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오늘에 관한 아름답고 서늘한 대유법
사진 한 가운데 둥그런 ‘구(球)’가 있다. 언뜻 보면 우주에서 촬영한 소행성 사진처럼 신비한 느낌이다. 어린왕자의 별처럼 작지만, 그러나 어딘지 불안하다. 주변을 에워 싼 구름의 음산함과 구 내부의 균열 등에 이끌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포클레인과 고층아파트, 안전제일 마크가 보이고, 쩍쩍 갈라진 염전 바닥과 붉은 염생식물, 매립된 쓰레기의 단층들이 보인다.
사진가 임상섭이 선보이는 사진 속 ‘구’의 정체는 인천 송도다.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땅위에 끊임없이 높은 건물을 쌓아올리고 있는 송도의 오늘을 지구 전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 지구 표면의 사물들은 모두가 인류 문명의 부산물 또는 개발의 상징들이다.
지구의 역사라는 장구한 시간의 줄기에서 보면 인류 문명의 역사는 극히 짧지만, 인간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억 년에 걸쳐 쌓인 지구의 비옥함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느라 지구를 황폐화시켰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땅을 파서 철을 캐고 금을 캐고, 철심을 박아 석유를 캐냈다. 인류 문명은 이처럼 땅을 파고 바다를 매우고 하늘을 찢어 그 비옥함의 크기를 넓혀온 것이다.” 작가는 지구가 더 이상 산과 들, 바다 같은 자연으로 대표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빌딩, 아스팔트, 공장이 지구를 대표한다. 인간의 문명이 지구를 대표하게 되었고, 지구 진화의 주체가 인간으로 옮아왔다.
임상섭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문명에 의해 46억년의 시간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지구의 오늘을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작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구 형태는 360도 회전촬영 후 파노라마 프로그램을 이용해 탄생시킨 것이다. 많은 사진 작업이 영종도의 개발지구와 폐염전 등에서 이루어졌는데, 인간에 의해 자연의 모습을 잃고 점차 기형적으로 진화해가는 그곳의 모습이 곧 지구 전체의 느낌을 형상화한다고 여긴 때문이다. 언어의 수사법에 비유하자면 사물의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대유법과 같은 사진이 임상섭의 <The Earth>다.
사진가의 상상력과 현대 사진의 다채로운 표현기법이 만나 탄생된 <The Earth>. 이 지구를 통해 오늘의 지구가 처한 현실과 지구의 시간들을 고찰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4월 23일부터 28일까지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땅,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땅의 역사는 대략 46억년 정도이다. 원시의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를 식히며 딱딱한 땅을 만들어내고 대기를 만들어 생명을 창조해 내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거대한 생명의 순환을 만들어냈으며 판게아의 땅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지구는 46억 년 전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변화하고 또 꿈틀대고 있다.
수억 년 진화의 시간 동안, 땅은 계속 변했고 그 땅 위에서 생명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빙하기가 오면 땅 위의 생명들은 멸종의 위기에 이르렀다가 다시 회생하였으며 그 안에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거치며 인간은 태어났다.
인류의 문명은 지구의 역사 안에서 수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수억 년에 걸쳐 쌓아온 지구의 비옥함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법을 쉽게 깨달았다.
땅을 파내어 철을 캐고 금을 캐었고 철심을 박아 석유를 캐내었다. 땅의 비옥함은 곧 문명의 비옥함이 되었고 결국 문명은 하늘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문명은 땅을 파고 바다를 매우고 하늘을 찢어 그 비옥함의 크기를 넓혀왔던 것이다. 찢겨진 하늘은 얼음을 녹이고 녹아버린 바다는 섬들을 삼키고 섬은 바다가 된다.
지구는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화의 주체가 지금 지구 스스로가 아니라 인간으로 옮겨진 데에서 문제가 있다. 겨우 만 년도 안 된 문명은 수억 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다. 딱딱한 땅거죽을 벗겨내고 끝도 없는 구멍을 파며 하늘을 찢어내고 있다.
난. 수억 년의 시간을 응축하며 땅을 파내고 뜯어내며, 하늘을 계속 찢어버린다면 결국 이 땅이, 이 지구가 우주의 쓰레기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임 상 섭 Lim Sang Sub
- 신구대학교 사진과
- 상명대학교 대학원
경력사항
- 사진학원에서 학생들 포트폴리오 지도 및 디지털 사진교육 경력 10년
- 부천대학교 및 한국폴리텍대학교 외 문화센터 등 다수 출강
- 현재 인천파란사진학원에서 학생지도 중
전시기간: 2013년 4월 23일(화) ~ 2013년 4월 28일(일)
장 소: 류가헌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 /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www.koreaarttv.com
한국사진방송 김한정 기자 (merica2@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