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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육명심사진집’
한국 사진계의 거장 육명심 작가, 티베트의 영혼을 담다
한번 주제를 정하면 일편단심 정해진 대상에만 집요하게 매달린다. 마치 한 여인을 사랑하면 딴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정하고도 뜨거운 사랑에 비할까. 그는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그것만, 오로지, 집중적으로 적어도 5년 이상 계속해서 파고드는 편집광적인 데가 있다. 이는 바로 (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인 육명심 작가의 사진인생론을 집약한 표현이다.
이번에 새로 펴낸 ‘육명심사진집-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Where Heaven and Earth Meet)'도 바로 이와같은 육명심 작가의 끈질긴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1997년 이후 티베트, 부탄, 라다크 등을 열 번 이상 다녀오면서 10여 년간 그들의 삶과 영혼을 찾아 다녔다.
티베트사진집에서 육명심 작가는 “이 나라에서는 하늘이 곧 사원의 천정이다. 그리고 국토의 전역이 그대로 사원의 마룻바닥이다. 이렇듯 티베트는 마치 거대한 하나의 자연사원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일단 티베트에 입국하면 어디를 가나 우리는 사원의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티베트 사람들에게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토기(土器)처럼 흙냄새가 골수까지 스며있는 것 같다. 서민들은 물론 심지어 상류층인 승려나 부자들까지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람이란 어머니인 대지(大地)의 품안에 깃들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같은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육명심 작가는 이번 사진집에서 주로 티베트사람들의 자연같은 삶, 흙냄새,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영혼의 소리와 눈빛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무늬의 민속축제나 대자연의 풍경 등을 담은 일반적인 티베트사진집과는 달리, 육명심사진집은 원로 거장사진가답게 사진집 전체작품이 흑백 일색이다. 흑과 백은 영혼의 색, 진정한 자연의 색으로 보았기 때문일까? 육명심 작가는 티베트의 하늘과 구름, 땅, 나무 한 그루, 돌무더기, 길가의 강아지 한 마리에서도 깊은 영적(靈的) 감동을 찾아낸다. “사진은 잘 찍으려 하지말고 정직하게 찍어야 한다”는 육명심 교수의 작가론이 그대로 반영된 사진같다.
육명심 작가는 작품집 후기에서 “티베트에서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뭐니뭐니 해도 길을 가다 보면 거의 이디서나 마주치게 되는 순례자들의 모습이었다. 이슬람 신도들이 메카를 동경하듯 모든 티베트 사람들은 라사의 조캉 가원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을 꿈꾼다. 티베트인들의 성지순례는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도의 고행이다. 이들은 아무리 먼 거리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부터 성지까지 도보로 걸어서 간다. 심지어 그중에는 일보일배(一步一拜)를 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걷기는 걷는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큰 절을 하기를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성지순례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듯 인간이 가능한 한계를 초월한 일보일배의 고행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실로 히말라야 산맥의 정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자문자답한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업드려 땅바닥에 머리를 대는 구도자의 염원, 구름 속에서 쏟아내리는 정기, 바위 틈에서 새어 나오는 영혼의 바람 소리에 무슨 화려한 색깔이 있겠는가? 흑백의 공간이 곧 하늘과 땅, 영(靈과 육(肉)의 접점이 아니겠는가?
육명심 교수(83)는 한국사진계를 개척한 대표적 거장이다. 1975년에 신구대학 사진학과를 처음 만들었고, 1981년에는 서울예술대학 사진과도 창설하였다.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엉뚱하게도 사진에 심취, 거의 독학으로 세계사진사를 연구하여 이 분야에서의 독보적 학문세계를 개척하였고, 1920년대 세계 사진계에 혁명적 바람을 일으켰던 헝가리의 사진가 모홀리 나기((Moholy Nagy)처럼 이 땅에 ‘새로운 시각에서의 카메라 아이(camera eye)'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분이다. 문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낮설게 하기‘의 예술적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소한 것들을 영상적으로 새롭게 이미지화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받게끔 하였다. 그에게 사진이란 일이 아닌 삶이며 소통의 도구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담아낸 그의 사진 속에는 따뜻함이 가득하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꿈꾸기보다는 언제나 창의적이고 색다른 것을 창조하고자 노력한다.
육명심 작가는 시인보다 시를 더 많이 읽고 시인보다 시를 더 잘 이해하는 사진가이다. 그는 80 세가 넘은 지금도 가방에 늘 젊은 시인들의 시집을 넣고 다니면서 시를 읽는다. 그는 “연세대 2학년 때 시인 박두진 선생의 ‘교양 국어’ 강의 시간에 과제로 시를 써냈는데, 선생께서 나도 모르게 ‘연세문학상’ 공모에 출품해 덜컥 당선이 됐다. 그때부터 선생은 내게 시인이 되라고 권했다. 72년 ‘예술가의 초상’ 작업을 구상한 초기부터 인연을 맺은 서정주 시인도 ‘육대인’이라 부르며 여러차례 등단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이명희)가 카메라 3대를 선물하며 말했다. ‘나는 오늘부터 시도 그림도 그만두겠으니, 당신은 오로지 사진에만 몰두해라.’ 아내는 이미 국전에 4번이나 입선한 화가이자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했으나 그때부터 교사로 일하며 철저하게 내 뒷바라지를 해줬다.”고 회고한다. 그는 젊은 시절 한 때 연극에 심취한 적이 있는 연극인이기도 하다. 배우이자 연출가이셨던 이해랑 선생은 육명심에게 연극할 사람이 무슨 사진을 하냐고 하셨고, 또 시인 서정주 선생은 시 쓸 사람이 무슨 사진을 찍느냐고 그러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그 후 사진에 전념, 한국사진계를 이끌어온 거장 사진가가 된 것이다.
사진에 관한 공부가 일천한 필자가 육명심 작가의 ‘카메라 아이’를 보고 놀램과 충격을 받은 것은 그의 저서 및 작품집들을 보고나서부터이다.
‘육명심사진집’(1994), ‘문인의 초상’(2007), ‘장승’(2008), ‘검은 모살뜸’(2009), ‘백민’(2011), ‘예술가의 초상’(2012) 등 그의 수많은 저서 및 작품집을 보면 육명심 작가가 말하는 ‘카메라 아이’가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2년 10월에 펴낸 그의 자전적 산문집 ‘陸明心 이것은 사진이다’에는 육명심 작가의 사진에 대한 시각과 사진인생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육명심 작가의 대표작품집 중 하나인 ‘백민’에 박용녀라는 무당의 클로즈업된 얼굴모습을 담은 작품이 나온다. 신기(神氣) 가득한 눈빛, 주름진 얼굴, 표백된 듯한 하얀 피부색을 보노라면 내 스스로 그녀의 눈빛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과 충격에 빠져든다. 또, ‘검은 모살뜸’ 작품집에서는 모래 속에 누워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시종일관 관 속의 죽은 송장을 보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검은 모살뜸은 제주도 사투리로 검은 모래찜질을 뜻한다. 이런 모래찜질은 이 섬에서 만 볼 수 있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민간요법이다. 이곳 섬사람들은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그야말로 더위가 최고로 기승을 부릴 때 검은 모래밭으로 간다. 그리고는 한껏 달아오른 모래 속에 몸을 깊이 파묻고 찜질을 한다. 그러면 사대삭신 육천마디 쑤시고 저리던 병이 낫는다고 한다. ‘검은 모살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우선 찜질하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가 관을 안치하려는 묘의 밑바닥과 같아 으스스하다. ‘장승’사진집 역시 마찬가지.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장승들을 클로즈업시킴으로써 ‘살아있는 신(神)’의 경지로 부활시켰다. 이와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육명심의 ‘카메라 아이’ 만이 잡을 수 있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접근방법이다.
그뿐이 아니다. 육명심 작가를 한국 최고의 인물사진작가로 자리매긴 ‘예술가의 초상’에서도 그는 시인 서정주, 박목월, 박두진, 천상병, 박재삼, 고은, 신경림, 김남조, 서정춘, 강은교, 소설가 박경리, 황순원, 박완서, 최인훈, 이외수, 영화감독 김기영, 화가 중광, 김기창, 장욱진, 임옥상, 조각가 이승택, 무용가 김백봉 등 77명의 한국 최고 예술가들의 일상적 삶을 가장 진솔하면서 어쩌면 우스꽝스러운 모습(?)까지 그대로 담았다. 왤까? 인물사진은 가장 점잖은 모습으로 찍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고, 가장 ‘그사람다운’ 모습, 가장 정직한 예술가의 모습을 담고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국 처칠 수상의 사진으로 유명한 유섭 카쉬(Yousuf Karsh)의 인물사진을 뛰어넘는 육명심 만의 특성을 가진 사진스타일을 찾아낸 것이다. 육명심 작가는 평소 “인물사진을 잘 찍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가장 좋은 인물사진은 가장 ‘그사람다운’ 사진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육명심 작가의 ‘영상사진집’(1966-1978)은 육명심 스타일의 ‘카메라 아이’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집이기도 하다. 60-70년대의 사진작품들인데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제3의 눈, 은유와 역설, 파격 등이 담겨있어 후학들을 놀라게 한다. 리얼리즘 사진이 당시 사진계를 휩쓰는 상황 속에서 ‘카메라 아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차별화한 영상사진작업들이다. ‘영상사진집’에서는 대부분 작품 한 가운데가 텅 비어 있다. 그렇지않은 경우는 사진의 배경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이를 분석해 보면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이 사진의 주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배경인 하늘이나 땅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육명심 작가의 ‘인상(印象)’시리즈에서 대부분의 사진들은 전경보다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은 이번에 펴낸 티베트사진집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서도 상당부분 엿볼 수 있다.
육명심 작가는 사진에 입문하기 전부터 불교사상과 노장사상에 크게 매료되어 있었으며, 그 사상들은 일생동안 정신적인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거 이런 사상을 의식적으로 앞세워 사진을 찍지않았다 해도 어느 순간 무의식을 통해 이런 사상이 엿보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육명심 작가는 티베트사진집 후기말미에서 “지난 십여 년간 티베트와 그 주변지역들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제는 이 긴 여행의 자락을 접으려 한다. 중국 본토와 티베트를 잇는 철도와 도로가 잇달아 개통되면서 티베트 고유의 문화와 종교가 속절없이 파괴되었다. 아무쪼록 불토국의 나머지 나라들이 티베트의 비극을 되풀이함이 없이 그들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고스란히 지켜나가기를, 그래서 여기 실린 사진들이 지나가버린 날들의 한낱 전설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술회한다. 그런데 경제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도입된 물질문명이 전세계 미개발되었던 신성한 땅들을 무서운 속도로 좀먹어 들어가고 있는 요즈음, 작가의 간절한 소망과는 반대로 육명심 작가의 티베트사진집이 신성한 땅의 지나간 전설을 고히 간직하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 같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정리/임윤식) *발행처 : 글씨미디어 *정가 :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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