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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들개와의 추억

만물의 영장 인간의 오만함이 그려낸 넌픽션
등록날짜 [ 2014년08월16일 12시59분 ]

북한산 들개와의 추억, 만물의 영장 인간의 오만함이 그려낸 넌픽션

 

우리 집은 정릉 청수장 달동네다. 낡고 낡은 집들이 금새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서울의 대표적인 슬럼가다. 50~60여 년 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할 때 지어진 판자집들이 삼양동일대와 미아리 일대는 길음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깨끗하게 정비되었지만 이 동네만큼은 그대로 남아 영화의 세트장 같이 을씨년스럽다. 아닌게아니라 많은 영화나 연속극들이 이곳에서 촬영되고 다큐사진작가들이 심심찮게 헤매는 예술적(?) 오브제가 된지 오래다.

한 가지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면 세계적인 명산 북한산 자락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어릴적부터 이곳에 둥지를 튼지 오래되어 이제는 이곳의 터주 대감으로 일생을 북한산을 맴돌며 살게 되었다. 최근엔 대학로 사무실에서 북악산을 올라 북악팔각정을 지나 국민대로 내려오는 꽤 난 코스를 등정하기에 북한산 정상을 올라가 본지도 퍽 오래 되어 그리운 북한산이 되고 말았다.

필자가 북한산 자락에 처음 둥지를 틀 때만해도 북한산엔 부처손 바위이끼 바위채송화 에델바이스 석송 상황버섯 토종창포 등 원시의 생태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가재나 도룡용은 물론 때로는 여우가 우리 집 뒤 안에 내려오고 산토끼가 시레기 말리는 것을 탐을 내곤 했다. 자아넨 종 염소를 키우던 이웃집 아저씨는 염소를 잡으러 내려온 늑대와 몽둥이로 대처한 적도 있을 정도다. 아마 지금은 믿어지지 않는 얘기에 전설이 되어버린 아득한 옛 얘기지만 말이다.

최근에 파일을 뒤지다보니 몇 해 전에 사귄 북한산 들개의 사진들이 눈에 띄어 그립던 차에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몹시 마음이 아프다. 필자는 태생부터 북한산 자락을 매일 헤매는 것이 일과가 되어 있었다.

으스름한 새벽 어떤 서늘한 기가 느껴졌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곤 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녀석이 나를 먼발치에서 슬금슬금 따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대가리가 농구공보다도 큰 튼실한 들개였는데 내가 다가가면 그 만큼 달아나고 무심히 걷다보면 꼭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곤 했다. 그 들개는 덩치가 송아지만 했고 듬직하여 행동이 느긋하면서도 무척 기민했다. 몇 해가 지나도록 녀석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지만 늘 산에서 함께 등산을 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몇 번이나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녀석은 카메라를 매우 싫어해 카메라만 겨누면 재빠르게 사라져 며칠간을 볼 수 없었기에 촬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또 흐르고 녀석도 나이가 들어 얼굴에 반점이 생기고 털의 윤기가 전만 같지 않았다. 기민하고 힘센 녀석이 때로는 상처가 깊게 패이고 피를 흘리는 것도 목격되었지만 여전히 가깝게 다가가는 것은 허락지 않았다.

세월이 몇 해 더 흐르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녀석과 필자와의 거리가 거의 닿을 듯 가까워 진 것이다. 물론 자신의 몸에 나의 손이 닿는 것은 허락지 않았지만....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많이 게을러진 필자를 데리러 새벽이면 산에서 동리로 내려와 필자의 대문 앞에서 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필자가 대문을 나서면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곤 하며 반가움도 표시할 줄도 알았다. 물론 다른 개들처럼 촐싹거리며 반가움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새벽이면 화덕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는 노모와도 친해져 아궁이 옆에 길게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아내와 아이들과도 아는 체를 하여 마치 우리집 개 인양 되어 있었다. 물론 등산을 함께하고 산에서 내려 올 때쯤엔 어디론가 사라져 다음날 새벽까진 흔적도 없다가 새벽이면 어김없이 대문 앞이나 화덕의 아궁이 옆에서 기다리곤 해는 날이 반복되었다.

북한산에 등산붐이 일고 사람들이 큰개를 데리고 오는 나를 싫어하고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항의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졌다. 녀석과의 사정을 알리 없는 사람들이 목줄도 없이 커다란 개를 몰고 나타나니 화도 날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저 개를 잡아 죽여야 된다고 북한산 관리공단과 119에 신고도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녀석이 보이지 않았고 몇 주쯤 지난 뒤에 다시 만난 녀석의 발목이 예리한 칼로 도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았다간 다시 부상당하고 여기저기 또 부상당하고.... 녀석이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파 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녀석에게 늘 상처를 안기 것이 그 즈음의 일상이었다. 카메라조차도 경계를 하고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던 그 야생성이 살아있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그렇게 녀석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절친이었던 필자가 주는 음식조차도 절대로 먹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집요한 인간들에겐 기어이 해코지를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인간들이 한없이 미워진다.

 

최근에 북악산을 넘으면서 멧돼지의 흔적을 또 서너군데 발견했다. 창덕궁까지 내려오고 성북동 마을까지 내려와 작년에만 북악산 북한산 일대에서 12마리나 살해되는 변을 당해 한동안 보이지 않던 멧돼지의 흔적이다. 또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속절없이 사살 될 터이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현재 북한산엔 야생들개와 멧돼지들이 제법 살고 있는데 녀석들이 사람과 상종을 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기 수록된 사진들은 녀석이 나이가 들면서 차츰 사람들과의 정을 그리워하였고 점차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오곤 했다. 그 즈음 촬영된 사진들이다. 특히 마지막 두장은 녀석이 우리집에 찾아 오던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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