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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이 육 사 -
짙 푸른 잎새가 싱그러운 계절 7월이다. 더위에 지친 요즘 도심을 떠나 먼 산사의 계곡을 찾거나 아니면 해수욕장을 찾아 젊음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바다 보다는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와 산사에 오르면 녹음으로 인해 마음도 더욱 개운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한편 시원하게 탁 트인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해안 도로를 따라 마음껏 달려보고 싶기도 하고, 굵은 모래알이 유난히 깨끗한 동해안 바닷가 한적한 곳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7월이 되면 언제나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이다.「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로 시작하여,「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으로 끝나는 시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듯이 청소년기에는 줄줄 외며 읊조리던 이 시의 감흥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너무나 달리 느껴지고 있다. 지금 와서 이 시를 다시 읽어도 청년시절에 감명 받았던 그 흥은 도무지 일어나질 않는다. 그만큼 순수성의 상실과 감성에 때가 끼어서일까, 아니면 시를 받아들이려는 정서가 이미 메말라 버려서일까?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 본다.
청포도가 알알이 전설처럼 익어 가는 시골의 정취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인심도 그러하지만 포도나무도 옛날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내 고장 7월은 이미 청포도가 익지 않는다. 마을의 전설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지도 않고, 먼데 하늘이 들어와 박히지도 않는다. 철저한 계산과 계획 속에 살아가는 세태다. 공해에 찌든 산성비에다 황폐한 토양은 이 마을의 전설마저 삼켜버린 지 오래이고 오직 경제적인 수확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 보니. 비닐하우스에서 제철보다 앞서 수확하지 않으면 제 값도 못 받는 포도가 되어 버렸다. 시 구절 속에 또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올 손님이 없을뿐더러 가망도 없다. 이미 빳빳해질 대로 빳빳해진 우리의 정신 세계에 넉넉한 정감의 감동으로 촉촉이 적셔 줄 손님은 언제나 찾아올 것인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리라. 철저한 계산과 계획 속에서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 되고, 심하게는 온갖 음모와 흉계 속에서 갖가지 비리와 부조화에 멍든 이 시대의 아픔을 안고서, 과연 전설이 깃들 수 있을 것이며, 청포 입은 귀한 손님이 찾아올 수 있을런지? 현실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리고 오늘이 불가능이라도 내일의 희망까지 버릴 수야 있겠는가?
이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손님을 반가이 맞이할 청포도를 심어 보자.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가꾸어도 보자.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작은 것에서부터 큰 변화를 찾으면, 우리 모두의 새로운 손님은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겠는가? 이제 지루하던 장마가 그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여름이면 부산을 찾는 외지의 손님도 많다.
자기 고장을 아끼는 섬세함이 묻어 있는 친절과 부산 사람의 독특한 억양 때문에 무뚝뚝한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속마음엔 깊은 정이 흐르는 것과 부산을 찾은 손님들에게 고향의 정감을 촉촉이 줄수 있는 마음의 여유라도 가져보자...
2010.08.03 배현기(법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