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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아버지 징기스칸”

기초탄탄& 포토샵 원리1. 2월3일화요강좌
등록날짜 [ 2015년02월04일 13시39분 ]

'사진의 아버지 징기스칸' 기초탄탄& 포토샵 원리1. 한국사진방송 2월3일화요강좌


모처럼 기초탄탄 강좌를 시작하니 사진의 역사에 대해서 대충이라도 짚어 볼 수밖에 없었다. 잘 알다시피 ‘카메라’ 라는 말은 방, 어두운 방, 암실이란 뜻이다.

완전히 캄캄한 방에 들어가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맞은편 벽에 방 밖의 사불들이 거꾸로 비치는데 이를 우리들은 ‘이미지(영상)’라고 한다. 이 이미지를 만드는 어두운 방을 사람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생활에 응용해 왔는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들은 이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고찰하여 철학의 한 분야를 집대성하게 되었다.

중세에 들어와선 레오나르드 다빈치 같은 이들이 카메라를 이용하여 원근감과 입체감을 이론화하여 예술의 근간을 세웠다. 유명한 사진평론가 미국의 수전손택이 ‘플라톤의 동굴’이란 이론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사진이 ‘허상의 허상’이란 사진의 실체를 파악한 것인데 이 역시 아리스토탈레스와 같은 철학적 고찰을 거쳐 완성된 학설이다.

기원전부터 사용되던 카메라는 차츰 진화를 하여 카메라옵스큐라 라는 휴대용으로 진화한다. 이른바 바늘구멍 사진기(핀홀 카메라)가 그 종류다. 또 진화하여 거울을 옵스큐라안에 부착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구를 만들어 내는데 카메라루시다 다.

카메라 루시다를 삼각대를 걸고 많은 이들이 이 기구를 사용하였는데 화가들도 이 기구위에 얇은 종이를 대고 사물을 그대로 베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 그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 없을까 하고 부단히 연구를 거듭하게 된다.

지금으로 부터 1000전쯤 아라비아의 알하젠이란 내 친구가 렌즈를 개발해 내는데 이는 카메라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렌즈는 원래 콩이란 뜻이다. 렌즈가 처음 만들어 지게 된 것은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비단길(실크로드)을 내왕하는 대상들이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운 자리에서 콩알같이 생긴 투명한 유리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규사라는 모래는 칼슘성분이 포함된 조개껍데기가 주원료다. 이 규사가 고온에 달구어지면 녹아서 유리로 바뀌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렌즈의 기원이다. 알하젠은 아랍화폐에 그 초상이 새겨지는 영광을 누리는데 그가 렌즈를 개발한 최초의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렌즈가 카메라에 부착되면서 유럽의 예술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입체감 원근감의 학문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렌즈가 발명되면서 망원렌즈가 개발되고 이탈리아의 갈릴레이는 천문학을 천문학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그는 망원렌즈로 별들을 관찰하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사실을 말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아 사령을 선고 받는데 종교에선 지구가 중심이지 지구가 태양의 변방에서 뱅글뱅글 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학설이 틀렸다며 목숨을 구걸하고 사형을 면제받고 나오는 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린다.

한편 한강변에 살던 고씨 성을 가진(아마도 고주몽의 후손? 징기스칸이 고려를 형제국으로 칭하고 그의 군대편제나 정책이 고주몽과 같음)한 종족이 백두산을 지나 몽골로 들어가는데(여기까지는 필자의 추정) 그 종족의 알랑고아라는 여인이 징기스칸의 할머니다. 징기스칸은 유라시아 대륙을 통폐합을 하고 역사상 가장 큰 대제국을 이루고 그 대제국을 다스리기 위하여 역참제도를 만들어 낸다.

원래 징스칸은 말과는 한 몸이다. 몽골의 대칸이었던 그가 오늘날 사마르칸트의 무함마드 샤를 제압할 때 몽골보다 훨씬 큰 대제국의 황제 무함마드 샤가 그토록 무참히 궤멸된 이유는 징기스칸의 마술 때문이었다.

징기스칸의 서쪽으로 원정을 떠날 때 특공대를 조직하여 단촐한 군대편성을 하고 병사마다 다수의 여분의 말들을 지급하고 말을 갈아타면서 무섭게 빠르게 진격했다. 부하라의 성주 이날축과 사마르칸트의 황제 무함마드 샤는 예상을 훨씬 앞지른 적의 출몰에 정신 줄을 놓고 만 것이다.

정복 전쟁이 끝나고 이방식의 역참제도를 만들어 역마다 여분의 말을 비축하여 유럽과 동양을 빠르게 오가게 하였다.

징 징 징기스칸!!! 하는 팝송이 세계를 휩쓴 적이 있는데 유럽에서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징기스칸은 희대의 살인마인데 노래를 만들어 찬양할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질세라 제시닥 금지곡으로 선정되었는데 정말 웃겨....100만명이 넘게 사는 도시를 단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살육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곳곳을 초토화 시킬만큼 살육을 저질렀던 징기스칸이 천인공노할 인류의 대적인 것은 맞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징기스칸이 한강에서 올라간 종족일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사실 한국인들은 그 잔인한 면에서 징기스칸보다 한 수 위다. 필자의 군복무중 우리 고참들중 월남병장이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월남전에 파병되어 사람을 죽여 본 사람들이라 눈빛부터 달라 우리들은 그들을 아주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들과 친하였던 내게 그들이 한 얘기들 중 치를떨게 만드는 얘기들이 있다.

베트공들을 잡아오면 특히 여성을 발가벗기고 예리한 면도칼로 피부를 죽 긋고 피가 나오기 전에 재빠르게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또 긋고 붙이고...어떤 병사는 여성들의 음부만 도려내어 꼬챙이에 꿰어 햇볕에 말려 수집하였는데 커다란 유리병에 가득 채웠다는 등등의 증언(?)이었다. 물론 사실여부는 오직 그 얘기를 해준 그분들만 알 뿐이다. 다만 한국군이 각국의 파병국 군인들 중에 유독 잔인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징기스칸이 대제국을 설립한 덕택에 유럽으로 제지술 화약제조 나침반 본차이나 등 동양의 핵심기술들이 유출되는데 유럽은 이 기술을 재빠르게 발전시켜, 대포를 만들고 총기를 만들고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대륙을 식민지화한다.

결과는 유럽의 부흥이다. 각 대륙에서 무차별로 잡아온 짐승(?)들을 노예로 삼아 쾌락에 빠지다보니 비대해져 몸에 두를 모피코트와 금붙이가 모자라게 된다. 결과는 시베리아일대와 중앙아시아의 황폐화와 아메리카의 수탈로 인한 인디언들의 인구감소로 이어졌다.

더욱 금의 가치가 올라가자 유럽인들은 연금술을 통하여 금을 만들겠다는 욕망에 연금술이 발달하여 화학 재료학 금속학 등의 많은 기술이 축적된다. 이때 독일의 주정뱅이 술체란 연금술사가 질산용액에 녹인 은이 빛에 의하여 검게 변질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은 곧 카메라에 응용되어 드디어 이미지를 고착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 날의 사진기의 시초다. 약 200년전 쯤의 일이다.

영국의 탈보트, 프랑스의 니엡쁘스등이 질산(혹은 할로겐)화학처리를 한 은판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어내는데 이 기술을 학계에 발표한 이는 다게르다. 오늘날 프랑스의 다게르가 공식적인 사진의 아버지가 된 이유다

이즈음 지구곳곳을 식민지화해 수탈한 엄청난 재화로 유럽에선 프리섹스 인간사냥 마녀재판 식탐 사치 금은 모피 등 과다한 사치와 다양한 쾌락적 놀이가 발전하지만 그것들이 자신들의 과욕을 온전히 채워주지 못했다. 인간은 타 동물에 비해 과시욕이 큰 법이다. 우리들이 사진을 매력 있게 생각하는 이유도 사실 이 과시욕 때문이다.

자신의 여자가 많다거나 집이 더 좋다거나 더 좋은 말이나 보검을 가졌다거나 온갖 사치한 것들로 자신을 과시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돈 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 곧 시들해 지고 만다. 그런데 예술품은 희소가치가 높아 아무나 가질 수가 없고 그 가치의 잣대가 여느 물상들과 달리 매우 애매하여 소위 전문가들이 감정하는데 따라 엄청난 가치를 유발하게 되는 묘한 것이었다. 이를 백남준은 “예술은 고등사기다.” 하고 일갈하였는데 사실 맞는 말이다. 다른 물상들을 원가에 비해서 그토록 비싸게 사고 팔아보라 공정거래 위원회에서 곧바로 폭리로 제재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품은?

유럽의 호사가들이 예술품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은 예술품을 소장함으로 남들보다 한 수위임을 증명하여 보려는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결론으로 유도하여 보겠다. 징기스칸의 정복전쟁으로 유럽인들은 엄청나게 고통을 당하지만 결과는 전 세계를 제압할 수 있는 총포의 발달과 항해술이 발달하여 전 세계를 돌며 수탈하여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신의 선물이었다. 신이 공평하단 것은 유럽인들의 사고인데 고통과 함께 문명과 부를 주었으니 어찌 공편한 신이 아니겠는가? 유럽의 예술이 가치를 정립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고 이 과정에서 사진이 발명되는데 이 또한 기원을 찾아보면 징기스칸과 연결되니 꽈배기 같이 꼬아 역설을 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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