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쉬어야겠소, 배가 고파 버틸 힘도 없고 옷이 헤져서 추위에 떨면서 지새야 하는 밤이 두렵기만 하오.
이제 그만 쉬게 나에게 의자를 주면 안 되겠소?
‘제발 의자를 주시오.’
허씨 : 며칠 전 오후 땡볕에 많이 힘겨워 하고 있을 때
나를 몇 번이나 훔쳐보던 그 놈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는 줄친 담을 훌쩍 넘어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위, 아래를 훓어 보기도 하고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섰다가를 반복하고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하면서 얼마나 째려보는지
무엇인가를 움직일 때 마다 나는 ‘철거덕’ 소리가 간 떨어지게 한다.
도대체 뭐하는 놈인데 남의 구역에 들어와 자꾸 요리조리 째려보는지 부아가 치민다.
‘안되겠다. 이놈을 쫓아내야지.’
남자로 변신하고 긴 칼을 흔들면서 공중부양해서 이단옆차기에 돌려차기하면서 ‘이래도 안갈래?’ 그랬더니
웃으면서 ‘너 나의 모델이 되어주면 새 옷에 의자가 생길 텐데.’ 하면서 총총히 사라졌다.
나보다 센 놈을 이길 재간이 없어 속는 셈 치고 새 옷과 의자를 기다리기로 했다.
최씨 : 비가 온다.
엊그제 나를 쫓아 내겠다고 칼을 휘두르던 ‘허씨’ 아줌마 생각이 났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헤진 옷을 입고 우산도 없이 서 있을 ‘허씨’ 생각에
우산을 챙겨서 서둘러 갔다.
낡은 옷은 더 낡아져서 많이 추워 보인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싶어 빨리 새 옷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씨 :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추위가 뼛속까지 엄습해온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낮 익은 차가 보인다. 엊그제 내가 쫓아내려 한 그놈이다.
한손에 빨간 우산이 들려있다. 날씨도 추운데 그놈을 보니 반가웠다.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더니 다음에 새 옷을
가지고 오겠노라고 하면서 우산을 씌워지고 간다. 이렇게 좋은 분인 줄 모르고 쫓아내려고 한 것이 미안하다.
새 옷을 가지고 빨리 오길 기대하며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최씨 : 여름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릴 듯한 태양아래 그늘도 없이 있을 ‘허씨‘가 걱정이 되어서 가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가져가겠다던 새 옷과 모자 몇 개를 챙겼다.
와서 보니 ‘허씨’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채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아마 무더운 여름날에 꽤나 고생했나보다.
새 옷을 이제야 가져온 것이 미안해진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새 옷을 입혔다. 새 옷이 참 잘 어울리는 ‘허씨’를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의자를 갖다 주겠다는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허씨: 목이 말라 지쳐있을 때쯤 저 멀리서 시커먼 차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힘도 없이 쓰러질 듯 지쳐있는 나에게로 다가온 분은 며칠 전 우산을 씌워주고 간 그분이다.
다 헤진 옷을 조심조심 벗기더니 깨끗하고 레몬향이 나는 새 옷으로 갈아 입혀주고 모자도 두 개씩이나
씌워준다.
이 무더위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홀연히 왔다가 총총히 사라지는 그분에게 또 한 번 감사함을 느끼면서
뜬눈으로 밤을 세워서라도 이 농작물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나에게 희망을 준 그분이 너무나 고맙다.
아마도 곧 나에게 의자를 주실 거라 믿는다.
의자를 달라고 보채지 말아야겠다.
그분이 또 언제 오실려나...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