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전 모 대통령이 취임후 '반미(反美)면 어때'라고 외치더니 정작 미국을 방문해서는 미국이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으면 자신은 지금쯤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있을 거라는 낯 뜨거운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안방에서는 큰소리 치다가 정작 미국에 가서는 그렇게 비굴하게 아부하는 황당한 경우를 보았다. 뒤에서 험담하다 사장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부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현대 국제 사회에서는 한 국가가 독단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세계는 지역간, 정치(이념) 체제간 경제, 안보체제 등의 블럭에 엮여 국가의 이익과 생존을 보장받는 시대이다. 강대국의 힘이나 정치적 역학관계를 모르고 우물안 개구리마냥 큰소리를 쳤지만 미국의 뒷받침 없이는 안보, 무역등 우리가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좋든싫든 반미 주의는 벽에 부딪친다. 특히 부존자원이 없어 대외 무역 의존도가 70% 이상으로 높고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는 한국의 경우에는... 전임 대통령들이 그보다 현명하지 못하고 자존심이 없어 친미 정책을 펼쳤던 것이 아닌 이유이다.
일부 좌파 인사 중에는 자녀의 미국 유학이나 미국 인맥을 못만들어서 안달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반미를 외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효선,미선이 교통사고 때는 촛불을 들어도 사살당한 박왕자씨 사건이나 연평해전, 천안함 때는 촛불은 커녕 입도 뻥긋 안하는게 한국의 진보 좌파다. 패권국 미국에 대한 피해 의식이나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을 인정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민주와 평화를 지향하는 미국이 독재 국가를 지원한다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았겠지만, 쿠테타 초기에 반대했다가 불가피하게 내전이나 정정 불안을 우려해서 독재 정권을 사후에 묵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잘못한 점도 많지만 6.25 참전이나 현재의 한국 안보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국방비를 경제에 투입하고 집중하여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고 본다. 일본이 미국과 긴밀한 친선관계를 맺고 영국 블레어 전 수상은 클린턴의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미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영국이나 일본이 한국보다 못살고 힘이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차 대전후 미국은 일본 중시 정책을 펼쳐 1950년 미국의 동북아 방위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이 제외되어 북한이 도발을 하였고, 참여 정부 때는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 정립을 외치면서 사이가 소원해졌다. 할 말은 하고 주장은 한다고 하고서는 할 말도 못하고 사이만 나빠졌다. 냉전시대에도 한미동맹이 중요했지만 다원화 탈냉전 시대에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유지되어야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상에도 미국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민 대다수는 북한에 쿠테타나 김정일 세습 체제가 붕괴되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동적으로 남북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큰 오산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한반도를 쉽게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고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북한 땅이 중국에 병합되는 결과가 나을 수도 있다. 중국, 러시아는 현 체제를 유지하거나 북한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우호적인 정권이 유지되길 바라지 결코 비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난 2009년 3월 G20 정상 회의 때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었을 때 중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한 것은 중국의 북한 침공에 미리 쐐기를 박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발언이었다. 북한 정권에 유고가 생겼을때 북한 정권 보호 또는 북한 정부의 요청으로 북한에 군대를 진주하여 중국에 우호적인 괴뢰정권을 세운다면 남한으로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근세에 와서도 몽골을 침략했고 1953년 티베트를 침공하여 병합하였으며 명분만 되면 대만도 병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유지되기를 원하지만 비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선다면 명분을 만들어 침공할 수도 있다.
서독이 붕괴되었을 때는 구 소련이나 미국, 영국등 이해 당사국의 이해 관계가 직접 마주치지 않았고, 서독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과 확고한 선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서독 통일이 독일의 바람대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유, 공산 양 진영의 이해 관계가 직접 부딪치는 첨예한 지역이라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통일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안보, 경제 뿐만 아니라 미래의 통일 시대에 대비해서도 미국이나 일본, 기타 자유 우방국들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중국과의 긴밀한 선린관계도 필수적인 조건이고 남북 통일의 초석을 놓는 일이 된다.
우리나라가 평화 통일이 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코앞에서 미,일과 마주쳐야 하는 상황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와 같이 현상유지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어떤 책동을 부려 국제관계가 시끄러워지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중국은 국내적으로 빈부 격차, 소수민족 문제, 실업 문제, 경제 성장등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 때문에 한반도 문제로 에너지를 쏟아부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꾸준히 향상시켜 한반도의 통일이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설득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힘을 기르고, 경제 성장에 매진하고, 미국, 일본등 자유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중,러 등과의 선린 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국제 정세는 항상 유동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강대국간의 이해 관계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될 수도 있어 항상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자유 우방과의 틈이 벌어졌을 때 중국이나 러시아가 자기들 유리한 방향으로 남북한 통일을 빅딜(big deal)할 수도 있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화나는 대로, 내키는 대로 하기처럼 쉽고 후련한 일은 없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의 안위가 달린 국정 운영을 대통령의 자존심이나 오기로 할 수는 없다. 자존심 상하더라도 참을 것은 참고 대우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화가 나도 거래처나 건물주한테 참는 것은, 사장에게 사표 던지며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싶어도 참는 것은 자존심이 없고 밸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동안의 혈기나 객기로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세계 최강국이 되었을 때 - 지금의 미국보다 더 - 한국의 국익보다 세계 정의를 우선하고, 한국보다 약소국의 주장을 배려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더 착할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