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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율도국의 실제 모델섬 ‘위도(蝟島)’를 가다
고슴도치 모양의 섬 경관 환상적
우리는 본디 섬이다.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섬. 그래서 우린 외롭다. 또 뭔가를 늘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을 찾아 다시 섬으로 간다. 이번에는 전남 부안 앞바다에 위치한 고슴도치섬 ‘위도’를 찾아가 본다.
위도는 전남 부안 격포항으로부터 14km 서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위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 ‘율도국’의 실제모델로 알려질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1999년 위도 관광순환도로가 개설되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유명했던 조기어장인 칠산어장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70년대초까지만 해도 해마다 봄가을 조기떼가 몰려들 때면 전국 각지에서 고깃배와 장삿꾼들이 찾아와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항엔 파시(波市)가 들어섰다. 이 ‘위도 파시’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서해 3대 파시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영광굴비의 명성은 이 무렵에 얻었는데 본래는 부안군 소속이었던 위도가 한 때(1896년) 전라남도 영광군에 소속되었다가 1963년 다시 부안군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빼어난 비경이 많은 위도는 진리, 대리, 식도, 치도, 정금도, 거륜도, 상․하왕등도 등 8개리로 이루어진 도서면(面)으로 부안군에서 가장 큰 섬이다.
격포항에서 08:00, 09:30, 11:40, 13:00, 14:30, 16:20 등 하루 6회 여객선이 뜬다(주말,공휴일 및 여름성수기에는 8회 운항). 필자 일행은 11:40 파장금카훼리호를 타고 위도를 향했다. 파장금카훼리호는 정원 350명에 차량 48대를 실을 수 있는 큰 여객선이다. 약 50분 정도 걸려 위도 파장금항에 도착. 벌금리에 있는 ‘위도이야기’ 펜션에 여장을 풀었다. 이번 여행 역시 섬 관련 시집을 34권이나 펴낸 우리나라의 대표적 섬시인인 이생진 시인을 비롯, 섬문화 연구 전문가인 전남발전연구원 김준 박사, 가수 현승엽, 섬으로 카페 운영자 이승희 및 카페 회원들이 다수 함께 했다.
펜션에 짐을 푼 후 일행은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등산, 다른 팀은 해안도로를 둘러보기로 했다. 필자는 섬에 가면 가능한 한 먼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다. 산 정상에 올라가 봐야 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도의 등산코스는 통상 4개코스로 나눠볼 수 있다. 1코스는 위령탑-망월봉-도제봉-진말고개-위도해수욕장 코스(5km), 2코스는 위도해수욕장-진말고개-치도-망금봉-전막 코스(7km), 3코스는 전막-내원암-망금봉-도제봉-망월봉-위령탑 코스(6km), 4코스는 시름-파장봉-방파제 코스(2km). 이들 전체를 잇는 종주코스는 여객선터미널-파장봉-망월봉-도제봉-치도-망금봉-전막 코스로 총 14km, 6시간이 소요된다.이중 필자가 택한 코스는 제 1코스. 여객선터미널과 진리 중간쯤에 위치한 위령탑에서 시작된다.
위도는 아름다운 섬으로도 유명하지만 21년 전 여객선 대형 침몰사고로도 잘 알려진 섬이다. 1993년 10월 10일 10시 10분 경, 주민 및 주말 낚시객 등 여행객 362명을 실은 서해훼리호(110톤)가 파고 3-4m 기상 악조건 속 무리한 운항과 정원 초과 등 원인으로 위도면 해상 임수도 부근에서 침몰했다. 침몰지점은 위도에서 불과 3km 떨어진 지점이다. 당시 승선인원 362명 중 생존자는 70명, 무려 292명이 사망했다. 이와 같은 끔찍한 사고로 희생된 영령들의 고혼을 위로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망월봉 아래 해안가 언덕에는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위령탑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에게 묵념으로 추모한 후 망월봉을 오른다. 위령탑 바로 앞 등산로 입구에는 초등자도 알 수 있도록 등산안내도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들머리에서 망월봉까지는 800m. 등산로가 완만해서 오르기에 부담이 없다. 고도를 높일수록 시야가 넓게 트이면서 위도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파장금항은 물론, 위도의 등뼈를 이루는 산능선 줄기, 면소재지인 진리와 벌금항, 정금도도 내려다보이고, 정금도 뒤로 식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림같은 전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위도가 아름답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막상 산 위에서 바라보니 경탄할 만한 절경이다. 고슴도치의 발처럼 해안선이 들쑥날쑥하여 섬 뒤에 또 다른 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필자가 섬 여행기를 쓸 때 마다 자주 언급해온 얘기지만 섬에 와서 산에 올라가보지않고는 결코 섬의 외형상 진면모는 파악할 수 없다. 위도의 경우에도 평지 해안이나 마을 만 돌아다니다 보면 위도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섬 경관에 취하다 보니 금새 망월봉에 이른다. 망월봉의 높이는 해발 254m. 위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다. 높이는 야산 수준이지만 바다에서 바로 높이가 계산되기 때문에 산세가 제법 웅장하고 고도감도 있다. 천천히 올랐는데도 들머리에서 불과 34분 밖에 걸리지않았다. 정상에는 표지석과 함께 쉬면서 바다 전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정자가 세워져 있다. 망월봉 정상에서 잠시 섬 경관을 즐긴 후 도제봉을 향해 다시 발길을 옮긴다. 도제봉은 일단 진리마을 뒷길로 하산한 후 산과 산을 이어주는 개들넘교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망월봉에서 개들넘교까지는 400m. 거리는 짧지만 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하산로에는 안전산행을 위해 로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하산길 조망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진리 마을 뒤로 산능선과 봉우리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이고 좌측 먼 바다에는 형제섬이 보일듯 말듯 촛불처럼 반짝인다. 좌측 해안도로 역시 아름답다. 정상에서 20여분 쯤 내려가면 개들넘교에 이르고 다리를 건너면 다시 완만한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개들넘교에서 도제봉까지는 1.1km. 완만한 능선길로 약 30분 남짓 걸린다. 좌측 발 아래로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가 사이좋게 마주보고 앉아 있다. 딴치도에는 작은 모래사장도 보인다. 개인정원같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도제봉(152m) 정상에 서면 정면으로 진리마을과 벌금항, 정금도, 식도가 연이어 내려다 보인다. 도제봉에서 400m 내려가면 치도교에 이르고, 다시 위도해수욕장까지는 약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위령탑-망월봉-도제봉-위도해수욕장에 이르는 1코스 산행에 약 2시간 1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위도해수욕장은 어항처럼 둥근 해안으로 부안군 도서지역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1km에 달하는 고운 모래사장과 함께 멀리 왕등도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경관 역시 매우 아름답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100m를 걸어들어가도 물이 사람 가슴 정도 밖에 차지않는다고 한다.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일몰 풍경도 일품이다.
등산을 마치고 이생진 시인 등과 함께 벌금항 및 정금도를 돌아봤다. 정금도는 원래는 별개의 섬이었으나 정금교가 건설됨에 따라 지금은 벌금항에서 걸어건너갈 수 있는 섬이 됐다. 정금교를 건너 낮은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보인다. 고갯마루에는 ‘자동차 진입금지(길 없음)’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금도 역시 아름다운 섬이다. 해안가에 서면 바로 눈 앞 물 건너에 진리마을과 파장금항이 보이고, 섬 뒤로 큰 바다 건너 식도가 그림처럼 막아서 있다. 마을 앞 바다에는 소나무 여러그루가 서 있는 조그만 바위섬도 보인다. 한 폭의 동양화같은 마을풍경이다.
이생진 시인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뭔가를 스케치하고 계신다. 이생진 시인은 시인이면서 화가이기도 하다. 섬에 오면 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신다.
다음날 아침, 필자 일행은 섬 주변 관광을 위해 도내에서 유일한 공영버스를 탔다. 공영버스 기사는 백은기 씨. 이 분은 구수한 유머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위도의 명물이다. 수려한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일주도로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위도의 비경을 두루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이다. 위도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악어바위 해안, 물개바위 해안, 깊은금해수욕장, 거륜도 조망해안, 띠뱃놀이전수관이 있는 대리마을 등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다.
위도 띠뱃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다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매년 초에 행하는 마을굿이다. 원래의 이름은 원당제(願堂祭)인데 용왕굿 행사 때 띠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워 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 부른다.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큰 구실을 한 이 놀이는 1978년 전국 민속에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치도리 앞 바다에는 도제봉 등산시 내려다 보였던 딴치도가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큰딴치도와 작은 딴치도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는 데 썰물 때는 치도리와 두 섬 사이에 ‘모세의 기적’ 처럼 걸어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위도여정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는 위도관아(蝟島官衙). 진리마을에 남아있는 위도관아는 도서지방에 세워졌던 관아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때 위도진의 첨사가 근무하던 청사이다. 조선 숙종 8년(1682)에 설치한 위도진은 전라우수영에 속하였고, 종 3품의 첨사 아래 53명의 수군이 주둔하였다고 한다. 당시 위도진이 관할한 지역은 고군산, 우포, 법성포, 금오포 등으로 진의 규모가 제법 큰 편이었다.
이제 홍길동이 꿈꾸던 유토피아 섬, 그 섬 위도를 떠날 시간이다. 11:40발 대원카훼리호를 탄다. 여객선 갑판 위에서 멀어져 가는 위도를 되돌아본다. 1박2일로는 너무 짧은 여정이다. 시간여유 만 더 있다면 총 14km, 6시간의 종주산행도 완주하고 싶고, 딴딸래섬, 딴치도, 거륜도, 식도, 왕등도까지 다녀오고 싶다. 왕등도까지 가고싶다면 적어도 3박4일 정도는 있어야 대강이라도 돌아볼 수 있는 일정이다.
칠산어장의 중심지인 위도 근해는 오염없는 청정바다로 사계절 낚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위도 본섬의 서쪽 해안가 대부분과 식도, 딴딸래섬, 왕등도를 비롯한 대부분이 낚시 포인트이다. 이중 특히 낚시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왕등도는 위도에서 23km, 40-50분 거리 서해안 맨 끝섬으로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로 나뉘는데 두 섬 곳곳에는 비경이 빼어나고 섬 전체가 낚시포인트라 할 수 있는 보물섬이다. 봄부터 6월말까지는 우럭, 놀래미, 감성돔, 7월 중순부터 가을까지는 농어가 잘 잡힌다.
위도 파장금항에서 10분 쯤 왔을까? 우측으로 임수도가 보인다. 바로 저 섬 앞에서 21년 전 서해훼리호가 침몰, 무려 292명의 아까운 생명을 잠재웠다. 통한의 바다를 지난다. 파도가 거세어서인지 임수도 해역이 바로 심청전의 인당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위도 근해에서 발굴된 문인석상, 백제시대 석실분과 고려시대의 유물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문인석상은 사람 대신에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현재도 위도의 몇 가정에 보관되어 있다. 문인상의 재료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않는 돌이라고 한다.(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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