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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서 출렁이는 암릉 장관
진도 동석산
진도 동석산(219m)은 전남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소재한 나지막한 산이다. 동석산은 그 산의 우뚝 솟은 암봉인 종성바위에 북풍이 스치면 종소리가 난다 해서 종을 짓는 구리(銅)자를 이름으로 삼았다. 신라의 승려가 중국을 다녀와서 하동 쌍계사로 탑을 세우러 가다 잠깐 이곳에 머물렀는데 동석산 봉우리들이 일제히 종소리를 토해냈다고 전해지며, 그때부터 산 아래 골짜기는 종성골이 됐다. 동쪽 직벽 아래 1,000개의 종을 뜻하는 '천종사(千鐘寺)'가 있고, 남쪽 능선의 바위 아래에는 '종성교회'가 들어선 것도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다.
1976년 발간된 진도 군지(郡誌)에도 동석산은 이름 뿐 심지어 해발 높이조차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진도에서조차 그리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그만큼 동석산은 험준한 산세 때문에 최근까지도 '접근금지'의 위험한 산으로 알려져 왔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그 산을 오르기란 불가능하여 '오를 수 없는 산'으로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바위능선에 난간을 대거나 밧줄을 매고, 문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박아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다수 섬에 있는 산들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여성미를 띠고 있지만 진도의 산들은 크고작은 바위능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진도의 진산인 첨찰산을 비롯, 여귀산, 금골산 등이 모두 바위산이며, 특히 동석산은 날카롭고 우람한 암릉으로 남성미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동석산의 매력은 암릉산행의 짜릿함과 함께 능선에서 펼쳐지는 장쾌한 조망이다. 동석산과 석적막산의 능선을 따라가는 내내 어디에서든 고개만 들면 시원한 시야가 펼쳐진다. 들머리의 암릉에서는 봉암저수지와 간척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팽목항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천종사에서 올라와 닿는 중업바위와 종바위는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의 특급 명소로 동쪽으로는 산으로 둘러싸인 봉암저수지 뒤로 첩첩이 산자락의 능선과 남해의 푸른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다가오고, 남쪽으로는 물골을 끼고 있는 너른 간척지가 펼쳐진다. 대기가 청명한 날이면 여기서 완도, 보길도, 구자도, 추자도, 우이도는 물론이거니와 흑산도와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동석산 등산코스는 종성교회쪽에서 오르는 방법과, 천종사쪽에서 오르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릿지등반의 짜릿함을 맛보고싶을 경우에는 종성교회를 들머리로 삼는다. 이 코스는 로프에 매달려 거의 수직 벼랑으로 오르며 칼날 같은 능선을 줄타기 곡예를 하듯 건너야 하는 코스이다. 이 코스는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라 등산객들이 설치해놓은 로프를 철거하고 일반등산객들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진도 문화해설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평기씨(가치리 출신)의 말에 의하면, 어릴 적 이 코스를 오를 때 개를 데리고 올랐다고 한다. 개는 동물적 본능으로 쉬운 길을 잘 찾아오르기 때문이라 한다.
천종사 쪽에서 오르는 코스는 최근에 정비돼 비교적 순하다. 릿지등반에 익숙지 않다면 이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두 길은 천종사 위쪽에 솟아있는 중업바위부근에서 만나게 된다.
동석산에서 석적막산을 지나면 등산로는 큰애기봉을 지나 진도의 낙조 명소인 세방낙조 전망대로 내려간다. 오후 나절 산자락에 올라 낙조 무렵에 맞춰 세방낙조 전망대쪽으로 내려선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다. 낙조 무렵에 석적막산에서 내려서도록 시간을 맞춘다면 진도군이 이 산길에다 '천하 제일 등산로'라는 이름이 붙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일행은 천종사를 들머리로 택했다. 천종사길을 가다보면 좌측으로 릿지구간의 웅장한 암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암릉구간 코스를 보면, 산행 들머리는 산 남쪽 아랫동심 마을회관 앞으로, 이곳에서 산자락에 자리한 종성교회 방향으로 이어진 소로를 찾으면 된다. 마을회관에서 5분이면 작은 지능선에 닿게 되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다가 바위벽을 만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슬랩을 오른다. 동석산 암릉은 전문산악인이라면 칼날암릉 구간만 제외하면 굳이 등반장비 없이도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25m 이상의 보조자일과 슬링, 카라비나 등을 준비해야 한다. 경험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 반드시 장비를 갖추고 전문산악인과 함께하는 것이 안전하다.
제1봉에서 제5봉 사이 3 - 4곳에서 자일로 확보해야 하는 슬랩이 나온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크게 어렵지 않은 코스지만, 만약 실수라도 하면 추락할 수 있으니 반드시 확보 후 오르도록 한다. 제5봉 이후 나타나는 70m의 칼날암릉은 왼쪽으로 우회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구간을 등반하려면 볼트 설치장비를 갖추고 2피치로 끊어서 진행해야 한다. 볼트를 설치할 때도 표면이 잘게 부서지고 뜬 바위가 많은 암질을 고려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신경써야 한다. 제5봉의 칼날암릉을 지나면 제7봉 부근의 침니 구간 외에는 크게 문제될 곳은 없다.
아침 8시경 천종사에 도착, 좌측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천종사 뒤로 거대한 쌍봉 암릉이 보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들 암봉 이름이 분명하지가 않다. 현지 안내판에도 종성바위라는 이름은 있는데 위치가 애매하다. 이평기 문화해설사에 의하면, 천종사 바로 뒤에 있는 좌측암봉이 중업바위, 우측 더 높은 봉우리가 종바위(또는 종성바위)라고 한다. 두 암봉 사이는 철계단과 쇠줄 난간으로 이어져 있다.
들머리에는 일붕통일기원시비가 보이고 등산로 입구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암벽 아래 호젓한 목제계단을 오른다.
15분 쯤 오르면 철난간이 있는 능선에 이른다. 우측으로 미륵좌상이라고 쓰여진 방향표시판이 보인다. 20m 정도 난간을 따라가면 깎아지른 바위절벽에 움푹 들어간 공간이 나타난다. 전에는 미륵좌상을 모셨던 자리라고 하는 데 지금은 비어 있다.
능선 위로 오르면 정면으로 다시 웅장한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천종사 아래에서 올려다 본 쌍봉 중 우측 종바위(종성바위)이다. 종바위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서 있는 모습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중업바위 우측 끝에는 철난간으로 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 아래 봉암저수지가 아름답게 누워 있고 그 뒤로 산능선이 겹겹이 굽이쳐 출렁이고 있다.목제계단과 쇠줄난간에 따라 종바위를 오른다.
쇠줄난간길은 폭이 1m 정도 밖에 안되는 칼날능선이다.
쇠줄난간과 쇠고리를 잡고 한발한발 암릉을 기어오른다. 좁은 절벽길을 지나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바위길이 장관이다.
종바위(종성바위) 정상에 서면 사방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전방 칼날암릉 건너 동석산 정상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 봉암저수지, 좌측 뒤로 심동저수지도 보인다. 바위절벽 여기에는 부처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방 칼날암릉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지나온 칼날암릉과는 비교가 되지않는다. 이곳은 정식 암벽등반 장비를 갖춘 전문산악인이 아니면 건널 수 없는 곳이다. 심동마을 들판 뒤로 멀리 진도 앞바다도 시야에 들어온다.
동석산은 왼쪽 우회로를 통해 칼날암릉 끝 좌측능선으로 오른다. 로프 하강길에는 여러산악회에서 걸어놓은 리본들이 어지럽게 펄럭이고 있다. 동석산 정상이 가까워진다. 정상 오르는 능선 역시 좁은 암릉이다. 안전을 위해 로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드디어 동석산 정상 도착. 들머리에서부터 약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동석산은 해발 219m로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바위섬이라 육지에 위치한 1,000m 이상의 고산 못지않은 웅장함과 아기자기함이 살아있는 산이다. 마치 설악산 공룡능선을 오르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상에는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 주소와 함께 '동석산, 해발 219m'라고 쓰여진 표지석이 놓여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봉암저수지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저수지 뒤로 산 능선의 실루엣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잠시 쉰 후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용트림같이 굽이치는 바위능선을 탄다.
정상에서 10분 정도 가면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인지 우측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곳은 추락지역입니다. 위험하오니 우회하십시요'라고 쓰여진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우측은 바위절벽을 타는 위험지역. 자칫 발이 미끄러지면 큰 일 나는 절벽이다. 당연히 좌측이겠지 생각하고 왼쪽길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길이 보이지않는다. 다시 원위치로 올라와 우측 바위절벽을 탄다. 위험지역이라 필자가 먼저 선발대로 길을 찾는다.
꽤 험난한 암벽능선. 앞을 보니 암릉이 첩첩산중이다. 과연 이길이 맞을 까.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다시 돌아갈까 망설이고 있는 데 멀리 전방 봉우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산악회에서 단체산행을 온 모양인데 그들 역시 팀이 분산된 모양이다. 그들 중 대장인 듯한 젊은이가 필자가 서 있는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전혀 길이 없을 것 같은 위험지역인데 길이 보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상적인 코스는 좌측 우회길로 가야 한다. 우리들이 그 길을 찾지못한 것이다. 어쨋든 우측 릿지코스도 일반 등산객들이 오르기는 약간 위험하지만 길은 있었다. 다행이 필자는 암벽등반 경험이 있어 별 부담없이 이 코스를 타게 됐다.
험한 암릉을 지나 좌측 우회길을 따라가면 다시 능선에 오르게 되고 눈 앞에 우뚝 솟은 또 하나의 암봉을 만난다. 이평기 문화해설사는 이 봉우리가 석적막산(164m)이라고 알려준다. 앞서 가는 젊은 남자등산객은 자일 등 아무런 암벽장비도 없이 직접 바위봉우리를 오른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렇게 어려운 암벽은 아니지만 여자산우들과 동행이라 안전상 우회로를 탄다. 석적막산 오르는 길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석적막산 정상에 올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웅장한 바위능선이 정말 장관이다.
가학리 앞바다가 보이면서 이제 서서히 암릉이 완만해지기 시작한다. 좌측 발 아래 가학리 앞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이제부터 숲길이다. 오솔길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간다. 석적막산에서 약 50분 쯤 가면 헬기장을 만나고, 곧 이어 가학재 사거리에 이른다. 동석산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2.0km, 좌측 가학마을은 0.9km, 우측 가치마을은 1.0km, 큰애기봉까지는 아직도 1.2km 남았다. 천종사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예상보다는 많이 걸린 셈이다. 좌측으로 가학리 마을과 선착장도 보인다.
앞에 다시 높은 봉우리가 막아선다. 작은 애기봉인데 보기에는 꽤 높아 보인다. 바다조망을 즐기면서 작은애기봉을 오른다. 작은애기봉 정상에 서면 세방낙조 방향 진도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은 애기봉에서 10분 쯤 더 가면 세방낙조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세방마을까지는 1.0km. 큰애기봉은 120m 정도 직진으로 더 가야 한다.
드디어 큰애기봉 도착. 큰애기봉 정상에는 목제데크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 큰애기봉은 가치리 마을의 처녀와 총각선원에 얽힌 애절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총각선원을 사랑하게 된 순이라는 처녀는 이 봉우리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여 매일 산봉우리에 올랐으나 총각선원은 나타나지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동리에서는 순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런데 하루는 이웃마을 사냥꾼이 큰애기봉을 오르게 되었다. 순간 사냥꾼은 대경실색했다. 소복입은 처녀가 바위에 단정하게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왠 큰 애기여' 하고 사냥꾼이 처녀를 흔들자 그녀는 썩은 나무 밑둥처럼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큰애기봉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큰애기봉 전망대에 서면 다양한 모습의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양덕도(발가락섬), 그 뒤로 사자 모양의 광대섬도 보인다. 뒤로 손가락섬이라고도 부르는 주지도도 눈에 띤다. 우측으로는 가치리마을과 주위풍경도 펼쳐진다.
큰애기봉에서 한참 쉰 후 세방마을을 향해 하산한다. 울창한 숲길을 20여분 쯤 내려가면 포장임도를 만나고, 우측으로 임도를 타고 내려가면 세방마을에 이른다.
오후 1시 세방마을 도착. 여자산우들과 천천히 조망을 즐기면서 산행을 하고 중간에 길까지 잘못들어 우왕좌왕하다 보니 천종사 들머리에서 이곳 세방마을 날머리까지 5시간이나 걸렸다. 이평기 문화해설사는 보통걸음으로 산행시 3시간 반 정도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에 비해 필자 일행은 무려 1시간 반이나 더 걸린 셈이다.
세방마을에서 택시를 불러 진도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세방낙조 휴게소를 들러본다.
바다 위에 연꽃처럼 피어있는 섬, 섬들. 시간이 맞지않아 진도의 자랑인 세방낙조를 볼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 여러 해 전 필자는 이곳에서 해가 지는 석양 풍경을 감상한 적이 있었는 데 그 때의 감상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휴게소 한켠에는 김정화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김 시인은 1952년 생으로 1987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진도 둔전마을에 살고 있다. 필자와 함께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정화의 시 '그 섬에 가리'를 읽으면서 내 마음 역시 어느 이름 모를 섬을 향해 바다를 건너고 있다.(글,사진/임윤식)
바람 따라가듯
길 없어도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고
너에게 가리
일곱 빛깔 영롱한 별빛 아래
바다와 하늘이 몸을 섞으며
슬픔을 묻는 곳
그 섬에 가리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돌아온 길 돌아다보며
먼 하늘 한 자락 눈에 묻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 있는
남쪽 끝 그 섬으로
나는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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