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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만 초대전 ‘숲’ 인사동 갤러리 나우
2014년 06월 25일(수)- 07월 01일(화)
인사동 갤러리 나우
삶과 죽음의 묵상을 위하여
우리는 가끔 두 눈을 의심하게 하는 달인들의 놀라운 장면을 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텔레비전에서 보는 젓가락 달인, 다리미 달인, 돈 세는 달인, 상품 포장 달인, 세차 달인, 가스통 운반 달인, 병뚜껑 따는 달인 등 별의별 달인이 다 있다. 실제 이들은 촬영을 위해 미리 준비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달인의 묘기는 물론 훈련을 통해 가능하지만 대부분 삶의 현장에서 거의 직감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반사작용이다. 이때의 반사작용은 요행과 우연을 넘어 정상적인 논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나 반박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의 신호 signe 이다.
그런데 달인의 경지 즉 달인의 숙달된 행동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세 가지 특별한 것이 있는데 우선 우리가 보기에 반복으로 숙달된 기계적인 동작이 거의 무의식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감각 즉 의식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일 뿐이다. 그 증거로 달인의 동작은 오랫동안 반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작을 시작하기 전 매번 긴장된 상황에서 언제나 똑 같은 초심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코 무의식의 기계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초감각적인 현상인데 다만 그들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두 번째 특별한 것으로 그들의 목적은 언뜻 보기에 남에게 보여주고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남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바로 자신 스스로의 자기만족이다. 그 증거로 그들은 동작 후 누가 시키지도 않은데도 매번 좌표를 탐지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그 궁극은 바로 저 산에 위에 있는 무지개처럼 단순히 목적형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달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스스로 정해 놓은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의 끝은 소위 경지(境地)라고 하는 빈 공간의 무(無)의 세계라고 한다.
끝으로 달인들의 놀라운 동작은 세속의 눈으로 볼 때 더 이상 연습이 필요 없는 완전한 묘기로 보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본 자신들의 동작은 언제나 완전함을 지향하는 진행형으로 나타난다. 원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호환되는 되는 상대적인 것이다. 이는 곧 정형이 곧 비정형의 원형이고 비정형은 또한 정형으로 진화하는 경우와 유사하고 보편성은 특이성과 구별되고 또한 그 특이성은 보편성을 내포하는 경우와 같다. 달인들의 눈에 완전함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와 진화과정에서 드러나는 한 단계일 뿐 결코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곧 달인들의 놀라운 동작에서 완벽한 경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 특히 사진가들이 어떤 있음직한 경지를 직감하고 촬영하는 행위 그 자체는 바로 달인의 동작이다. 다만 실행 대상이 다를 뿐이다. 여기 작가 이종만의 숲 속 나무 사진들은 우리가 흔히 타인에게 보여주는 장면으로서 사진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달인의 경지가 암시하는 진행과정을 그대로 주파하면서 직감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반사작용이다. 이때의 반사작용은 달인이 보여주는 놀라운 장면처럼 삶과 죽음의 운명을 넘어 결코 언어학적 도구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반박할 수 없는 또 다른 경지의 신호 signe 로 이해된다.
언뜻 보기에 작가의 나무 사진들은 흑백의 놀라운 계조와 강한 콘트라스트 그리고 어둠으로부터 모든 물상을 깨우는 숲 속 아침의 신비한 여운으로 우리로 하여금 단숨에 전통적인 동양화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한다. 특히 근경의 거대한 나무와 안개 효과로 펼쳐지는 배경, 그 사이로 희미하게 나타나는 숲 속 풍경, 주위를 흐리게 하면서 대상을 앞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강조 효과 게다가 거의 평면으로 축소된 화면 구성은 전통 한국화의 담백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제 관객의 공간적인 믿음이 아닌 시각적인 효과나 착시일 뿐이며 작가의 촬영 의도 또한 결코 그림을 위한 시각적 효과에 있지 않을 것이다.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는 산수화의 안개 효과와 서양화의 흐린 공간으로 위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안개 자욱한 장소만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숲과 나무를 거의 중복 구도로 촬영했다. 촬영된 장소는 지리적인 어떠한 특징도 상징적인 의미도 없는 아무 장소가 되며 촬영된 나무들 역시 누구나 산과 계곡에 가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작가의 나무 사진들은 존재의 확인성 attestation 이외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오히려 주제의 부재와 테마의 궁핍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무 장소와 익명의 나무들은 적어도 작가에게 더 이상 생소한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삶의 일부로서 함께한 기억의 흔적들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결코 응시자를 편하게 하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하는 답답한 정방형의 사이즈와 숲 속 고요함과 정적을 찌르는 부동의 진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가 있을 비상 탈출구를 찾게 만들고 갑자기 장면의 비현실적인 환상으로부터 아우라 aura 와 같은 또 다른 심리적 동요를 야기한다. 게다가 장면에 숨겨 놓은 상황적인 이중성 예컨대 거대한 근경의 급진적 출현과 사라지는 원경의 점진적 소멸,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의 확인과 모호한 비현실적인 조짐, 생동하는 나무와 죽음의 고목 등은 응시자에게 결코 장면의 해석학적인 여지를 주지 않는다.
결국 작가의 사진에 설정된 숲 속 나무와 덩굴과 고목은 처음부터 작가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키워드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직감적인 은유로 나타난다. 또한 이것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과시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조짐을 암시하는 시각적인 지시 index 로 나타날 때 장면은 사진으로 위장된 시선의 무의식 vision inconscience 임과 동시에 거역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의 카이로스 kairos 가 된다. 끝없는 자기만족과 무모한 목표 그리고 불가능한 완벽을 지향하는 달인의 경지처럼 작가는 삶의 긴 여정에서 자연의 섭리로 귀결되는 삶의 원리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오로지 삶과 죽음을 위한 말없는 묵상(黙想)만 존재할 뿐이다.
이경률(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작가 노트
숲에서 듣다
오늘도 숲으로 간다.
내 사진 작업의 주제로 오랫동안 함께 한 숲, 그래서 숲에서 들려오는 귀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려 숲으로 간다. 숲은 나의 친구이며 새 힘을 얻는 원천 이기도 하다.
안개비가 내리는 조용한 날 나뭇잎에 맺혀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소리,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는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적막한 숲에서 들리는 이 미세한 소리의 파동이 나를 흔든다.
자연는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진리(眞理)의 대변자이다. 이 자연의 진리(眞理)는 우리 삶에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그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무심이 살아가고 있다. 늘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는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주지만 우리는 이것을 외면한 채 얄팍한 지식이나 세상의 조류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의 논리대로 산다. 그러다 자신이 감당 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면 나의 왜소함과 무지함을 탓하며 진리의 깊고 오묘함과 풍부함을 갈구하게 된다.
자연은 인간처럼 남에게 이기려고 빠른 속도로 가지 아니하며 하기 싫다고 꾀를 부리거나 회피하거나 하며 느리게 가지도 아니한다. 자연은 정한 시간대로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들을 하며 쉬지 않고 가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승자가 누리는 환희도 없고 패자가 갖는 자괴감도 없다. 자연에서 사라지는 많은 것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 안에 새 생명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가까이 있는 자연을 통해 항상 들려오지만 세상의 많은 헛된 마음 때문에 듣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나를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나는 자연 숭배론자도 아니며 자연 예찬론자도 아니다.
다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속에 자연을 보호한다고 한다. 보호는 강자가 약자를 살피는 일이다. 자연이 없으면 나도 없는데 자연을 보호한다니 나 자신 지난 많은 시간을 오만한 삶을 살지나 않았는지....
사람의 삶은 지구의 모든 삶과 근본적으로 같다. 모든 자연의 창조물이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듯이 나의 삶도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모든 순환 가운데에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귀한 시간들이 쉼 없이 지나가고 있다.
자연을 통해 표현한 작업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의 이야기이자 나의 독백이다. 이 독백은 자신의 삶과 생애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방법이기도 하고 깊숙이 내려앉은 욕망과 삶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제 자연은 지극히 작은 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
“모든 것을 버리고 가라”
고희(古稀)를 맞으며 사진집 하나에 내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에 실린 몇 장의 사진은 신의 섭리대로 제 역할을 하며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 왔는지를 되돌아보면서 현재의 내 심령 깊숙한 곳에 울리는 소리를 토로한 것 뿐 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저 내 이야기를 공감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 종 만 Lee Jong Man ( 1946~ )개인전2011 <바다, 저편에서> 갤러리 나우, 서울<바다, 저편에서> 강릉문화예술관, 강릉2008 <최근의 작업들> 갤러리 파스트페이스, 요코하마2007 <섭리 6> 강릉문화예술관, 강릉<섭리 6> 갤러리 瓦, 양평2005 <섭리 4, 5> 동해민예총 전시관, 동해2003 <섭리 5> 그린포토갤러리, 서울<섭리 5> 강릉문화예술관, 강릉2001 <오늘의 강릉> 강릉문화의 집, 강릉1999 <섭리 4> 강릉문화예술관, 강릉1996 <섭리 3> 예맥미술관, 강릉1991 <섭리 2> 예맥미술관, 강릉1988 <풍경> 미놀타포토스페이스 초대전, 도쿄, 일본 <풍경> 예맥미술관, 강릉1987 <풍경> 금강르느와르 아트홀 개관기념 초대전, 서울1985 <누드> 다랑갤러리, 강릉1984 <섭리 1> 다랑갤러리, 강릉1979 <바닷가의 24시> 강릉문화원, 강릉<바닷가의 24시> 춘천시립문화관, 춘천 단체전 2012 <근원> 고운사진미술관, 부산2010 <아시아 아트페어날레> 하슬라미술관, 강릉2002 <한국현대사진의 조망전> 동강사진박물관, 영월1994 <한국현대사진의 흐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1986 <사진과 8인의 시각전> 백상기념관, 서울1981~1985 <강원도 미술 초대전> 춘천 수상1986 강원사진상 저서2014 <숲> 역사공간2007 <섭리> 눈빛 출판사1986 <사람들> (동인집)열화당 소장 예술의 전당, 동강사진박물관, 강릉시청, 관동대학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