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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최동호 시 <수원 남문 언덕> 등 6개국어 시낭독회 열어
2014년 교보문고 낭독 공감 시낭독회
4월 24일 오후 5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아카데미에서는 이색적인 시 낭독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중 한 분인 최동호 시인의 번역시 7편을 외국인들이 직접 자국어로 낭독하는 자리였다. 이번 행사는 교보문고와 대산재단이 주최하고 한국문예창작학회가 주관한 것으로, 최동호 시인의 새로운 시집 <수원 남문 언덕> 사인회를 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경수 시인(중앙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는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 수습기간인 점을 감안,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진도사건 희생자와 가족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최동호 교수는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다.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 후, 경남대, 경희대, 고려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및 경남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황사바람>(1976), <아침책상>(1988), <딱다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1995), <공놀이하는 달마>(2002), <불꽃 비단벌레>(2009), <얼음얼굴>(2011) 등이 있다. 현대불교문학상, 고산 윤선도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의 시부문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성호 평론가(한양대 교수)는 최동호 시인의 시집 <수원 남문 언덕>에 대해, “시인이 그간 심혈을 기울여 담론해 왔던 ‘극서정’이라는 양식적 탐색의지를 일관되고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궁구 의지와 함께, 오랫동안 자신의 생 안에서 출렁이던 고향에 대한 부단한 애착과 회귀 의지를 선보이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최동호 시학은 초월과 암시를 주음(主音)으로 하면서 생략과 미학을 구현해나가는 단시적 완결성을 서정시의 귀중한 창작 방법이자 가장 중요한 미적 권역으로 삼아가고 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의미 과잉을 경계하는 이러한 작법이 현대인의 잃어버린 시적 아우라를 되부르는 강력한 방법으로 원용될 때, 완성도 높은 장인정신이 요청되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장인정신의 극점에 ‘극서정시’ 논의가 따라붙게 되었고, 최동호 시인은 ‘극서정’이라는 방법적 명명을 통해 ‘속도를 초월하는 순간의 시학’을 구상하고 실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성호 평론가의 최동호 시에 관한 평 다음으로, 영어, 불어, 러시아어, 이태리어, 중국어, 한국어 등 6개국어로 진행된 시낭독회는 최동호 시 <반구대향유고래의 사랑노래>(영어, 앤드류,서울대 박사과정), <얼음얼굴>(불어, 김구슬, 협성대 교수), <노인과 수평선>(러시아어, 피사레바, 고리키 문학대학 박사), <인간의 자서전(이태리어, 스테파노, 경희대 박사과정), <수원 남문 언덕>(중국어, 왕녕, 고려대 대학원), <말린 혀>(한국어,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 <불꽃비단벌레>(한국어, 황명강, 인터넷 경주방송 대표>, <소년의 꿈>(한국어, 이혜미, 시인) 등으로 이어져 배움아카데미 행사 룸을 가득 채운 열기 속에서 마치 국제행사를 방불케 했다. 이중 특히 김구슬 협성대 교수가 <만물조응>과 <얼음얼굴>을 유창한 불어로 낭독, 청중들에게 마치 샹송을 듣는 듯한 감미로운 감동을 뿌려주었으며, 고려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중국인여학생 왕녕은 최동호 시인의 시집제목이면서 연시이기도 한 <수원 남문 언덕>을 냉냉하고 정제된 중국어 특유의 운률로 낭독하여 큰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한 사람의 시작품들을 이처럼 다양한 국제적 언어로 번역되고 한 자리에서 낭독되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드믄 일이다.
권혁웅 시인(한양여대 교수)은 “번역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거치면서도 여러나라 언어로 낭독된 시들이 이처럼 아름답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최동호 시인의 시가 지닌 음악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하면서, “시란 아주 적은 말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장르이며, ‘말하지못함’을 통해서 말하기도 한다. 여객선 침몰사고로 전국민들이 엄청난 슬픔에 잠겨 있는 이때 우리는 입이 있는데도 어떻게 이 슬픔을 말할 수 있을지를 잘 알지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동호 시인의 시 제목 <말린 혀>가 그 느낌을 어느 정도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말린 혀> 전문을 낭독했다.
방 속 어둠은 소리 없이 가라앉아 있는데
작은 먼지의 먼지들
입 속으로 쓸려 들어가
슬픔을 꺼내 말할 수 없는 말린 혀
문 밖 사람에게 들리지않는 울음소리
가늘게 떨다 멈추는
마지막 실오라기
하나도 꺼내 말할 수 없는 말린 혀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동굴
입 속 가득
어둠을 잡아먹어 부풀어 오른 먼지
가라앉은 꼭두새벽
급냉실 물고기 작은 지느러미
꼬리조차 얼어붙은
입 속 먼지의 세상
건조한 목젖 첩첩이 쌓인 말린 혀의 침묵
최동호 시인은 “요즘 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난해한 시들이 범람하는 경향이 있다. 시는 무엇보다도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한 대학교수인 제 시가 너무 쉽게 보인다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 겉으로 나타난 모양은 아주 쉬워 보이지만 그 밑그림은 수십번 고쳐 쓴 것이고, 나름대로 깊은 사색과 성찰에서 나온 산물이다. 좋은 시란 외워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단번에 전달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T.S.엘리옷도 ‘시는 이해되기 전에 전달되어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즉석 시론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약 1시간 40분에 걸친 낭독회는 문정희 시인(동국대 석좌교수)의 최동호 시인에 대한 사적 인연과 축하의 말로 마무리됐다. 문정희 시인은 “시란 질투가 몹시 심한 애첩같은 존재여서 너무 시에 매달리면 때론 차버리기도 하고, 살짝 먼 곳에 있다 돌아오면 가슴을 잘 열어주지않는다”면서, “유명 대학교수, 문학평론가이면서도 온몸으로 ‘시사랑’을 해온 최동호 시인이 고향으로 돌아오듯 이번에 진정성있는 시집을 또 다시 상재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오늘 저는 머리가 하얀 소년을 다시 만나 기쁘다. 수원 남문에 가면 그 까만 교복을 입은 소년이 뭔가 수줍게 저를 반겨줄 것 같은 감회에 젖는다”고 말했다.(글/사진 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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