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김옥성 Kim Ok-Sung
떡판 이야기
떡판은 예부터 우리네 잔치마당 음식 준비에 꼭 챙겨 사용된 가정 필수품이다.
떡판은 크기에 따라 작은 것, 중 것, 큰 것의 세 가지로 구별하였으며, 그 높이와 폭도 높고 낮음이 있었다.
소자는 가정에서 혼례 등의 잔치 때 궁중음식, 다식, 밤조란, 대추조란, 김튀각, 고추튀각 등 마른 음식을 담아놓고 차근차근
손님상에 올린다.
중판과 대판은 인절미, 콩떡, 팥시루떡, 쑥인절미 등 떡을 층층이 다섯줄 정도까지 쌓아놓는다.
층을 지어 쌓은 시루떡을 한줌한줌 그릇에 담아 동네 가난한 집을 찾아다니며 돌렸던 할머니의 심부름꾼,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떡판은 잔치마당에서 큰 역할을 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심부름 잘하는 손녀딸 노릇 하느라 기어들어가는 문살을 디디며
떡을 날랐던 내게 떡판은 곧 할머니의 모습이다.
그 많은 떡을 다 돌리고 나면 우리들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대던 어린 마음에 할머니는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너희들 먹을 것은 저기 있다.”
“그럼 할머니는 뭘 먹어?”
“난 이 시루평만 긁어먹어도 된다.”
나눔의 기쁨을 즐기며 사시던 할머니의 모습과 손길이 100년이 지난 골동품인 이 떡판에 지금도 서려 있다.
할머니를 그려보면서 다시 내 솜씨로 원앙쌍을 만들어본다.
하얀 쌀가루, 파란 모싯잎 떡가루, 깨소금과 설탕 넣은 가루로는 양념 속을 만들고,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로 귀엽고 사랑스럽게
부리와 꼬리, 몸통을 만들고, 하얀색 원앙은 양쪽 날개와 부리에 파란 모싯잎으로 무늬를 넣고, 이렇게 신부신랑의 애정 표시를
하듯 한 쌍의 원앙을 다정한 모습으로 이미지화하여 찐다.
원앙은 본디 사랑과 우정을 상징하듯이 결혼식 폐백에 흔히 자주 사용한다.
바로 그 원앙쌍 떡을 어머니한테 전수받은 솜씨 그대로 만들어 우리집 고유의 떡판에 담아 살아있는 것처럼 촬영해보리라.
우선 촬영에 임하고 마지막 디지털 작업을 거치면서 100년의 삶의 역사는 이 떡판 위에서 초현실의 꿈과 조우하였다.
하여 한껏 다소곳한 새색씨 같은 정결함과 우아함은 음식이바지라는 생명감 있는 오브제를 통해 전통문화의 가장 현실적인
의장을 갖추게 된 셈이다.
비록 어린 내게 잔치마당은 화려하고 할머니의 떡은 놀라우리만치 맛있었지만, 이 사진 속의 떡판과 원앙쌍의 생생한 미감은
전통의 깊은 그늘 혹은 그림자 속에 심연처럼 감추어져 있다.
우리네 문화는 우리들 삶의 역사가 그렇듯 우리의 혼과 정서에 서늘한 울림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임에랴. (2010.9.7)
|
