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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는 말이 있다.
우연을 전제로 한 말이지만, 그 우연이 우연으로 끝나지 않을 때 비로소 만남이란
말은 뜻밖의 뜻을 더해 보다 의미 있는 말로 깊어진다.
만남은 일종의 혜택이다.
이 무미한 삶에 사는 맛을 보태 주고, 허무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눈뜨게 해주는 것.
물론 만남이 불운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꽃을 활짝 피운 부부가 있는가 하면, 만나지 않았던 게 오히려
행운 이였을 그런 부부도 가끔 본다.
궁합이라는 게 결국 그런 걸 미리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검증 절차일 텐데, 요즘은
흔히들 그런 검증 없이 혼인을 하다 보니 혼인 하자마자 이혼하는 젊은 쌍들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만남의 중요함은 사진에서 더 실감돤다.
만나지 못하면 찍지를 못하니까, 사진을 “발견의 예술” 이라고 하는 것이 그 까닭이다.
천재적인 사진가와 천재적인 화가가 있다고 하자. 아무리 천재적인 사진가라도 천재적인
화가만큼 그 천재성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그 두 사람이 한국적 미인을 형상화한다고 하자, 화가는 한국적 미인을 자기 이미지에
따라 그리면 되지만, 사진가는 그런 미인을 직접 만나지 못하면 단 한 컷도 찍을 수가 없다.
몇해 전에 사진집을 한권 샀다.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사진집이였다.
“킬링필드”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폴 포트정권 아래의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무참한 학살
사건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하게 된 사건이다.
이 책은 당시 살해된 사람들을 찍은 사진집이다. 물론, 연출한 것도 아니고, 영화의 스틸은
더욱 아니다. 잡혀 와 불안과 공포로 일그러진 사람들을 실제로 찍은 사진들이다.
끌려올 당시의 복장 그대로, 지하실쯤 되는지, 삭막한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찍혔는데,
상처 있는 필름을 그대로 인화해서 그 현장감이 한층 더 생생하였다.
찍은 솜씨가 세련되지 않아 오히려 현장감을 더 강하게 해주고 있다. 자기 죽음을
예감하고 체념한 듯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포에 질린 사람도 있고, 무심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간혹 이상한 웃음을 머금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 직전의 그 최후의
상황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 때문에 사람의 눈을 잡아 묶어 놓는 힘이 대단했다.
사진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는 않았지만, 모르긴 해도, 경찰이나 정보 당국의 전속
“사진사”가 찍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에서의 대상의 중요성을 이 사진집이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대상을 만났으니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진가라도 이러한 대상을 만나지
못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대상이 말을 하지 않는 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게
사진가일 것이다. 일단 대상이 입을 열면 사진가와 별 관계없이 말을 잘하는 것, 이것이 사진가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진가란 무엇인가? 사진가란 어떤 존재인가.
작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대상이 말하기만 기다리는 그런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진가도 밝혀지지 않고, 더구나 소위 유명 작가에 의한 “작품”도 아닌,
단순한 사진이 이렇게 사람의 눈을 잡아끌고 마음을 사로잡는 데 비해, 별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유명 작가의 “작품”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작품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사람을 일컬어 사진가라 하는 말인가?
그보다 앞서 사진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고개가 갸웃해짐은 어찌할 수가 없다.
도대체 사진가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