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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시인과 함께 하는 섬 여행(6)
-흑산도, 가거도, 만재도, 증도, 병풍도, 화도, 임자도
모처럼 시간을 쪼개 8박 9일 간 신안군 내 섬들을 돌아보고 왔다.
이번 섬여행은 특히 이생진 시인과 함께 했다. 이생진 시인(84)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섬 시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섬 중 유무인도를 합쳐 1,000개 이상을 방문한 분이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하늘에 있는 섬', '우이도로 가야지',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독도로 가는 길', '실미도, 꿩우는 소리' 등 섬에 관한 시집도 34개나 펴냈다. 이런 이유로 이생진 시인은 제주도 명예도민, 신안군 명예군민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하늘에 있는 섬'은 1997년에 펴낸 시집으로 바로 만재도에 관해 쓴 시집이다.
이생진 시인과는 2007년 한국시인협회 문학기행시 울릉도-독도에 함께 다녀왔고, 2년 전에도 신안군 우이도-도초도-비금도, 안좌도-팔금도-암태도-추포도-자은도-압해도 및 서해 무의도-실미도 등을 함께 돌아다닌 적이 있다. 2011년에는 ‘이생진 시인과 함께 떠나는 섬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월간 시사종합지 ‘오늘의 한국’ 에 5회에 걸쳐 섬여행기를 연재한 적도 있다.
이생진 시인은 만재도에 열번 이상 방문했는 데도 필자 일행이 만재도에 가자고 제안하니 또 기꺼이 함께 해주셨다. 이생진 시인의 호 역시 '만재'이다. 처음 만재도를 찾아왔을 때 만재도가 너무 좋아서 만재라는 호를 얻기도 했지만 '만재'는 대기만성의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 시인의 어머니께서 생전에 '너는 대기만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생진 시인은 '만재'라는 호를 좋아한다. 연세가 80대 중반인 데도 건강한 몸으로 지금도 우리들 젊은 사람들과 섬여행을 자주 함께 하고 있다.
이생진 시인은 시인이면서 화가이기도 하다. 섬에 가면 어디서나 화첩을 꺼내 즉석에서 스케치를 한다. 이생진 시인이 선착장이나 해안가에서 섬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이생진 시인은 섬을 낙원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살아서 낙원을 다니는 셈이라고 말한다. 또 스스로를 ‘물 위에 뜬 섬’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는 섬을 단순히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다. 스스로 섬임을 확인하고 섬의 참맛을 느끼러 가는 것 같다.
이번엔 8박9일 동안 흑산도-가거도-만재도-지도-송도-사옥도-증도-임자도-병풍도-화도 등 총 10개 유인도를 찾았다. 이중 병풍도는 증도에서 배로 15분 쯤 가는 섬으로 신추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 등 5개 섬이 노둣길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 섬까지 계산하면 무려 14개 섬을 돌아본 셈이다. 이생진 시인과는 흑산도-가거도-만재도까지 함께 하고 증도는 다른 동료시인과, 나머지 섬들은 혼자 다녔다.
흑산도, 가거도, 만재도, 증도, 임자도 등 큰 섬들은 섬 1개에 대개 1박 2일, 작은 섬들은 몇 개 섬을 당일치기로 돌아보는 식이다. 주마간산 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각 섬들을 대강은 돌아볼 수 있었다. 섬에 가서 푹 쉬면서 여유를 찾고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완전 강행군이 돼 버렸다.
흑산도는 이미 2006년 5월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가거도와 만재도는 오래전부터 꼭 가보고싶었던 섬인데 이제야 찾아가게 됐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배로 2시간, 7년 전 홍도 다녀오면서 잠시 머물렀는데 이번엔 1박 2일로 좀 더 자세히 돌아볼 수 있었다.
관광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진리당-12굽이길과 흑산도아가씨 노래비-상라산 정상(230m)-일주도로 준공 기념비-정약전 유배지-칠형제바위-최익현 유적지 등을 돌아봤다.
가거도는 목포에서 여객선 4시간, 만재도는 5시간이 걸리는 우리국토 최서남단 섬이다. 이들 두 섬은 이번 섬여행의 하일라이트였다. 거리로는 가거도가 가장 먼 섬이지만 배편은 가거도를 거쳐 만재도로 간다.
가거도는 여객선선착장이 위치한 대리마을(1구)과 항리마을(2구), 대풍리마을(3구) 등 3개 마을이 있다. 필자 일행은 이중 항리마을 민박집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항리마을은 섬등반도라고 부르는 용머리해안이 있는 곳이다. 앞에는 독실산 능선이 보이고 뒤로는 섬등반도 산책로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대리마을 선착장까지 민박집에서 트럭이 나온다. 가거도에는 섬등반도 이외에도 독실산 등산과 반주암 해벽, 백년등대 등이 볼 만하다.
필자는 섬에 가면 가능한 한 산에 오른다. 산 정상에 올라가봐야 그 섬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가거도에서는 독실산(639m)을 6시간 종주했고, 만재도에서도 마구산 및 앞산 정상을 올랐다. 독실산은 어느 정도 등산로가 정비돼 있었지만 만재도 산들은 사람들이 거의 오르지않아 마치 원시림을 새로 개척하는 기분이었다. 곳에 따라서는 허리까지 닿는 풀숲을 헤치면서 정상에 올랐다. 행여 뱀이라도 나올까봐 바짝 긴장하면서 올랐다. 섬 등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뱀이다. 섬에 있는 뱀은 거의 독사종류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발목에는 겨울 눈산행시 착용하는 스팻츠를 차고,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않아 스팻츠 속에는 신문지까지 둘렀다. 스틱으로 길 흔적을 덮은 풀섶을 이리저리 헤치며 올랐다.
산 정상에서 섬 전체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 어느 섬이든 섬 정상에 올라가 봐야 섬 모습이 제대로 내려다보인다. 가거도는 거대한 공룡이 꿈틀거리는 모양, 만재도는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은 지형이다.
만재도에서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주낚 손질하는 모습, 아침에 해변가에서 파래 말리는 모습 등 어촌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만재도 해변에서 우연히 해녀도 봤다. 카메라 망원렌즈의 줌을 당겨 섬 앞바다에서 물질하는 모습을 담았다. 동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만재도에는 아직도 5- 6명 정도의 해녀가 있다고 한다.
만재도에서 일단 목포로 돌아와 함평에서 일박 후 필자는 증도로 향했다. 함평에서는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가수 은희 씨 댁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 은희 씨의 남편이 이생진 시인의 제자라서 알게 됐다. 은희 씨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랑해’, ‘꽃반지 끼고’, ‘꿈길’ 등으로 197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국민가수이다. 은희 씨는 함평에서 몇 년 전 폐교된 초등학교를 인수, 이곳에 ‘민예학당’이라는 새 둥지를 틀고 천연염색과 우리의 전통옷인 ‘갈옷’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증도에서는 이틀동안 '모실길'이라고 부르는 섬둘레길 5코스 중 1코스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 2코스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길, 3코스 천년 해송숲길 등 세 개 코스를 약 8시간동안 걸어서 돌았다. 증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127m 밖에 되지않는 상정봉이다. 증도면사무소 뒤에 있는 야산으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낮은 봉우리이다. 오르내리는 데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곳에 오르면 한반도 모양의 해송숲 25만평과 우전해수욕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증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라서인지 대중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이 섬에서는 가능하면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권장한다. 섬 내에 택시가 두대 밖에 없어 택시를 부르기도 힘들다. 3코스 해송숲길을 걸은 후 우전해수욕장 주차장 옆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숙소로 돌아왔다.
3코스 4.6km의 해송숲 옆에는 우전해수욕장이 길게 뻗어 있다. 우전해변에 들어서면 특히 짚풀파라솔이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증도는 천년해송숲과 우전해변 이외에도 특히 단일천일염 염전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인 태평염전, 송원대 유물이 매장된 난파보물선 발굴해안, 짱둥어다리 등이 유명하다.
태평염전에는 소금박물관, 염생식물원, 소금동굴힐링센터 등도 있다. 염생식물원에는 함초, 띠꽃, 칠면초 등이 함께 자라고 있어 꽃밭처럼 아름답다. 소금박물관 앞 낙조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한 염전과 염생식물원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증도에서 가까운 병풍도는 증도 태평염전 앞 버지선착장에서 배로 15분 정도 간다. 병풍도에 가면 신추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 등이 노둣길로 이어진다. 이들 노둣길은 무려 18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노둣길이다. 노둣길은 원래 물이 빠졌을 때 섬과 섬을 이어주는 돌다리길이었는데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는 좁은 시멘트길로 되어 있다. 만조시에는 이 노둣길이 잠겨 섬과 섬이 다시 고립된다.
안내지도에는 병풍도가 작게 나와 있는 데 막상 가보니 이 섬 역시 제법 큰 섬이다. 병풍도에는 약 200가구, 신추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에는 약 50-60가구 정도가 산다고 한다. 병풍분교에는 학생이 3명, 소악분교에는 학생이 1명 뿐이지만 암튼 초등학교도 있다.
병풍도에도 제법 넓은 천일염전이 여기저기 보인다. 오후 4시경 병풍도에서 ‘판수리소금’이라는 이름으로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는 이홍성 대표(63)의 병풍염전을 찾아가 봤다. 대파질을 하고 있는 이홍성 대표 부부의 모습이 하얀 소금 만큼이나 순수하고 아름답다. 천일염 생산방식 최초로 스프링쿨러시스템을 도입, 2012년 대한민국 염전 컨테스트에서 친환경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화도 역시 증도에서 노둣길로 건너갈 수 있다. 화도는 만조시에 섬이 한송이 꽃봉오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화도 노둣길 좌우는 물이 빠졌을 때 약 4km의 끝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다. 이 갯벌은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20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이곳 화도에서 촬영되었다. 드라마 속 작은 집이 아직 남아 있다. 드라마 세트장 뒤 갯벌 건너 멀리 암태도와 자은도가 눈에 들어온다. 화도에는 증도면에서 가장 큰 새우양식장이 있다. 약 3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임자도는 지도 점암선착장에서 여객선으로 20여 분 정도 가야 한다. 점암선착장은 증도에서 증도대교-지도대교를 거쳐 지도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간다.
임자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대둔산((319m)이며 이 이외에도 불갑산, 삼각산, 벙산 등이 있다. 숙소를 대광해변 근처에 정하고 벙산을 올라가 봤다. 높이가 불과 139m 밖에 되지않는 낮은 산이지만 벙산에 오르면 길이 동서 12km, 간조시 폭 35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모래사장인 대광해수욕장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임자도에서는 대광해수욕장 이외에도 용난굴, 조선 문인화의 대가 조희룡 유적지, 전장포항 및 새우젓토굴 등이 유명하다. 대광해변 옆 튤립공원에서 매년 봄 열리는 튤립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임자도 역시 서울염전 등에서 천일염이 생산된다. 임자도에서는 특히 새우젓이 유명하다. 전국 새우젓 어획고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새우는 모래가 많은 곳에 서식하고 알을 낳는 데 임자도 부근에는 바닷 속에 모래가 많아 자연히 새우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임자도 북쪽 맨 끝 동네 전장포는 우리나라 새우젓 산지의 대명사이다.
섬여행에서 돌아온지 며칠 밖에 안됐는데 또 섬이 그리워진다. 늦깎이로 섬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것 같다. 앞으로도 틈 날 때 마다 못가본 섬들을 계속 돌아보고싶다. 뭔가 그리울 때는 섬에 가고싶다. 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나 역시 섬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다.(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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