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랗게 취하다
충북 괴산 양곡저수지의 은행나무길
가을이 노랗게 취해 흐느적거리고 있다. 고흐가 압센트를 마시며 미쳐가던 그집처럼 물가 가로수길이 온통 샛노랗다.
나도 황시증에 걸렸는가? 압생트 술병에서 떠나지않던 고흐의 눈같이 필자의 눈동자 역시 노랗게 물들어 있다.
양곡저수지는 충북 괴산군 문광면 양곡1리에 위치해 있다. 선유동계곡과 산막이길 트레킹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은행나무길. 마을진입로 400m 양쪽이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짙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이곳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양곡 1리 주민들이 마을 입구가 허전하다며 1975년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2m 높이의 은행나무 100여 그루를 심은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주변의 가을산을 배경으로 물버드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운 양곡저수지의 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하다. 물 속에 비친 은행나무길 역시 저수지에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양곡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지난 해 10월 한국사진작가협2회 괴산지부가 제4회 아름다운 괴산 전국사진공모전에서 은행나무와 저수지의 풍경을 잘 표현한 '문광저수지의 가을'을 최고상인 금상작으로 선정하면서 사진작가들 사이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괴산군은 이곳 은행나무길을 정비, 기존 400m길을 3km로 연장하여 '황금빛 에코로드길'을 조성할 계획이라 한다. 저수지를 한바퀴 도는 이길에는 태양광 정원, 친환경 대체에너지 체험시설, 풍력 가로등 등도 들어설 예정이다.
제방 아래에는 유색 벼를 심어 논 그림을 연출시킬 아이디어도 있는 것 같다. 또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인 미선나무 군락지인 칠성면 태성리-쌍곡리 2.9km에는 2017년까지 '미선나무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도 조성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괴산군에는 산막이옛길, 충청도 양반길에 이어 또 다른 명품길이 추가되는 셈이다. 필자가 산책길을 걷는 동안 마침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은행나무길로 들어선다. 꿈을 향해 뛰는 어린이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노란 세상을 보니 갑자기 이생진 시인의 고흐에 관한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돈 매클린의 '빈센트'를 들으며 고흐가 즐기던 압생트도 마시고 싶다.
나는 지금 고흐를 할래요
아를에 있는 '노란 집'에 가서
노란 목도리를 하고
노란 해바라기를 그리며
술을 마실래요
그러다가 밤이 되면 노랗게 취한
별이 되고 싶어요
이생진 시<고흐를 위한 퍼포먼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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