-4부 이하의 능선을 개간하여 농지를 조성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장족이 사는 용승은 산 허리뿐만이 아니라 산 정상까지 개간을 하여 논 농사를 짓고 있었다. 논의 폭이 1m 내외인 곳이 수두룩 할 정도로 좁은 계단 논을 전부 인력에 의존하여 경작하고 있었다. 첩첩 산중에 기계도 없이 그 많은 다락논을 개간하여 경작하는 것을 보니 경외감이 앞섰다. 장족의 피땀과 애환이 서린 곳이었다.
5월 하순의 현지 날씨는 25도 이상으로 몹시 더웠다. 사진 장비도 무겁고 경사진 산길이라 현지 장족 여인들을 포터로 고용하여 촬영을 하였다. 사진 배낭을 여자들에게 맡기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사치고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직접 휴대할려고 하였으나, 포터(전부 여자)를 이용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것이라 포터로 고용하였다.
우리 일행이 산비탈을 힘들게 다니면서 촬영할 동안 사진 장비를 메는 포터 여자들은 그들끼리 웃고 재잘거렸다. 남자들은 집을 고치고 마을의 길을 닦는 일을 하고 여자들이 가사나 돈벌이를 하고 있어 포터들은 전부 장족 아낙들의 몫이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 갸날픈 여자의 몸으로 더운 날씨에 한국 돈으로 일당 4-5천원 벌려고 포터를 하는 게 서글픈 일일텐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웃고 떠드는 것이었다. 돈과 행복은 반비례한다고 하더니.....
그런데 이 비경이 유지될려면 계속 경작을 해야 하는데 현지인들은 관광 가이드와 포터 일이 수입이 좋아 농사를 짓지 않아 휴경지가 늘어나 안타까웠다. 그들의 힘든 노동을 생각하면 경작을 포기하고 관광 가이드를 하거나 도시에 나가 공장 일을 하는게 수입이 좋겠지만, 그럴 경우 경작을 포기한 농경지는 논두렁이 허물어지고 산사태가 나서 번듯한 농경지가 흉물스러워져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관광객은 다락논 구경을 오는데, 현지인은 농사보다 수입이 좋은 가이드나 토산품 판매로 경작을 하지 않아 다락 논이 형태를 잃어가고 있어 아쉬웠다. 아마 십수년이 지나면 경작을 포기하는 휴경지가 많아 관광지로서의 효용을 잃을 것이다. 외지 관광객을 위해 그들더러 그 힘들디 힘든 경작을 강권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일주일간 돌아다녀도 극히 일부만 돌아볼 수 있는 그 넓고 많은 아름다운 다락 논을 잃는 것도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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